메뉴 건너뛰기

close

마지막 작별 A father takes a last look at his daughter who was killed by the Israeli occupation.
마지막 작별A father takes a last look at his daughter who was killed by the Israeli occupation. ⓒ Ismail Abu Diya

어떤 한국인은 이렇게 물을 수도 있습니다.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고 문화적 배경도 다른 팔레스타인의 대의를 우리가 왜 지지해야 할까?" 사실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것은 단지 보편적인 의무에 그치지 않고, 한국인에게는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도덕적이고 인간적인 이유가 존재합니다. 우리의 현대사는 세상이 아무리 넓어도 결국 하나의 집과 같아서 한쪽이 흔들리면 모두가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세계 경제를 마비시켰고, 이어서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은 식량 및 에너지 가격을 폭등시켜 수백만 명을 빈곤에 빠뜨렸습니다. 이 일은 우리가 이제 서로 긴밀히 연결된 작은 마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가자든 그 어디든 인권이 침해당할 때, 우리가 함께 가지고 있는 인간성은 침묵하지 말 것을 요구합니다. 정의와 인간 존엄에 대한 우리의 신념은 가자에서 벌어지는 집단학살을 거부하고 맞서 싸울 것을 요구합니다. 팔레스타인 대의를 지지해야 할 수많은 이유가 있습니다. 이 글은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들에 대해 짚어보겠습니다.

우리가 함께 가진 인간성

AD
인간으로서 우리를 하나로 묶는 것은 우리 사이를 나누는 것보다 훨씬 위대합니다. 언어, 종교, 국적과 관계없이 우리는 모두 꿈을 꾸고, 고난을 겪으며 인간의 존엄을 열망합니다. 역사 속에서 사람들은 고통과 불의의 순간마다, 가슴 깊이 느끼는 공통의 감정에 이끌려 연대해 왔습니다. 이러한 연대는 단지 순간적인 동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억압받는 이들과 함께하려는, 자연스럽고 본능적인 양심의 표현입니다.

자신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해서 불의를 외면하는 사람은 결국 자신의 인간성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오늘날 팔레스타인인과 연대하는 것은 전 세계를 위한 정의의 행동이며, 인권은 국경이나 문화에 구애받지 않고 모두에게 속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시키는 일입니다.

한국의 식민지 경험

20세기 가장 오랜 압제를 견뎌낸 민족 중 하나로서, 한국인은 불의의 고통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합니다. 1910년 일본은 한국을 강제로 병합하고, 한국인의 정체성을 말살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말은 금지되었고, 우리 땅은 식민 지배자를 위해 빼앗겼으며, 모든 반대의 목소리는 총알과 잔혹한 탄압 속에 침묵 당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동안 한국은 더 큰 고통에 빠졌습니다. 수만 명의 한국 여성이 일본군을 위한 "위안부"로 강제 동원되어 반복적인 강간과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잔혹함 속에서도 저항은 솟구쳤습니다. 1919년 3월 1일, 거의 100만 명의 한국인이 독립을 위해 평화롭게 행진했습니다. 이에 일본은 유혈 사태로 대응했습니다. 7,500명 이상이 사망했고, 수만 명이 다치거나 체포되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인의 정신은 절대 꺾이지 않았고, 1945년에 자유를 되찾았습니다.

고통스럽지만 자랑스러운 이 한국의 역사는 우리가 팔레스타인인의 고통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특별한 힘을 제공합니다. 한국인이 가자에서 벌어지는 죽음과 파괴의 모습을 볼 때 가슴이 아픈 이유는, 한국인 역시 식민 지배의 참상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역사는 단지 기억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그것은 자유를 위해 싸우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른 이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점령 아래 살아가며 치러야 할 대가는, 그에 맞서 싸우는 데 따르는 대가보다 훨씬 더 큽니다. 결국 자유를 잃는 것보다 더 큰 희생은 없습니다.

주택 파괴 건물의 90% 이상이 파괴되었고 주민들은 이주했습니다.
주택 파괴건물의 90% 이상이 파괴되었고 주민들은 이주했습니다. ⓒ 팔레스타인 정보 센터

팔레스타인 사람의 고통

위 사진은 가자가 격렬한 폭격을 받은 뒤 파괴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수십 년간 겪어온 엄청난 고통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1948년 나크바('대재앙') 당시, 75만 명이 넘는 팔레스타인인이 강제로 집에서 쫓겨났고, 이 지역의 인구 구성을 바꾸기 위해 수백 개의 마을이 사라졌습니다

팔레스타인인은 땅과 권리를 되찾기 위한 지속적인 투쟁 속에서 엄청난 희생을 치렀습니다. 오늘날 가자는 주민들을 내쫓고 남은 땅마저 빼앗으려는 잔혹한 전쟁의 현장입니다. 어린이 17,000명을 포함해 65,000명 이상이 살해되었습니다. 100,000명 이상이 다쳤고, 가자의 건물과 주택 90% 이상이 파괴되었습니다. 온 가족이 무너진 건물 잔해 아래 묻히고, 수많은 아이의 몸이 미사일에 불타버렸습니다. 이러한 숫자만으로는 팔레스타인인이 겪고 있는 참혹한 현실을 온전히 드러낼 수 없습니다.

이 집단학살에 대해 전 세계가 분노해야 마땅합니다. 어떻게 한 민족 전체가 말살당하는 것을 보고도 침묵할 수 있겠습니까?

정의에는 국경이 없다

이것은 단순한 지역 분쟁이 아닙니다. 가자는 단지 지도 위의 한 점이 아닙니다. 가자는 점령과 봉쇄, 차별 속에서 계속되는 인간 고통의 상징입니다. 가자와 연대하는 것이 정치적 입장으로 축소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한 민족 전체의 생명, 자유, 존엄성에 대한 권리를 옹호하는 도덕적 의무입니다.

억압에 맞서 우리가 누군가와-그들이 누구든 상관없이- 연대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 내의 동일한 가치들을 지켜내는 일이기도 합니다. 정의와 평등의 보편적 원칙을 지키는 것은 폭정에 맞서는 모든 곳에서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듭니다. 팔레스타인인의 권리를 지키는 일은 인권 전체를 지키는 일입니다. 만약 다른 민족이-예를 들어 브라질의 정글에서- 집단학살에 직면한다면, 우리는 그들과 공통점이 전혀 없더라도 그들을 지키기 위해 일어서야 합니다. 왜냐하면 결국 인간이라는 것은 다른 인간과 연대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적 도덕성 시험

가자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한 세계의 침묵은 도덕적 양심에 대한 직접적인 시험입니다. 강자가 약자를 짓밟아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도록 허용한다는 것은, 힘이 곧 정의라는 끔찍한 국제적 규범을 확립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가자이지만 내일은 인도, 미얀마, 스웨덴, 또는 다른 어떤 곳일 수도 있습니다.

만약 이스라엘이 압도적인 증거와 지도자들에 대한 체포 영장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책임을 회피한다면, 우리는 미래의 집단학살을 조장할 위험이 있습니다. 따라서 가자와 연대하는 것은 범죄를 저지른 자들은 반드시 정의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중요한 원칙을 지키는 일입니다. 법의 보호는 선택적으로 적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일부를 위한 자유와 정의"는 모든 사람에 대한 불의입니다.

미국 학생들이 가자지구와 연대를 표명하다 인간의 연대는 국경을 초월한다
미국 학생들이 가자지구와 연대를 표명하다인간의 연대는 국경을 초월한다 ⓒ SUZANNE CORDEIRO/AFP

정의로운 대의는 여러 국가와 민족을 하나로 묶는다

어떤 대의는 국경을 초월하여 모든 신앙과 국가의 사람들을 하나로 묶습니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가자를 위한 연대 운동에 참여할 때, 그들은 불의를 거부하는 것이 본질적인 인간 가치임을 보여줍니다.

남아프리카의 아파르트헤이트에 맞선 투쟁부터 난민의 권리에 대한 전 세계적 옹호까지, 국
제 연대는 우리가 공유하는 도덕적 기준을 통해 아주 다른 사람들까지도 하나로 묶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가자와 연대한다는 것은 한국인, 아랍인, 서양인, 무슬림, 불교인, 기독교인, 무신론자 할 것 없이 모두를 하나로 묶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연대를 통해 우리는 인간이 된다는 것은 정의를 선택하는 것임을 의미하며, 어떤 정치적이거나 지리적 경계도 우리를 묶는 도덕적 연결보다 강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자유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미국 활동가 오드리 로드는 "우리가 모두 자유로워지기 전까지는 우리 중 누구도 자유롭지 않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한때 식민 지배로 고통받았던 한국인들은, 오늘 팔레스타인 사람과 연대하는 것이 내일 모든 사람의 자유를 위한 투자임을 받아들이면 좋겠습니다.

만약 우리가 한 집단에 대한 억압을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미래에 다른 집단의 억압으로 이어지는 문을 여는 것입니다. 우리가 불의를 견제하지 않고 방치한다면, 세상 곳곳에서 평화와 자유의 기반 자체가 위협받게 됩니다. 팔레스타인을 옹호하는 것은 오늘만의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한국과 전 세계의 미래 세대의 권리와 존엄성을 지키는 일입니다.

앞서 언급한 것들은 팔레스타인 사람과 연대하는 것이 사치스럽거나 부차적인 관심사가 아니라 정의와 연대에 뿌리를 둔 인간의 의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들의 권리를 지키는 일은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바로 그 가치들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무고한 사람들의 학살을 외면하면서 우리 문명은 결코 진보할 수 없습니다.

요약하면, 가자와 연대하는 여러 나라와 민족은 다음과 같은 큰 도움을 받게 될 것입니다:

-전 세계 도덕적 가치 보존: 가자와 연대는 정의에 대한 진정한 헌신과 세상 모든 곳에서 폭정에 저항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미래의 잔학 행위 방지: 우리가 테러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은 반인도적 범죄에 대해 반드시 대응할 것임을 알리는 분명한 메시지입니다.

-정치적, 윤리적 인식 제고: 가자의 대의에 참여하는 것은 사회가 불의에 대해 배우고, 집단적 실천을 이끌어내는 데 도움이 됩니다.

-더 공정하고 단결된 세계 건설: 국경을 초월한 연대는 기후 변화와 난민 위기 같은 전 세계적 도전에 맞서는 데 필요한 연민의 문화와 역량을 공유할 수 있게 합니다.

-억압자가 아닌 민중과의 연대: 가자와 연대함으로써, 우리는 잔혹한 권력에 대한 숭배가 아니라 민중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신뢰한다는 것을 확고히 드러냅니다

결국 지리적 거리는 우리를 나눌 수 있지만, 인간성은 우리를 하나로 묶습니다. 한국의 조상들이 일본 식민주의에 맞서 싸우며 세계의 지지를 바랐듯이, 이제 전 세계 억압받는 모든 이들과 연대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입니다. 가자와 연대는 정의가 특정 집단만의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자유로운 한국인의 정신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주저함이나 두려움 없이 세계에 말합시다. 우리는 정의와 평화를 지지합니다. 오늘은 가자를 지키고, 내일은 위협받는 모든 이들을 지켜낼 것입니다. 불의와 폭력이 벌어지는 곳이면 어디든 우리는 그곳에 있어야 합니다. 진실과 평화, 그리고 모든 인간의 존엄성을 위해 싸우면서 말입니다.

*번역 : 미니. 살레의 한국인 친구로, 오마이뉴스에 <미니의 팔레스타인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대량학살#가자지구#가자전쟁#가자지구와의연대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고향에서 강제로 쫓겨난 가자지구의 한 팔레스타인 운동가가 자유를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독자의견0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