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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염특보가 내려진 지난 7월 2일 오전 제주시 조천읍 함덕해수욕장에서 피서객이 여름을 즐기고 있다.
폭염특보가 내려진 지난 7월 2일 오전 제주시 조천읍 함덕해수욕장에서 피서객이 여름을 즐기고 있다. ⓒ 연합뉴스

한라산 산등성이 잔설이 아침 햇살에 녹아 중산간 드넓은 초지에 좌정한 오름들 사이사이 연둣빛 이슬로 반짝입니다. 제주에 봄이 왔습니다. 늦은 동백꽃이 숨죽인 통곡에 툭툭 떨어지고, 남쪽 바다 습한 기운이 섬에 와 닿을 즈음 제주의 여름이 시작됩니다. 저녁 붉게 물든 하늘빛이 온 섬을 삼키고 오름마다 피어난 억새가 봉수대 횃불처럼 흔들립니다. 이제 제주의 가을입니다. 이른 아침 언 손 녹이는 모닥불 연기가 제멋대로 날리고, 당근, 무, 감자밭에 수확 일손이 바쁩니다. 농번기인 사람 사는 제주의 겨울 풍경입니다.

제주는 그 자체로 보물입니다. 팔십 평생을 산 어르신도,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청년에게도, 4박 5일 여행 온 여행객에게도 정도의 차이일 뿐 제주는 아름다운 섬입니다.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고, 섬 곳곳이 국제보호지역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제주만의 독특한 문화와 공동체 역시 제주의 매력을 보여주는 중요한 가치입니다.

언제부턴가 사라진 '제주다움',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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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언제부턴가 제주다움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제주의 1인당 생활쓰레기 배출량은 전국 평균 2배 가까운 수치로 전국에서 제일 높습니다. 처리시설 부족으로 제때 처리하지 못해 쓰레기를 압축 포장해 보관하기도 했고, 필리핀에 불법 반출되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하수 발생량도 급증해 하수처리장에서 실시간 처리 부족으로 그대로 바다로 방류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바다환경이 악화하면서 해녀들이 집단으로 민원을 제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상수도 사용량도 늘어 급수시설 부족이 지적되고 있습니다. 자동차의 급속한 증가는 교통체증으로 이어졌습니다. 조사에 따르면 제주시내 일부 구역의 정체수준은 서울의 심각한 정체구간보다 높다는 보고입니다.

원인을 찾아보니 급격한 인구 증가에 원인이 있었습니다. 지난 2010년을 전후해서 저비용 항공사들이 설립되고, 줄줄이 제주 노선 취항을 합니다. 대한항공, 아시아나 양대 항공사 구조에서 다변화되면서 육지에서 제주로의 접근성은 훨씬 높아졌습니다. 항공료도 저렴해져 여행 부담이 훨씬 낮아집니다. 이때부터 관광객 수는 어마어마하게 늘기 시작했습니다. 덩달아 주민등록 주소를 옮겨 제주로 이주하는 이주민도 크게 늘었습니다. 줄곧 500만 명대에 머물던 제주 관광객은 2010년 700만 명대로 급증하고, 2013년 관광객 1천만 명을 돌파합니다. 제주도는 제주관광 2천만 시대를 준비하겠다고 밝힙니다.

그리고 지난 2015년 국토교통부는 '제주 공항인프라 확충 사전타당성 조사'를 통해 제주에 또 하나의 공항을 추가 건설하는 제주 제2공항 건설계획을 발표합니다. 그 예정지로 성산읍을 확정 발표합니다. 그러나 예정지 피해지역 주민들은 주민 동의도 없이 발표한 계획은 무효라며 즉각 반발하였습니다. 시민사회 역시 제2공항 계획의 타당성을 문제제기하고 나섰습니다.

첫째, 제주는 얼마나 많은 관광객을 수용할 수 있을까요? 이것은 피해지역 주민들뿐만 아니라 제주도민이 정부와 제주도를 향해 하는 질문입니다. 제2공항 계획 발표 전까지만 하더라도 관광객이 많이 오면 좋은 것 아니냐는 생각이었지만 생활환경의 부하와 생태계·경관 파괴가 심각해지면서 제주도민의 생각은 달라졌습니다. 과잉관광과 과도한 관광개발에 따른 문제를 방기한 채 제2공항 건설로 더 많은 관광객을 수용하겠다는 발상은 제주도민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지속가능한 제주관광을 위한 관광산업의 질적 변화와 관광 중심의 산업구조 개편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따라서 관광객의 증가를 전제로 한 제2공항 건설계획은 타당성이 없습니다.

둘째, 국토부의 항공수요 예측, 믿을 수 있을까요? 국토부는 제2공항의 필요성으로 늘어난 항공수요를 제시하고 있는데, 어찌 된 일인지 그 수요 예측은 계속해서 줄어듭니다. 제2공항 건설계획의 근거가 된 2015년 사전타당성 조사에서 제주의 장래 항공수요를 연간 4560만 명으로 예측했다가 2019년 기본계획을 수립하면서 4108만 명으로 줄었습니다. 그리고 2023년에는 연간 3970만 명으로 또 축소됐습니다. 국토부는 현 제주공항의 2단계 확충을 통해 연간 3940만 명을 수용하는 계획을 세운 바 있습니다. 이를 시행하면 굳이 제2공항이 필요 없는 셈이지요. 더군다나 국토부가 제시한 항공수요 예측은 우리사회의 고령화 추세를 전혀 반영하지 않은 것으로 이를 반영한다면 그 수요는 더 낮아져 제2공항 건설의 타당성은 사라지게 됩니다.

셋째, 제2공항 예정지는 항공기 조류 충돌로부터 과연 안전할까요? 항공기 조류 충돌의 위험성은 이미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에서도 알게 됩니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는 조류를 보호하고, 조류충돌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13km 이내를 위험구역으로 보고, 최소 8km 이내에는 조류보호구역을 둘 수 없고, 3km 이내에는 양돈장이나 과수원도 규제하고 있습니다. 이 규정은 국내에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최근 국토부는 이러한 기준 강화도 예고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국토부는 제2공항 영향범위 내에서 확인된 172종의 조류 중에 133종은 조류충돌 위험성 평가에서 제외하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일반적으로 조류충돌의 심각성 평가는 새의 크기와 무게, 군집 행동 등을 기준으로 합니다. 그런데 국토부는 이런 기준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국토부는 지난 14년간 국내 공항에서 발생한 조류충돌 중에 충돌한 새의 종류가 확인된 새를 먼저 산출하고, 다시 그 새들 중에서 피해를 준 건수를 평가기준으로 삼았습니다. 결국 지난 14년간 항공기 충돌이 없었거나 확인되지 않은 새는 앞으로도 영원히 충돌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로 위험성 평가 대상에서 모두 빠졌습니다. 또한 충돌했더라도 피해를 주지 않은 새 역시 영원히 피해를 주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입니다. 더욱 황당한 것은 그동안 국내 공항에서 발생한 조류충돌 3031건 중에서 새의 종류가 확인된 것은 364건으로 12%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제2공항 예정지와 주변의 조류 서식 현황을 보면, 예정지가 곧 철새도래지입니다. 환경부가 정한 성산에서부터 남원까지 해안가 일대 철새도래지 구역에 제2공항 예정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한 8km 안으로 오조, 종달, 하도 철새도래지가 있고, 성읍, 송당 저수지가 있습니다. 국토부가 엉터리로 조작한 기준의 조류충돌 위험성 평가에서도 제주공항의 8배에 달하는 위험도를 보였습니다.

넷째, 구좌읍 지역은 소음피해가 없을까요? 항공기는 보통 맞바람을 맞으며 뜨고 내립니다. 그래야 양력을 받아서 쉽게 뜰 수 있고,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주는 북풍이 많고 세기 때문에 북쪽 방향으로 뜨고 내리는 게 정상입니다. 그런데 국토부의 제2공항 소음등고선을 보면 주로 남쪽으로 이착륙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는 남쪽은 바다로 빠지는 반면, 북쪽은 종달, 하도, 세화 등 구좌읍 주거지역을 관통합니다. 실제 공항이 운영되면 항공기 이착륙은 북향 중심이 될 것입니다. 구좌읍 지역의 소음피해는 심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섯째, 제2공항은 공군기지가 아니라고요? 제2공항 계획을 보면 제주공항보다 부지면적은 물론 계류장, 터미널 면적도 지나치게 큽니다. 두 공항을 합치면 공항 수용능력은 연간 7천만 명 내외로 불필요한 혈세 투입의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습니다. 항공수요 예측에 비해 과다한 규모의 제2공항은 다른 용도로 이용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미 국방부는 "제주 제2공항에 공군부대를 설치 할 것"이라고 밝힌 바가 있습니다. 군사공항 겸용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농후한 것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165만평 부지의 사업 예정지에는 이 지역의 홍수를 예방하고, 지하수 함양 역할을 하는 150여 개의 숨골과 천연 용암동굴이 산재해 있습니다. 이들 숨골이 메워지면 이 일대 침수 피해는 물론이고, 지하수 함양 저하와 해수의 지하침투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제2공항 건설 여부, 도민이 결정해야 한다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일대에 551만㎡(약 166만6000평) 규모로 들어설 제주 제2공항 조감도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일대에 551만㎡(약 166만6000평) 규모로 들어설 제주 제2공항 조감도 ⓒ 국토교통부제공

이처럼 제주 제2공항 건설계획의 문제는 넘쳐납니다. 제주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서도 신중한 판단이 요구되는 사업입니다. 이에 제주도민은 제2공항 건설 여부는 제주도민 스스로 판단해서 결정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국토부와 제주도가 이를 수용해야 합니다.

이재명 정부는 이번 정부의 명칭을 '국민주권정부'로 정하였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진정한 민주주의는 국민이 주인이 되어 직접 참여하고 변화를 만들어 가는 데서 시작한다고 했습니다. 이를 제주 제2공항 갈등 현안에 적용해 주기를 바랍니다. 도민의 자기결정권을 실현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고, 진정한 국민주권을 실현하는 길입니다.

이제 제주생명평화대행진 시작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사회의 평화를 염원하는 많은 시민의 참여를 바랍니다. 무더운 날씨지만 함께 걸으며 제주의 평화를 이야기하고, 지속가능한 제주사회를 위하여 목소리를 높여주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영웅 제주제2공항강행저지비상도민회의 공동집행위원장
이영웅제주제2공항강행저지비상도민회의 공동집행위원장 ⓒ 천주교인권위원회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제주제2공항강행저지비상도민회의 공동집행위원장입니다. 이 기사는 제주의소리에도 실립니다.

제주의 평화, 온 세상의 평화를 위한 뜨거운 발걸음. 제주생명평화대행진이 올해도 진행됩니다. 2012년부터 시작해 올해로 11회째를 맞는 제주생명평화대행진이 올해는 7월 30일부터 8월 2일까지 진행됩니다. 2025 제주생명평화대행진은 기동함대사령부 창설로 동북아의 군사적 긴장을 높이고 있는 강정마을 제주해군기지에서 출발하여 난개발로 위협받는 송악산과 알뜨르를 지나 한림과 애월을 거쳐 제주시까지 걷습니다. 제주해군기지와 제2공항으로 공동체가 파괴되고 군사기지화 되어 가고 있는 제주를 지키기 위한 2025 제주생명평화대행진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4회에 걸쳐 기고합니다.


#제주생명평화대행진#대행진#제주제2공항반대#제주#강정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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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웅 (chrc) 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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