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성능 고분자 전해질 제조 방법 및 이온 전도메커니즘과 섬유형 에너지 저장 장치에서의 반응 ⓒ KIST 제공
복잡한 공정 없이 소량의 첨가제만으로 막힌 길을 뚫어 이온이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처럼 빠르게 흐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고이온전도성 고분자 전해질'을 국내 연구진이 개발했다. 실험을 통해 유연성과 내구성이 검증되어 소형화와 유연화가 핵심이 되는 웨어러블 전자기기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핵심 기술이 될 것으로 기대가 모아진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 오상록) 전북분원 기능성복합소재연구센터의 김남동 책임연구원·주용호 선임연구원과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총장 이광형) 이진우 교수 공동연구팀은 3일 "소량의 첨가제만으로 이온전도도를 획기적으로 향상시킨 고분자 전해질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에 개발한 고이온전도성 고분자 전해질은 안전성과 유연성, 에너지 효율성을 모두 갖춘 차세대 비정형 에너지 저장장치의 핵심 소재"라며 "웨어러블 전자기기의 에너지 문제 해결에 중요한 해법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강조했다.
참고로, '이온전도도'는 전해질 내에서 양이온과 음이온이 전기장을 따라 이동하면서 전류를 전달하는 능력을 의미하며, 단위는 S/cm(시멘스 퍼 센티미터)로 표현된다.
KIST와 KAIST는 이번 연구 배경에 대해 "최근 웨어러블 기기나 스마트 의류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유연하고 가벼우며 안전한 에너지 저장장치의 필요성이 높아졌다"면서 "하지만 기존 배터리는 주로 액체 전해질을 사용, 기계적 유연성의 부족으로 인해 누설이나 단락 등의 위험성이 존재해 적용이 어려웠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이에 다양한 형태로 변형이 가능한 섬유형 에너지 저장장치가 차세대 전력공급원으로 주목받고 있고, 필수적인 고체 전해질의 낮은 이온전도성은 상용화를 가로막는 주요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액체가 아닌 고체나 준고체 형태의 전해질을 적용하는 연구를 시작하게 됐다"고 소개했다.

▲다른 유사 첨가제를 사용한 고분자 전해질과 우리 연구진이 제조한 고분자 전해질 사이의 이온전도도 비교 ⓒ KIST 제공
먼저 공동연구팀은 기존 고체 전해질의 가장 큰 문제인 '낮은 이온전도성'을 해결하기 위해 '4-하이드록시 TEMPO(아래, HyTEMPO)'라는 특별한 유기 분자에 주목했다고 한다.
연구팀은 "4-하이드록시 TEMPO는 4-hydroxy-2,2,6,6-tetramethylpiperidine 1-oxyl의 약자로, 자유 라디칼을 안정화시키는 데 사용되는 유기 화합물이며, 주로 중합 반응의 억제제, 산화 방지제, 항산화제 등으로 사용된다"면서 "이 분자는 자유 전자 구조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도 외부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 다양한 기능성 소재로 활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용어 설명으로, '라디칼 유기 분자'란 홀전자를 안정적으로 보유한 유기 화합물로, 가역적이고 빠른 전자 이동 특성으로 인해 전지용 전극, 촉매 등 전기화학 기능 소재로 활용된다.
그런 후 연구진은 이 유기 분자를 고분자 전해질에 소량 첨가했고, 그 결과 고체 상태에서도 이온이 훨씬 더 잘 이동하게 되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이온전도도는 기존보다 약 17배 증가한 3.2 mS/cm 수준까지 향상되는 것 또한 확인할 수 있었다.
연구진은 "이 유기 분자는 고분자 내부에서 막힌 길을 뚫어주는 고속도로처럼 작용해 이온이 빠르게 흐를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서 "단순히 이온의 이동만 빠르게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에너지를 저장하고 내보내는 성능(25.4 Wh/kg의 저장 용량, 25 kW/kg의 출력)까지 함께 개선했다"고 강조했다.

▲유사 첨가제를 사용한 고분자 전해질(Br, I, Organic molecule, Other)과 라디칼 유기 분자를 첨가제로 사용한 고분자 전해질(This work)의 에너지 밀도, 그리고 출력 밀도의 비교 ⓒ KIST 제공
무엇보다 별도의 활성 물질 없이도, 섬유 형태의 전극만으로 고성능의 에너지 저장 장치를 만들 수 있음을 입증한 결과라는 설명이다.
아울러 유연성과 내구성 측면에서도 매우 우수한 결과를 보였는데, 실제 실험에서 8천 번 이상 구부려도 성능의 91%를 유지했다. 이를 통해 매듭을 지어도 성능이 거의 변하지 않는 수준을 보여주며 웨어러블 기기에 적합한 소재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진 왼쪽부터 KIST 기능성복합소재연구센터의 김정길 박사후연구원(제1저자), 고재형 박사후연구원(제1저자), 주용호 선임연구원(교신저자), 김남동 책임연구원(교신저자) ⓒ KIST 제공
김남동 KIST 책임연구원은 "복잡한 공정 없이 간단한 첨가만으로 이온전도도를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었다"면서 "이번 연구는 유연하고 안전한 고체전해질 기반 에너지 저장장치 산업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원천 기술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공동연구자인 주용호 KIST 선임연구원은 "라디칼 고분자의 독특한 전자 구조와 고속 산화환원 반응 특성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기존 전해질의 한계를 극복했다"며 "향후 성능 향상을 위한 연구를 지속하겠다"고 전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 유상임)와 산업통상자원부(장관 안덕근)의 지원을 받아 KIST 주요사업, 한국연구재단의 나노커넥트사업, 중견연구자지원사업 및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 산업소재원천기술개발사업으로 수행됐다. 연구 성과는 국제 학술지 <나노 마이크로 레터스(Nano-Micro Letters)>(IF 36.3, JCR 분야 1.4%) 최신호(3월 13일자)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