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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난민법에 따라 '인도적 체류' 지위를 부여받은 난민들이 있다. 이들은 더 나은 삶을 꿈꾸며 국경을 넘었지만, 아무리 오랜 시간 한국에 머물러도 가족을 초청할 수 없다. 현행법상 인도적 체류자에게는 가족 초청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가족과 함께하는 삶의 행복은 이들에게는 여전히 멀게만 느껴진다. 2025년 세계 난민의 날을 맞아, 한국 사회에 정주하고 있는 인도적 체류 난민들의 가족분리로 인한 고통과 가족결합에 대한 희망을 담은 글 네 편을 연속으로 기고한다. 사랑하는 가족과 헤어진 채 흘러가는 아프고 안타까운 시간들을 독자들이 함께 공감해주기를 바란다.

 2018. 3. 23. 시리아 학살 중단과 평화를 위한 한국의 촛불집회
2018. 3. 23. 시리아 학살 중단과 평화를 위한 한국의 촛불집회 ⓒ 나눔문화

저는 16살에 한국으로 온 시리아인 데이비드(가명)입니다. 극단주의 이슬람 테러리스트의 살인과 학살, 강제 징집, 억압적인 독재정권의 탄압으로부터 도망쳐 왔습니다. 저는 안전하게 살고 싶었던, 인생과 삶의 어려움을 잘 몰랐던 젊은이였습니다. 저는 한국 정부나 누구에게도 돈이나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당시 미성년이었던 저는 시리아에서 가져온 아주 작은 돈으로 2년 반 동안 스스로를 부양하며 힘든 세월을 혼자 보냈습니다. 일할 수 있는 법적 나이인 19살이 되자마자 일자리를 찾아 나섰고, 한국인이 잘 하지 않는, 힘든 일이나 기피하는 일을 찾아다녔습니다.

자동차 부품을 분해해 전 세계로 배송하는 외국계 회사에서 1년 동안 일했습니다. 월급은 200만 원이었고, 매달 약 140만 원(미화 약 1000달러)을 아버지, 어머니, 자매, 남동생에게 보내 식비, 집세, 생활비를 지원했습니다. 아버지는 전쟁에서 입게 된 무릎 부상 때문에 일할 수 없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집이 완전히 파괴되었던 일, 독재정권과 혁명군의 교전 중 화학무기 공격으로 거의 죽을 뻔했던 일, 밤마다 집을 떠나 숲에 숨어 지냈던 일 등은 결코 잊을 수 없는 기억입니다. 이 모든 일들은 저와 자매들, 어머니의 마음에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남겼습니다. 어머니는 우리를 걱정하다 건강이 많이 나빠졌습니다. 이제 10년이 지나 형제자매와 어머니의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들이 너무 그립습니다.

반복되는 비자발급의 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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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한국에 올 때 저에게는 3년 전 이미 약혼한 반려자가 있었고, 한국에 온 지 3년쯤 지나고 두바이로 가서 정식으로 아내와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두바이에서 약 두 달 반 동안 아내와 함께 있다가 비자가 만료돼 저는 한국으로 돌아왔고, 아내는 시리아로 돌아가 아이를 낳았습니다. 시리아에는 제 아내와 제가 얼굴도 보지 못한 채 4살이 된 아들이 있습니다.

제 희망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가족을 만나거나, 한국에서 가족과 재결합해 같이 살 수 있거나, 최소한 단기로라도 가족 방문 비자를 받는 것입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한국 정부가 저와 같은 사례를 검토하고 도와주는 것입니다. 저는 가족과 떨어져 지낸 지 4년이 넘었습니다. 저는 돌아갈 고향이 없습니다. 시리아는 13년 동안 전쟁을 겪으면서 모든 시스템이 망가졌고, 아이들이 계속 교육 받고 자라날 수 있는 환경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저는 저의 가족들이 끊임없이 두려움 속에 살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가족을 만나고 싶다는 것, 이것이 제가 원하는 전부입니다.

몇 년 전, 아내가 무장군인의 검문을 피해 간신히 시리아를 빠져나와서 한국대사관이 있는 레바논을 어렵게 찾아가 단기 방문 비자를 받으려 했지만 한국 대사관은 이를 거절했습니다. 또 얼마 후 두 달짜리 단기 가족 방문 비자를 신청했지만, 역시 거절 당했습니다.

1년이 지난 뒤 갓난아이를 데리고 나와 모든 서류를 첨부해 다시 한 번 가족 재결합 비자를 신청했지만, 대사관은 단호하게 거절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가족 방문 비자, 가족 재결합 비자, 혹은 어떠한 단기 비자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당신은 인정받은 난민이 전혀 아닙니다."

(편집자 주: 시리아 난민에 대해서 전 세계의 많은 나라들은 난민으로 인정합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시리아 난민에 대해 난민인정을 하지 않고 인도적체류자격만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아들은 이제 4살이 되었다.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아들은 이제 4살이 되었다. ⓒ 데이비드

제 단 하나의 바람, 아내와 아들과의 만남

한국에서 저는 인정받은 난민이 아니지만, 아내와 아들을 사랑하고 그들과 떨어져 있고 싶지 않은 사람입니다. 저는 매일 그리움과 슬픔을 느끼는 사람입니다. 운명이 저에게 준 상황으로 슬프고 약한 사람입니다. 저는 일에 지치고 피곤한 사람입니다. 저는 감정을 가진 사람이지, 감정 없는 기계나 단단한 돌이 아닙니다. 저는 사람이고, 사랑하는 아버지이며, 아내에게 헌신적인 남편이고, 가족의 안전과 안녕만을 바라는 가족 중심의 사람입니다. 저는 밤마다 혼자 많이 울고, 잠을 자기 위해 불면증 약을 먹으며, 고통을 끝내고 싶다는 어두운 생각을 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그저 인간다운 삶을 살고 싶을 뿐입니다. 저는 한국에 사치스럽게 살거나, 다른 사람의 자리나 그들의 일자리를 빼앗으려고 온 것이 아닙니다.

매일같이 좌절감을 느낍니다. 저는 운명이 허락할 때만 그리운 아들과 사랑하는 아내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했습니다. 아내를 안아주지도 못하고, 아들이 처음 말을 하는 모습을 보지도 못하고, 좋은 것과 멀리해야 할 나쁜 것들을 가르쳐주지도 못하고, 함께 놀고 즐기지도 못하고, 장난감이나 과자, 간식을 사주지도 못한다는 사실이 너무 마음 아픕니다. 영원하고 유일한 사랑인 아내와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이 저를 죽일 듯이 괴롭힙니다. 가족들과 산책을 하거나, 동물원이나 해변에 가거나, 휴가를 함께 갈 수도 없습니다. 그들을 볼 수도, 볼 희망조차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이 저를 슬프게 합니다.

저는 지난 몇 년간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저는 여러분께 간절한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 아내와 아들을 만날 수 있게 도와주세요. 제 목소리가 한국 정부에 전달되어 제 사정이 고려되길 바랍니다. 가족에게 전화할 때마다, 아내가 "언제 만날 수 있냐"고 물을 때마다 가슴이 찢어집니다. 저는 아내에게 "사랑하는 당신, 언젠가...(Maybe one day, my dear wife..)"라는 말 밖에 해줄 수 없습니다. 이 글은 제 인생과 수많은 어려움, 힘든 사정에 대한 아주 짧은 이야기입니다. 부디, 제 유일한 바람은 아내와 아들을 만나는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본 글은 인도적 체류 난민 데이비드(가명) 씨가 작성한 원고를 바탕으로, 난민가족결합연구팀에서 추가 인터뷰를 통해 보완·편집하였습니다. 편집 김연주 (난민인권센터, 난민가족결합연구팀)


#난민#인도적체류자#난민가족결합#시리아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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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인도적 체류 난민의 가족결합을 허하라

난민인권센터는 한국사회 내에서 배제되고 있는 난민의 권리를 위해 활동하는 시민단체로, 2009년도부터 난민권리상담, 사례대응, 사회적 인식과 제도개선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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