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매일 이용하는 교통, 그리고 대중교통에 대한 소식을 전합니다. 가려운 부분은 시원하게 긁어주고, 속터지는 부분은 가차없이 분노하는 칼럼도 써내려갑니다. 교통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전하는 곳, 여기는 [박장식의 환승센터]입니다.

▲철도 운영기관이 내놓는 철도 관련 상품, 이른바 '굿즈'가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 6월 열린 부산국제철도산업전에 펼쳐진 철도 굿즈 팝업스토어의 모습. ⓒ 박장식
철도 굿즈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단순한 판촉물과 기념품의 범위를 넘어선 지 오래다. 일상에서 여행 감성이 가득한 소품으로도 활용할 수 있는, 소장 욕구를 자극하는 다양한 상품이 대중에게도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철도가 단순한 이동 수단, 탈것을 넘어 독창적인 상품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거듭나고 있다. 지난 3월 서울역 한켠에 개장한 철도 굿즈 전문점 '코리아트레인메이츠'는 한 번에 여섯 명 이상 들어갈 수 없는 자그마한 팝업스토어지만, 새 굿즈가 출시될 때는 줄을 설 정도로 많은 시민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이 기세에 힘입어 SR에서도 수서역에 굿즈 전문점을 개장하는 한편, 주요 기차역 내 편의점에서도 열차를 본뜬 블록을 비롯한 철도 굿즈를 판매하고 나섰다. 한국철도공사를 비롯해 SR, 국가철도공단, 부산교통공사 등 다양한 철도 운영 기관이 '철도 굿즈'의 시대를 활짝 열고 있는 셈이다.
소장 욕심 자극... '철도 굿즈'의 시작은 코로나19
철도 굿즈 붐은 철도 애호가들 사이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일본에서 유행하던 철도 모형을 국내에 수입하기도 했고, 일본·유럽 등 철도 선진국으로 일컬어지는 국가에서 판매하는 철도 관련 기념품을 국내에 알리며 '철도 역시 브랜드로 만들어 판매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러자 철도 운영 업체들도 화답했다. ITX-청춘, V트레인 등 열차를 이동의 수단에서 체험의 수단으로 만든 관광열차의 개통과 함께 해당 열차를 테마로 한 '뜯어만들기' 모형 상품이나 열차 형태를 본뜬 도자기를 활용해 전통주를 만들기 시작했다. 한국 철도에서도 '공식 굿즈'의 시대가 막을 연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굿즈는 단발성 판매에 그치며 아쉬움을 남겼다.
철도 굿즈가 본격적으로 빛을 본 때는 역설적으로 코로나19유행 때였다. 이용객 입장에서는 여행이 멀어지고, 운영 기관에서는 승객이 줄어들면서 덩달아 줄어든 운송 수입을 채울 수단이 필요했기 때문. 2021년 4월 1일에는 서울교통공사가 마스코트 '또타' 인형 500개와 에코백 80개를 광화문역에서 판매하는 행사를 진행했다.
당시 서울교통공사는 운송 수입 적자로 인한 어려움으로 인해 굿즈 판매라는 통로를 이용했지만, '또타'의 인기는 예상을 넘어섰다. 행사가 열리기가 무섭게 인형이 완판되었는데, 이는 철도 운영 기관이 철도 굿즈의 높은 시장성을 현장에서 느끼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판촉물' 내지는 '기념품'에 그쳤던 철도 관련 굿즈가 실용성을 띤, 철도의 IP(지식재산권)를 활용한 '일상품'으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 박장식
여러 철도 기관과 협업해 철도 관련 굿즈를 제작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 코이로의 홍찬욱 대표는 "철도 관련 상품은 기념품, 판촉물이 지금까지 대부분이었다"면서" 양산형 제품에 철도 회사 로고만이 있는 에코백, 부채 등을 판촉물 형태로 만들었고, 판매를 염두에 두지 않은 기념품의 개념으로 만든 것이 그간 대부분의 상품이었다"라고 설명했다.
유럽은 물론, 가까운 '철도 대국' 일본에 비해서도 아쉬움이 많았다. 홍 대표는 "이른바 '굿즈' 산업은 단순히 기성품에 회사 이름을 인쇄하는 것이 아닌, 지역색과 디자인 등 IP 자산을 활용하는 것이 핵심"이라며, "다만 기존 기념품과 판촉물은 '공공기관이 나누어주는 것'에 불과했기에 인기를 끌지 못했다"며 말했다.
홍 대표는 "그래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철도 관련 상품 중에는 판매를 염두에 둔 상품이 많지 않았다"면서 "아무래도 국내 철도 운영 기관이 공공기관이니, 보수적으로 접근한 데다 상품 판매의 절차 역시 어려웠음이 아쉬웠다"고 덧붙였다.
'소장가치가 높은 상품'으로서의 물꼬는 SR이 텄다. SR은 고속열차 SRT의 디자인과 브랜드를 활용한 상품을 여럿 내놓았다. 특히 기관사가 휴대하는 열쇠, '베른 키'를 소장하기에 좋도록 굿즈 형태로 출시하면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2021년 6월, 부산에서 열린 부산국제철도기술산업전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SR 굿즈 샵'은 코로나19 기간에도 긴 대기줄이 늘어서며 인기를 증명했다.
홍찬욱 대표는 "2021년을 계기로 '철도 관련 상품을 판매한다'는 개념이 생겨난 셈"이라며, "부산국제철도기술산업전에 앞서 SRT의 디자인을 활용해 천연가죽으로 만든 카드지갑 100개를 한정판으로 만들었는데, 1분도 되지 않아서 완판될 정도로 성황했다"고 돌아봤다.
철도 운영기관의 '필수품' 된 굿즈

▲지난 6월 열린 부산국제철도산업전 내 부산교통공사 부스에서 판매되고 있는 부산 지하철 1호선 메탈 키링을 관람객이 둘러보고 있다. ⓒ 박장식
현재는 대부분의 철도 운영기관이 굿즈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서울교통공사는 현대백화점 디큐브시티점에서 팝업스토어를 개장해 '오픈런' 행렬을 만들기도 했고, 부산교통공사는 안경닦이, 역명판을 활용한 키링은 물론 금속 재질로 만들어진 철도차량 모형을 판매하고 있다. 인천교통공사 역시 굿즈 판매를 개시할 계획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철도 운영기관 가운데 관련 상품 산업이 가장 활성화된 곳을 꼽는다면 단연 SR이다. 홍찬욱 대표는 "지금까지 SRT를 테마로 한 굿즈만 300여 가지 종류가 만들어졌고, 색상 등을 카테고리로 나누면 1천 가지가 넘는다"며 설명했다. 2023년에는 국내 철도 관련 기관 중 처음으로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국제 가죽패션쇼에 굿즈를 출품했을 정도다.
각 잡은 '굿즈 산업'에서의 후발주자였던 한국철도공사 역시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철도 업계에서는 유일하게 유통 기업을 보유한 만큼, 편의점 내 PB상품(자체출시상품) 역시 '기차역에서만 살 수 있는 굿즈'로 확장하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아울러 기차 블록, 간이역을 테마로 한 워터볼 등 철도 기념 상품을 기차역 내에서 판매하는 등 이용객과의 접점을 더욱 늘려나가고 있다.
철도 운영업체의 제품이 많아지는 건 회사의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특히 철도 시설물의 운영권만을 갖고 있는 탓에 대국민 인지도가 비교적 낮았던 국가철도공단의 경우, 한국철도공사와 SR이 운영하는 굿즈 샵에 모두 참여하는 등 굿즈 제작 및 홍보에 더욱 공을 들이고 있다.
철도 업계 관계자 역시 "국가철도공단의 경우 대국민 인지도가 낮았고, 그마저도 과거 부정적인 인지 사례가 많았던 탓에 내부에서 '국가철도공단 마스코트와 로고를 활용한 굿즈가 대중에게 팔린다'는 사실에 더욱 기뻐하는 경우가 많다"며, "내부 직원들 가운데에서도 굿즈를 대량으로 구매해 주변에 나누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다"고 전하기도 했다.
'착한 산업'으로서 철도 굿즈를 바라보는 시선 또한 늘어나고 있다. 상당수의 운영 기관들이 국산 제품을 중심으로 굿즈를 꾸려나가고 있다. 특히 SR은 가죽 제품부터 식료품에 이르기까지 모든 판매 상품을 사회적 기업과 협업해 제작하는 등 공공성 역시 챙기고 있다.
이는 사회적 기업의 자생에 특히 도움이 되는 일인 데다, 지역 밀착 마케팅에도 도움이 되는 요소인 셈이다. 이에 고용노동부와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역시 많은 사회적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철도 굿즈를 운영 기관과 함께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하는 등, 정부·공공기관·사회적 기업의 동반성장을 이루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철도 굿즈가 국내 여행 문화와 결합하면서 나타날 시너지 역시 기대를 모으는 상황. 지금도 실용성 높은 굿즈가 출시되고 있는 데다가, 인천·광주·대전 등 철도가 일상 영역에 있는 지역에서 특색을 살린 굿즈가 생산되고 있는 만큼 앞으로의 철도 굿즈 산업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운영 기관 협업까지... '철도 문화'와의 상생은 과제

▲수서역 내 들어선 '샵에스알티'의 모습. SR 뿐만 아니라 국가철도공단 등 다양한 철도 운영기관의 굿즈가 함께 판매되면서 운영기관 사이의 협업에 철도 굿즈가 윤활유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 박장식
철도 굿즈 판매의 흥행은 운영기관끼리의 협업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5월 서울 수서역에 문을 연 철도 굿즈 전문 매장인 '샵에스알티', 한국철도공사가 서울역·부산역 등에 개장한 '코리아트레인메이츠'에서는 자사 상품 뿐만 아니라 부산교통공사·국가철도공단 등의 굿즈를 함께 판매하고 있다. 철도 문화의 발전을 위해 운영기관끼리 '일심동체'에 나선 셈.
특히 지난 6월 부산 벡스코에서 열렸던 2025 부산국제철도산업전에서는 여러 운영 기관이 함께 철도 굿즈를 판매하는 팝업 스토어가 열렸는데, 구매 줄이 끊이지 않고 늘어서는 등 체감할 만한 변화도 느껴졌다.
다만 앞으로 철도 굿즈가 나아갈 길이 멀다. 아직까지는 많은 운영기관이 이미지 개선이나 홍보 효과, 수입 증대에 더욱 초점을 맞춘 탓이다. 철도 관련 상품이 더욱 오랫동안 이용객과 함께 하려면 수익원으로의 접근보다는 독창적인 문화로 설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홍찬욱 대표는 "더욱 많은 철도 기업이 굿즈 제작에 동참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소비자의 반응을 모아 실용성을 높여 일상에서 쓸 수 있는 상품으로 만드는 것이 가장 큰 과제"라며, "철도 굿즈를 단순히 수입이 늘어나는 수익원으로 보는 것을 넘어, 철도를 문화, 그리고 브랜딩을 할 수 있는 긍정적인 수단으로 보는 시선으로 확장해야 철도 문화 역시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