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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리야, 여기 사탕 껍질 떨어져 있네. 줍자!"
유아차를 끌고 동네 산책을 하다 보면 가끔 바닥에 굴러다니는 쓰레기가 눈에 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쳤지만, 요즘은 아이가 그것을 먼저 가리키고는 매의 눈으로 주변을 살피며 "쓰레기야!" 하고 외치면서 뛰어가 줍기도 한다. 아이와 함께하는 산책이 '플로깅(plogging)'이 되는 순간이다.
사실 예전엔 우리 동네 공원입구와 학교 담벼락 아래, 종량제 봉투가 늘 걸려 있었다. 그래서 주변에 쓰레기가 보이면 주워서 넣으면 되었다. 산책 중 주운 쓰레기를 손에 들고 다닐 필요도 없었고 자연스레 나도 작은 환경운동을 실천하고 있었던 셈이니까.
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그 봉투들이 사라졌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쓰레기가 보여도 줍지 않게 되었다. '주워서 어디다 버리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 결국 그냥 지나치게 되고 말았다.
그런데 며칠 전,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플로깅 데이'라는 작은 행사를 했다. 선생님과 친구들과 함께 마을을 돌며 쓰레기를 줍는 일을 한 것이다. 이제 만 세 살 된 아이들이었지만, 아주 신이 나서 주워 담았다고 한다. 사진을 보니 장갑을 낀 아이 손에는 주운 쓰레기들이 들려 있었고, 눈은 초롱초롱했다. 그 모습이 왠지 마음 깊이 남게 되었다.

▲도서관 앞은 내 몫이야.로리와 할머니가 도서관 앞에서 쓰레기를 줍고 있다. ⓒ 신혜솔
그래서 나는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이제부터 아기와 함께 동네를 걸으며 다시 줍자. 다시 시작하자' 하고. 그리고 바로 시작했다. 아이와 함께 학교 근처를 돌며 과자 봉지, 빨대, 종이컵 같은 것을 주워 봉투에 담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물론, 아주 큰 변화를 만드는 건 아니지만, '우리 주변만이라도 깨끗하게 하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다. 가끔 학생들이 지나갈 때는 일부러 들으라고 한마디 하기도 한다.
"어이쿠! 형아, 누나들이 모르고 흘렸나 보네, 그래도 우리 로리가 주우니까 깨끗해질 거야. 아기가 줍는데 형아들이 또 버리진 않을 거야 그렇지?"
볼일이 있어 급히 길을 가는 중에도 아이는 쓰레기가 보이면 유아차에서 내려달라고 한다. 내려주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것들을 손으로 주워서 가지고 다니는 비닐에 넣는다. 그리고 내친김에 사방을 둘러본다. 가던 길을 가면서도 과자봉지며 작은 담배꽁초까지 주워온다. 그래서 일에 지장이 생길 경우도 많다.
"로리야, 우리 집 근처하고 놀이터, 그리고 우리가 자주 가는 도서관 하고 공원 근처만 깨끗하게 휴지를 줍자. 그리고 큰 길가나 도로 주변은 청소차 아저씨가 하실 거야, 아저씨도 일을 하고 싶으시대. 그러니 남겨주자."
말이 되는지 모르겠지만 아이를 좀 진정시켜야 할 때도 있다. 아무튼 작은 집게와 장갑 그리고 쓰레기봉투를 유아차에 넣어가지고 다니는 것은 필수가 되었다.
로리는 지금 기저귀도 떼고 있는 중이다. 아니, 떼었다! 플라스틱 코팅이 되어 분해되지 않는 일회용 기저귀가 지구에 남긴 상처에 대해서도 아이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완전히 기저귀를 떼기까지는 시간이 걸렸지만 요 며칠 사이로 실수를 하지 않는 걸 보면 이젠 완전히 뗐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로리는 기저귀 안 차고 응가도 혼자 잘하네! 지구가 좋아하겠다~" 하면 아이도 "응, 나 기저귀 안 해! 할머니! 지구도 안 아플 거야. 지구를 병원에 데리고 가려고 했는데 안 가도 될 것 같아"라고 으쓱하며 말한다.
아이에게 기후와 환경 이야기를 어렵게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함께 느끼고, 몸으로 실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쓰레기를 주워 담는 일, 일회용품을 줄이는 일, 깨끗한 공원에서 친구들과 뛰노는 즐거움. 이 모든 것이 아이의 환경교육이고, 우리의 작은 실천이다.
지금도 동네 학교 담벼락엔 쓰레기들이 흩어져 있다. 하굣길에 학생들이 무심코 버린 음료수컵과 과자봉지들. 누군가가 관심을 가지면 달라질 수 있다는 걸 믿는다. 우리 아이에게 "이걸 주워서 봉투에 넣으면, 우리 동네가 더 예뻐질 거야"라고 말하는 것처럼. 아기와 함께 하는 플로깅, 그건 지구를 위한 산책이다. 오늘도 아이 손을 잡고 천천히 걷는다. 조용히, 그리고 기쁘게.
함께 실천해요!
✔️ 산책할 때 작은 쓰레기봉투 들고 다니기
✔️ 자녀와 함께 '우리 동네 쓰레기 지도' 그려보기
✔️ 동네 학교나 공원에 쓰레기 수거함 요청 민원 넣기
*플로깅plogging: 스웨덴어에서 '줍다'를 의미하는 'plocka upp'과 영어 'jogging'의 합성어로, 조깅을 하면서 주변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는 행위를 뜻함.(네이버 사전)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 스토리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