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축만제1799년(정조 23년), 수원 화성의 방어망 완성과 함께 조성된 대형 관개 저수지 ⓒ 문운주
조선 정조는 도시를 설계하고, 백성의 삶을 바꾸려 한 개혁자였다. 그가 직접 계획한 도시가 바로 수원, 그리고 그 심장부 화성이다. 정조는 부친의 능침을 옮기며 이곳에 행궁을 짓고, 성곽을 둘러 이상적인 도시와 국방을 구현했다.
그러나 그의 이상은 성곽 안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는 병사와 백성이 함께 일하는 둔전을 운영했고, 그 실현을 가능케 한 것이 바로 축만제다. 이 저수지는 민생과 생태, 그리고 실용의 정신이 깃든 장소였다. 정조가 꿈꾼 정치와 삶, 그리고 사람을 향한 시선을 좇으며, 오늘의 수원 속에 살아 있는 그의 흔적을 찾아 나선다.
5월 31일 오후 4시, 정조의 효심이 깃든 능을 뒤로하고, 그의 또 다른 꿈이 담긴 저수지로 조용히 발걸음을 옮긴다. 길가에는 나무 그림자가 하나둘 드리워지며 땅 위를 덮기 시작한다. 이번 여정의 마지막 목적지는 바로 '천년만년 만석 생산'을 염원했던 축만제다.
서호 수자원센터 인근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서호천 갓길 '자연의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새싹교를 지나 시계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호숫가 한편에서 눈길을 끄는 이들이 보인다. 색소폰을 든 시니어 동아리 회원들이다. 잔잔한 풍경 속에서 그들의 음악은 의외의 활기를 더한다.
'미아리고개'를 부드럽게 연주하는 색소폰 소리가 호수 위로 은은하게 퍼진다. 관객은 많지 않았다. 모두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연주가 끝나자 자연스레 박수가 흘러나왔다. 노후를 건강하게 즐기는 그들의 모습이 부러웠다. 나도 모르게 한참을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

▲축만제1799년(정조 23년), 수원 화성의 방어망 완성과 함께 조성된 대형 관개 저수지 ⓒ 문운주
이윽고, 축만제에 도착했다. 축만제는 1799년(정조 23년), 수원 화성의 방어망 완성과 함께 조성된 대형 관개 저수지다. 수원성을 쌓는 일련의 사업 중 하나로, 화성 서쪽 여기산 기슭에 내탕금 3만 냥을 들여 축조했다고 전해진다. 제방의 길이는 약 380m, 높이 2.4m이며, 수문 두 개를 갖춘 실용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다.

▲축만제인공섬 민물가마우지 서식지 ⓒ 문운주

▲축만제북부작물연구센터의 연구 기반지 ⓒ 문운주
제방 위 숲길을 따라 걷다 보면, 호수 한가운데 작은 인공섬이 눈에 들어온다. 하얗게 변한 나무들 사이에 까맣게 몰려 있는 것은 민물가마우지 떼다. 원래는 겨울마다 찾아오는 철새였지만, 이제는 이곳에 터를 잡고 텃새처럼 살아가고 있다. 새들의 보금자리이자 낙원이다.
나무들이 하얗게 변한 이유는 가마우지의 배설물 때문이다. 생명력이 넘치는 풍경 속에 자연이 입은 상처 또한 함께 드러난다. 길 한편에는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도심 속 생물서식지'라는 안내판이 서 있지만, 푸르름이 돌아오는 계절에도 이 상처는 쉽게 지워지지 않을 듯하다.
발걸음을 다시 옮겨 서호공원 쉼터를 지나면, 축만제 제방 아래로 정갈하게 정비된 논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이 논들은 농촌진흥청 중북부작물연구센터의 연구 기반지로 활용되고 있다. 정조가 설계한 이 물길과 땅이 20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농업과 연구의 터전으로 살아 있다는 사실은 놀라움과 감동을 함께 안겨준다.

▲항미정1831년, 수원유수 박기수가 세운 정자 ⓒ 문운주
고요한 호수와 반듯한 논들이 어우러진 풍경 속을 지나 언덕을 오르면, 제방 위에 아담한 정자가 눈에 띈다. 항미정(杭眉亭)이다. 이 정자는 1831년(순조 31년), 당시 화성유수였던 박기수가 현재의 자리에 세웠다. 이름은 중국 시인 소동파의 시구, "서호는 항주의 미목 같다"는 표현에서 따왔다고 한다.
항미정은 단지 풍경 좋은 정자가 아니다. 1908년 10월 2일, 순종 황제가 융·건릉을 참배하러 수원을 방문했을 당시, 서호 임시 정거장에서 하차해 축만제 제방길을 지나 이곳 항미정에서 차를 마시며 잠시 쉬었던 유서 깊은 정자이기도 하다.
정자에 올라서면 정조가 설계한 물길과 논, 그리고 지금도 이어지는 생태와 사람들의 삶이 한눈에 펼쳐진다. 도심 속에 조용히 흐르는 이 풍경은, 단순한 역사 유산이 아니라 여전히 숨 쉬는 공간이다.
짧은 여정이었지만, 한 개혁 군주의 뜻과 길을 따라 걷는 시간이었다. 사람을 위한 정치를 꿈꿨던 정조의 이상은, 오늘날 도시와 농업· 생태가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수원의 일상 속에서 여전히 살아 있다. 축만제와 항미정은 그 정신이 흐르고 있는 현재 진행형의 역사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