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유튜브 채널 '조승연의 탐구생활' 방송화면 갈무리
유튜브 채널 '조승연의 탐구생활' 방송화면 갈무리 ⓒ 조승연의 탐구생활

내 삶은 자기개발 그 자체였다. 유치원도 어린이집도 다니지 않았던 나는 온라인 교육 콘텐츠로 한글과 영어를 배웠다. 21살에 친구와 첫 오사카 여행을 다녀온 후 현지인과 번역기 없이 말하고 싶어 일본어를 배웠다. 왠지 나중에 화물차를 몰 일이 생길 것 같아 대형면허를 따고, 풀코스 마라톤에 나가고 싶어 러닝화를 샀다. 친구들은 나의 24시간이 48시간 같다며 혀를 내둘렀다. 누군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발전하고 싶은 욕심에 하는 것이 '자기개발'이라면, 내 삶이 그 자체라 해도 무방하겠다.

그때 작가 조승연 <'자기개발 안 하면 시간 낭비다?'에 대한 솔직한 생각 털어보기> 유튜브 영상이 눈에 들어왔다.(영상주소 : https://www.youtube.com/watch?v=AqEN8qOcAcA&t=97s)

그는 자기개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국인들을 시시포스의 바위에 비유했다. 산 정상까지 바위를 밀어 올렸다가 떨어지면 다시 굴리기를 반복하는 사람. 조 작가는 자기개발을 세 가지로 나눴다. 디벨롭먼트(Development)와 컬티베이션(Cultivation), 그리고 스토리(Story)다.

AD
디벨롭먼트(Development)는 고용시장에 관한 것이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직장인 스터디에 들어가고, 퇴근 후 자격증 학원에 가는 것이 이에 속한다. 나도 한동안 회사를 옮기고 싶어서 다양한 직종의 업무를 배웠다. 만점으로 대형면허를 따고, 스스로 코딩을 배워 사이트도 만들었다.

문제는 요령을 피우려고 회사에서 틈틈이 시간 날 때마다 다른 분야의 공부를 했더니 마음이 불안정해졌다. 매사에 눈치를 보고, 이것도 저것도 집중하기 힘들었다. 결국 일도 애매, 공부도 애매한 상태가 됐다. 그렇다고 일 이외에 아무 공부도 하지 않으면 내가 영원히 이곳에 안주할 것 같은 불안감에 시달렸다.

컬티베이션(Cultivation)은 조 작가의 말에 따르면 고용시장과 상관없이 내 마음의 정원을 풍요롭게 가꾸기 위해서 하는 행위다. 커리어와 상관이 없더라도 스와힐리어를 배우거나 악기를 연주하는 일 등이다. 내게는 '러닝'이 이에 해당한다. 프로선수가 아니기 때문에 뛴다고 해서 누가 돈을 주진 않는다. 오로지 마음의 풍요로움을 위해서 뛴다. 디벨롭먼트를 하면서 쌓인 스트레스도 뛰면서 푼다.

그러나 재밌는 점은 이 또한 시간이 지날수록 디벨롭먼트처럼 압박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어떤 것이던 끝장을 보려는 것이 한국인의 DNA라고 했던가. 2년이 지나도 페이스와 심박수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괜히 조급해져 훈련량을 늘리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졸기 시작했고, 결국 디벨롭먼트와 컬티베이션 사이에서 견뎌내지 못한 내게 대상포진이 찾아왔다.

밖이 아닌 안으로 파고들기

 대형면허 딴 날
대형면허 딴 날 ⓒ 정누리

조 작가는 디벨롭먼트와 컬티베이션을 통해 만들어진 서사, 경험, 추억을 스토리(Story)라고 했다. 그러나 내 자기개발은 항상 부상을 입거나 관심이 떨어져서 흐지부지 관두는 결말이었다. 왜 매번 나의 성장 스토리는 해피엔딩도 배드엔딩도 아닌 그저 심심한 마무리일까. 진통제 주사를 맞고 오는 길, 곰곰이 생각해봤다.

결국 내게 필요한 자기개발은 디벨롭먼트도 컬티베이션도 아니었다. 재밌는 점은 두 단어 모두 '밖'을 의미에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디벨롭먼트의 어원은 '해제하다'라는 뜻의 des-와 '포장하다'는 뜻의 voloper가 결합된 단어다. 꽁꽁 감싼 것을 풀어헤쳐 바깥으로 드러낸다는 뜻이다. '경작하다'라는 뜻을 가진 컬티베이션 또한 씨앗에게 햇빛과 물을 줘 안에 들어있던 포자를 바깥으로 싹을 틔우게 해주는 행위다. 그러니 여태까지 난 특정 방향 없이 산발적인 분출 행위를 했을 뿐이다. 내게 필요한 자기개발은 안으로 파고드는 것, 바로 디그(dig into)였다.

그간 내가 잠시 머물 뿐이라고 생각했던 회사의 일을 제대로 배워보기 시작했다. 가만 보면 우리 회사도 재밌는 점이 아주 많았다. 몇 안 되는 문화유산 복제품 회사이기도 하고, 그만큼 알아야 하는 것도 많다. 보존처리계획 작성항목도 알아야 하고, 문화유산에 관한 역사도 이해해야 하고, 내가 꼭 불교가 아니더라도 절의 건축 양식을 알아야 스님들과 원활히 대화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최근 국가유산수리기능사 자격증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탈출하기 위한 디벨롭먼트를 했다면, 이제는 회사에 도움이 될 만한 방향의 디벨롭먼트를 한다. 그간 열심히 배운 코딩도 회사에 써먹을 일이 없을까 고심했다. 우리 회사 홈페이지가 상당히 구식이었다. 혼자 WIX와 백엔드 지식을 가지고 홈페이지를 개편하기 시작했다. 안으로 파고들어도 파낼 것이 아주 많았다. 산발적인 자기개발로 인해 헤매던 맘에 한 가닥 방향이 잡히기 시작했다.

컬티베이션 측면에서도 러닝을 하는 행위 자체에 만족하지 않고, 내가 왜 실력이 늘지 않는지 시간을 내어 공부했다. 황영조 금메달리스트의 말이 인상깊었다. 아마추어가 가장 흔하게 하는 실수는 발끝과 내가 달리는 방향이 다르다는 것이다. 무릎과 발끝은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과 같아야 한다. 자세를 교정하니 쓰이는 근육이 달라졌다. 속도가 나날이 빨라졌다. 관절도 안 아프다. 비로소 마음에 효능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과 몸이 일치해야 한다. 그것은 비단 신체적인 것만의 얘기가 아니었다.

영상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마무리 멘트였다. 조 작가는 '자기개발'과 '공부'같은 단어가 그리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한다. 명확한 이미지는 없고 열심히 하는 분위기만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월 120km를 달린다", "매일 영어로 2장 분량의 일기를 쓴다" 등의 실질적인 행동의 묘사다. 내 스스로에게도 질문을 던져보자. 난 '무엇'을 하고 있는가. 단순히 자기개발을 '한다'에 초점을 맞추지는 않았나. 시시포스처럼 끊임없이 위안과 불안을 반복하지는 않았는가.

알베르 카뮈는 <시시포스 신화>(Le mythe de Sisyphe)에서 이렇게 말했다. "시시포스가 신에게 유일하게 반항하는 방법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반복을 즐기는 것이다." 내가 만약 시시포스라면 다음과 같은 것을 연구하겠다. 바위를 좀 더 효율적으로 굴릴 수 있는 자세, 주동 근육, 마인드 컨트롤하는 법, 그늘은 고도 몇 km에 있는지 등등. 그 분야의 귀신이 되겠다.

그러다 보면 누가 알겠는가. 정신 차려보니 바위가 조금이라도 둥글어져 있을지. 혹은 손 모양대로 오목하게 패어 그립이 생겼을지. 결국 안으로 파고들다보면 장애물도 내 습관대로 맞춰진다. 그때 비로소 시시포스의 형벌은 축복이 되리라.

 유튜브 채널 '조승연의 탐구생활' 방송화면 갈무리
유튜브 채널 '조승연의 탐구생활' 방송화면 갈무리 ⓒ 조승연의 탐구생활


#대형면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정누리 (asp835) 내방

반갑습니다. 정누리입니다. snflsnfl835@naver.com




독자의견0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