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책은 PR로 시작해서 PR로 완성된다. ⓒ 챗GPT
우리 민족에 더할 나위 없는 영예로운 시대가 도래했다. 동학농민혁명으로 시작된 130년의 역사를 배경으로 진행된 '빛의 혁명'은 저항과 분열을 극복하고 국민주권 정부로 정립된다면 세계 4대 혁명으로 기록될 것이다. 더 나아가, 14세기 유럽에서 페스트 이후 르네상스가 도래했듯이, 21세기 팬데믹 이후 한국 르네상스 시대를 열어가는 기회도 주어질 것이다.
정책 PR으로 세계 4대 혁명을 완성하고 한국 르네상스 시대를 열 수 있다니, 도대체 정책 PR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추진해야 이런 한반도 역사에 유례없는 시대가 가능할 것인가?
불평등, 공동체 상실, 지역 소멸, 남녀 갈등, 계엄 및 탄핵을 거치면서 여론 분열은 심화되고 있다. 국내적으로는 사회 대개혁과 국민 통합을, 대외적으로는 국가 정체성 확립을 위한 공공외교(public diplomacy)를 실행해야 할 시기이다.
정부가 차갑고 비인간적이며 특정 세력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으로 보이면, 공중(public)으로부터 정부에 대한 불신은 증폭된다. 인간적인 고뇌와 합리적 의사 결정 과정이 결여되면 국가의 전략은 실패하고 국가에 대한 불신도 커지게 된다.
여기서 유의할 점은 'Public'의 의미가 '공공'이 아니라 '공중'이라는 것이다. '공중(Public)'이란 지역 주민, 언론, 전문가, 주주, NGO, 사원, 여론 주도층, 정책 수용자, 외국 정부 및 국민 등과 같이 특정 쟁점에 대해 커뮤니케이션 과정에 참여해 정책 결정과 수행에 영향을 주고받는 집단을 말한다. 다른 학문에서는 이러한 집단을 '이해관계자'라고도 부른다.
그간 우리 사회에서는 언론, 전문가, CEO조차도 PR을 '널리 알린다'는 홍보(퍼블리시티)로만 한정해 사용해 왔다. 앞으로 다루겠지만, 한국 사회에서 개혁이 거듭 실패한 근원이기도 하다. 세종, 정조, 이순신, 김대중, 노무현, 유일한, 이건희, 정주영, 최종현, 김장하 등 소위 한국의 위인들은 공중관계를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했던 분들이다.
훌륭한 정책 만드는 것보다 성공시키는 게 어렵다
'정책 PR'이란 혁신을 달성하기 위해 국민이 수용할 수 있는 논리적 전략과 콘텐츠를 개발하고, 국가 건강이라는 공동 가치를 실현하는 전략적 커뮤니케이션을 수행하며, 국민이 참여하는 이른바 신뢰 시스템을 구축하고 유지하는 것이다. 정책 콘텐츠와 PR이 개혁 성공에 기여하는 비율은 30:70으로, PR이 훨씬 더 중요하다. 훌륭한 정책을 만드는 것보다 이 정책을 성공시키는 것이 더 어렵기 때문이다.
진화론은 공중관계(PR)가 왜 시대정신인지를 설명해 준다. 정책에서 환경이란 '공중'이다. 정부가 혁신에 성공하려면 환경에 적응해야 하듯, '공중의 생각'에 적응해야 한다. 역사를 주도했던 수많은 스토리텔링, 즉 PR 사례들이 이를 증명한다. PR이 없는 개혁, 즉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동의와 지지를 받지 못하는 개혁은 불가능함을 역사는 증언하고 있다(노승영, 2023).
외국에서 그 사례를 찾을 필요는 없다. 세종과 정조는 정책 PR을 이해하고 적용했던 리더들이었다. 세종은 한국 최초로 전국 단위 여론 조사를 실시하여 반대하는 신하들을 설득한 후 토지세 개혁을 성공시켰다. 정조는 경제 활성화와 개혁 정치를 추진하기 위해 조선 최초 신도시인 수원 화성을 건설했다.
지방의 경제난을 해소하기 위해 전국에 걸쳐 수많은 사람들이 인부로 참여하도록 했으며, 동기 부여를 위해 성문 외벽에 이들의 이름을 새기도록 했다. 훈민정음의 창제와 전파는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책 PR 사례이다. 창제는 세종이, 본격적인 전파는 정조가 시작했다.
왜 개혁은 실패로 끝나는가? 방법이 서툴렀기 때문이다. 아무리 훌륭한 내용이라도 그 실천 방법이 서투르면 개혁은 실패한다. 정책만으로는 개혁을 성공시킬 수 없다. 전략적 정책 PR 프로그램이 사전에 마련되지 않은 개혁은 아무리 훌륭한 내용을 담고 있더라도 반드시 실패하게 된다. 개혁의 대상은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공중)이기 때문에, 공중을 변화시키지 않는 개혁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PR 학자 컬립(Cutlip)은 그의 저서 <보이지 않는 힘(Unseen Power: Public Relations. A History)>에서 전쟁, 혁명, 각 분야의 개혁 등 미국 변천사를 방대하게 재조명하며, 미국 역사는 일반인에게 보이지 않았던 힘, 즉 PR이 작용해 발전할 수 있었다고 설파한다. PR이 없었다면 미국 독립도 그렇게 쉽사리 성사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영국학자 핌로트(Pimlott)는 1940년대 후반, '왜 미국이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를 영국보다 더 일찍 확립할 수 있었을까'에 관한 연구에서 'PR이 미국 민주주의의 기초가 되었다'고 결론지었다. 그는 만일 정부가 국민, 교회, 노조, 대학생, 지역 주민 등과의 충돌을 해결하거나 이들에게 일관성 있게 발언하지 못한다면 현대 행정은 마비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필자는 오래 전에 개혁 실패 원인을 개혁 동반자로 향한 동기 부여 부족, 비효율적 커뮤니케이션 시스템, 사전 PR 기획 부족, 구호성 및 일회성 캠페인, 부적절한 언론 대응 등으로 정리한 바 있다. 이는 최근 정부들의 실패 원인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명박 정부 이후 정부 PR은 후퇴했다. 이는 한국이 외형적으로 성장했지만 오히려 불평등, 차별, 갈등, 분열 등이 심화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PR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지향하는데, PR의 후퇴는 필연적으로 관계 파멸을 가져온다. (※ 다음 기사에 내용이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신호창은 PR전공 저널리즘 박사로 전북대·이화여대·서강대 교수를 역임했다. 2024년 3월부터 서강대 지식융합미디어대학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로 재직하며 공공커뮤니케이션 및 공공외교를 강의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