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는 심화하고, 젊은이는 떠나며, 마을은 비어갑니다. 요즈음 농촌 풍경입니다. 정말 피할 수 없는 흐름일까요? 여기 '읍면자치'를 통해 보다 나은 마을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소중한 시도를 조명합니다. 더 많은 기사는 <월간 옥이네> 6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충북 옥천 이원자치위원회의 모습. ⓒ 월간 옥이네
"2025년도 5월 정기회의 개회를 선언합니다."
5월 7일 충북 옥천 이원면다목적회관에서 이원면 주민자치회 박영웅 회장의 개회 선언으로 정기회의가 시작됐다. 25명의 위원 중 19명이 참석한 정기회의에는 야간 경관 사업 변경안과 하반기 마을 행사, 사고 위험 지역 반사경 설치 등을 논의했다. 기획자치, 지역개발, 문화체육교육, 환경복지 네 개 분과 위원들의 적극적인 의견으로 열띤 분위기 속에서 5월 정기회의가 진행됐다.
매달 한 번 열리는 주민자치회 정기회의는 마을에 필요한 것을 발굴하고 해결 방안을 만들어 가는 자리다. 생업으로 바쁜 와중에도 위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살기 좋은 마을'을 위해서. 주민이 움직이지 않으면 바뀌지 않는다는 걸 실천과 경험으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면 지역에서 주민자치를 하기란 쉽지 않다. 활발한 논의만큼 해결 과제가 산적해 있지만 인력부족과 법적·권한 제약에 가로막히기 때문이다. 이원면 주민자치회 박영웅(65) 회장에게 읍면자치의 현주소, 주민자치회 이야기를 들어봤다.
마을을 움직이는 작은 회의

▲충북 옥천 이원자치위원회의 모습. ⓒ 월간 옥이네
이원면주민자치회의 5월 정기회의에선 야간 경관, 꽃길 조성 예산안을 논의했다. 4월부터 이어진 논의 결과 야간 조명 설치비 2000만 원, 기존 경관 조명 교체비 500만 원, 꽃길 조성 1000만 원의 예산을 책정하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예산 확정 직전까지 이어진 위원들의 발언으로 회의는 예정시간 30분을 넘겨서야 마무리됐다.
"이원면 주민자치회 25명의 위원은 네 개 분과(기획자치, 지역개발, 문화체육교육, 환경복지) 중 관심 있는 분과에서 활동해요. 주민자치회는 위원들의 적극성에 따라 분위기가 많이 달라져요. 발언이 한 위원에게 몰리지 않게, 모두가 발언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해요. 그러다 보니 늘 예정된 시간보다 회의가 길어져요."
의견 나누기가 마을 문제 발굴과 해결의 시작점인 만큼 발언권 보장은 필수다. 시간이 들어도 한 사람 한 사람의 발언을 보장하는 이유도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서다. 주민자치회 일에 익숙하지 않은 주민들은 발언 시간을 통해 주민자치를 경험하고 배울 수 있기도 하다.
"주민의 권리를 찾는 것이 주민자치라고 생각해요. 안타깝게도 이 권리는 아무도 보장해 주지 않아요. 마을에 무엇이 필요한지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야 하는 이유죠. 먹고살기 바빠 신경을 못 쓰기도 하지만 어떻게 목소리 내는지 방법을 몰라 못하는 경우도 많아요. 고민을 나누고 해결 방안을 찾아가는 법을 주민자치회에서 경험하는 거죠."
고령화와 인구 감소가 심각한 농촌이기에 주민자치회의 존재는 더욱 중요하다. 마을에 대한 주민들의 고민을 듣고 해결책을 찾는 주민자치회가 지속되려면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이원면주민자치위원회, 이원면발전위원회를 거쳐 이원면 주민자치회까지, 박영웅 회장이 오랜 시간 주민자치 활동을 하며 깨달은 것도 주민들의 경험이 지속가능한 주민자치를 만든다는 것이다. 주민자치 활성화 역시 "마을에 필요한 것을 말했더니 삶이 달라지더라"하는 경험이 많아야 가능하다고 말한다.
권한 없는 면 단위 자치의 벽

▲충북 옥천 이원자치위원회 박영웅 회장. ⓒ 월간 옥이네
마을 일에 관한 의견을 나누고 주민과 행정 사이 중간다리 역할을 하기도하는 주민자치회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할까?
이원면 주민자치회는 2022년 출범해 현재 2기 운영 중이다. 옥천군 주민자치회 조례에 따라 주민총회, 주민자치계획 수립, 주민자치프로그램 운영, 발표회·워크숍·성과공유회 등의 주민자치 관련 교육활동 및 행사, 공모사업을 수행한다. 이 외에 자치센터 운영 같은 수탁업무도 가능하다.
조례에 따라 매년 주민들에게 마을의제를 제안받고 이를 주민총회를 거쳐 선정해 주민참여예산 5천만 원으로 사업을 진행한다. 여기서 주민자치회의 역할은 주민총회에 올릴 마을의제를 추리고 관련된 사업을 수행하는 것이다.
주민이 주체가 돼 마을 문제를 직접 해결하는 조직이지만 자발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행정의 소극적인 홍보로 주민자치회 위원 모집 및 의제 발굴에 주민들의 참여가 저조하고 다른 기관과의 협업이 이뤄지지 않아 주민자치회 사업 논의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는다. 이 외에도 봉사단체라는 잘못된 인식, 법적·권한 부족에 따른 자율성 제한, 인력 지원 및 주민 역량 강화 교육 부족 등이 있다.
"바깥에서 봤을 땐 주민자치회가 권한이 있어 보여도 그렇지 않아요. 저희가 자체적으로 안건을 결정하고 사업을 진행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거든요. 한 달간 모집된 안건 중 주민총회와 행정에 올릴 것을 선정하는 역할밖에 안 돼요."
주민자치회가 "행정 업무 대행" 수준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한 그는 마을의제 접수에도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마을의제를 제안하는 주민이 없는 것이다.

▲충북 옥천 이원자치위원회에서 한 위원이 발언하고 있다. ⓒ 월간 옥이네
"실생활에 있는 문제를 끄집어내야 하는데 그것을 말해 줄 사람이 없어요. 안건 모집에 대한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아 모르는 사람도 많아요. 그러다 보니 주민 목소리가 제대로 안 담기는 거죠. 의제가 없을 경우 주민자치회가 대신 정해요. 그 후엔 행정에서 의제가 걸러지고 주민총회에선 해결 과제를 리 단위 마을과 이원면 전체 사안을 두고 경쟁하다 보니 예산을 효율적으로 쓰기 어려운 문제가 생겨요."
주민 삶에 변화를 일으키려면 단순 제안이 아닌, 정책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중요하다. 하지만 현재의 주민자치회는 마을 의제에서 정책 발굴로 나아가는 데 여러 한계를 안고 있다. 사업 선정 과정에서 주민들의 의견이 충분히 담기지 않다 보니 취미 프로그램 위주의 사업이 진행되고 이에 대한 주민들의 평가가 없어 매년 비슷한 사업이 되풀이된다.
"주민들의 삶을 바꾸기 위해선 정책으로 연결돼야 해요. 눈에 보이는 변화가 있어야 주민들도 주민자치에 더 관심을 보일 테고 주민자치회 위원들도 마을을 위해 뭔가를 이뤄냈다는 자부심이 생길 텐데 지금으로선 어렵죠."
공직선거법도 활동에 걸림돌로 작용해 왔다. 지방자치분권 및 지방행정체제 개편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설치된 주민자치회는 현행 법상 공직선거법(제60조 선거운동을 할 수 없는 자, 제86조 공무원 등의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금지 내용 등) 준수 의무를 함께 가진다. 이른바 '정치적 중립 의무'인데, 이 때문에 주민자치회 행사에서 음식이나 기념품 제공 등이 불가능하다. 선거에 영향을 끼치는 행위(선거법 위반)가 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다르다. 함께 밥상에 둘러앉아 마을 대소사는 물론 시시콜콜한 공동체 일을 나눌 수 있어야 하는 주민자치회가 그 활동 영역을 매우 좁게 해석한 법 테두리 안에 갇히면서 '밥 한 끼' 조차 조심스러운 상황에 놓인 셈이다. 주민 간 신뢰와 유대를 쌓기 위한 최소한의 자리가 법적 제약에 막히면서 주민자치의 본래 취지와도 충돌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마을 행사 준비할 때마다 음식 이야기가 빠지지 않고 나와요.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아쉬움에 한 번씩 나오게 되는 것 같아요. 이것 말고도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예산 부족과 타기관 연계가 힘들어 생각할 엄두도 못 내요."
이원면 주민자치회는 올해 어린이를 위한 생존 수영 수업을 진행하고 내년에는 어린이 밧줄놀이터 운영을 계획 중이다. 마을 어린이 놀이공간 조성과 안전 교육에 대한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주민자치회가 추진한 사업이다. 일회성 사업이 아닌 꾸준히 지속될 수 있도록 학교와의 연계를 고민하기도 했다.
"학사 일정은 1, 2월이면 완성돼요. 하지만 주민자치회 예산은 2월 이후에 나와서 같이 뭔갈 하고 싶어도 일정 짜기가 어려워요. 학교에서 일정 변경을 부담스러워하거든요. 군청, 교육청, 학교, 주민자치회가 같이 움직여야 가능한데 서로 협조하는 분위기도 아니고요. 예산도 1년 안에 사용해야 하니까 장기 프로젝트를 할 수 없는 구조예요."
우리가 바라는 주민자치

▲충북 옥천 이원자치위원회의 모습.
ⓒ 월간 옥이네
박영웅 회장은 이원면주민자치위원회 위원장 시절 현재 주민자치회가 겪는 어려움을 예상하고 시도한 것이 있다. 2010년대 말 행정안전부의 주민자치회 전환 계획이 나올 무렵 제대로 된 주민자치를 실행하기 위해 주민자치위원회가 옥천군에 몇 가지 제안을 한 것이다.
"김영만 군수(2010~2018년) 시절 주민자치회 조례에 관한 의견을 전했죠. 읍·면장 임명, 1억 원 이상 규모의 공사를 할 경우 주민과 협의할 것을 제안했어요. 군수는 긍정적이었지만 군의회가 반대해서 막혔죠. 그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조례에 반영됐다면 지금보다 주체적으로 활동할 수 있었을 거예요."
면 지역의 특색을 담은 정책을 발굴하려면 예산, 교육, 일자리 분야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그. 상향식 예산 조달, 권리 찾기 내용을 담은 주민교육, 소득으로 이어지는 주민자치회 등 구체적인 제안이 이어진다.
"지금 주민자치회는 위원들의 봉사로 운영되고 있어요. 주민자치회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상근 직원 고용이 필요해요. 더 깊고 자세하게 마을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바탕으로 마을 의제를 발굴해야죠. 그렇게 만들어진 사업 계획안에 따라 예산을 편성 받고요. 지방소멸대응기금을 이용하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해요.(국가균형발전특별법에 따라 인구감소지역에 재정을 지원 하는 것으로 옥천군은 매년 72억 원을 지원받는다)"
주민자치가 왜 필요한지, 예산과 정책을 공부할 수 있는 주민교육으로 자생력을 기르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현재 이원면 인구는 총 3803명(2025년 4월 기준) 그중 65세 이상 인구는 49%(1876명)다. 전체 인구 중 고령 인구가 절반 가까이 차지하는 이원면에서 마을 일을 할 청년 찾기란 쉽지 않다. 박영웅 회장은 주민 역량을 길러 더 많은 이와 함께 해야 견고한 주민자치회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주민자치회 위원을 모집하면 할 사람이 없어요. 마을 일 한다고 모이면 다 똑같은 사람인 이유가 이런 것 때문이에요. 늘 하는 사람만 하는 건데, 이분들마저 그만두면 정말 할 사람이 없어지는 거예요. 주민자치회가 건강하게 오래 지속되려면 새로운 사람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주민들의 역량을 기르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옥천군 주민자치회 및 주민자치센터 설치·운영에 관한 조례에 명시된 수탁 업무도 이행되길 바란다. 읍·면 지역 자치센터의 운영 등 업무에 관한 수탁 내용이 존재하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실행된 적은 없다.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선 인건비와 운영 내용에 관한 세부 조항이 추가된 조례가 필요하다.
"당장 수탁한다고 해도 정해진 방식이 없으니까 행정도 저희도 혼란스러울 것 같아요. 구체적인 조항이 있어야 시작할 분위기도 마련된다고 생각해요. 특히 인건비까진 아니더라도 주민자치회 활동비같이 최소한의 것이 보장돼야 주민자치회가 활성화되고 지속할 수 있어요."
고향인 이원면에서 주민들과 함께 주민자치에 대한 배움과 경험으로 모두가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고 싶다는 그. 주민자치가 어려워 보여도 과거의 계, 두레, 상호부조로 늘 함께했던 마을공동체를 떠올려 보자고 말한다.
"주민자치는 옛날부터 늘 있었어요. 주민들이 서로 일손 돕고 마을 이야기도 나누면서 문제를 해결해 갔죠. 절대 생소한 개념이 아니에요. 무한 경제 시대에 가려졌지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기도 해요. 자치와 협동이 우리 지역을 더 좋게 만드는데 결국 주민이 해야죠. 마을 어르신이 알려준, 농촌에 녹아있는 주민자치로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고 싶어요."
월간옥이네 통권 96호(2025년 6월호)
글 사진 김혜리
▶이 기사가 실린 월간 옥이네 구입하기 https://smartstore.naver.com/monthlyo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