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상반기, '대학생 소셜투어 5기: 민주주의를 그리는 여행'이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윤석열 파면 선고 기일이 정해지지도 않았던 3월 말, 설렘과 긴장을 안고 처음 만난 참가자들은 두 달간 함께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적 현장을 방문하는 한편 여전히 곳곳에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
파면 이후 새롭게 재건해나갈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며, 5월에는 소셜투어의 최종 목적지인 '민주주의를 지켜온, 지켜갈 사람들' 구술인터뷰를 팀별로 진행했다. '기록으로 저항하라'는 말이 있듯, 윤석열 탄핵을 요구했던 서로 다른 존재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기록하는 것이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민주주의의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본 기고글은 5월 13일과 15일 고려대학교에서 두 차례 진행한 구술인터뷰의 기록을 담았다. 깊이있는 이야기와 소중한 생각을 나눠주신 인터뷰이 두 분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내란의 기억, 그리고 광장에서
김정아(국어국문학과 4학년)씨는 소위 '말벌 시민'이다. 12.3 비상계엄이 선포되던 밤에도 국회 앞을 지켰다. 그런데 정아씨는 계엄 이전까지만 해도 거주 지역의 정치 성향도 모를 정도로 정치에 대해 잘 몰랐다. 단지 얼마 전 <소년이 온다>를 읽고 느꼈던 아픔처럼, 국가가 국민에게 총칼을 치켜들고 사람이 개처럼 끌려가서 죽어서는 결코 안 된다는 신념 하나로 집에서 곧장 뛰쳐나와 국회로 향했다.
비상계엄이 정치적 각성의 계기였다던 정아씨는 해제 표결 이후에도 광화문, 남태령, 한강진 등 윤석열 탄핵 집회 현장에 활발히 참여했다. 그에게 탄핵 광장은 '만남의 광장'이었다. 이주노동자와 성노동자 등 글로만 보았던 사람들의 삶을 육성으로 전해 들을 수 있었던 것, 남태령에서 추위에 저체온증이 왔을 때 한 모녀에게 도움 받았던 경험, 이한열 열사의 친구분과 우연히 대화를 나눴던 일 등, 다양한 인연과 소중한 만남들이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한 명 한 명의 실존을 감각하고 목소리를 들으며 정아씨는 민주주의와 우리의 투쟁이 존재하는 이유를 되새겼다.
"실존적으로 존재하는 인간은 자기 삶의 의미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인간이다. 그 의미를 만들 수 있는 권리를 찾기 위해 여성 운동, 소수자 운동이 있어온 것이고 저는 이게 민주주의 투쟁까지도 이어진다고 생각해요."

▲'민주주의를 지켜온, 지켜갈 사람들' 구술인터뷰를 진행하는 고려대학교 구술인터뷰 기획단과 오지한씨의 모습 ⓒ 이다인
오지한(영어교육과 4학년)씨가 비상계엄 선포 소식을 듣고 처음 느낀 감정은 당혹감이었다. 역사책에서만 봤던 일이 현실로 닥쳐왔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당시 학교 총학생회실에서 회의 중이었던 지한씨는 우선 업무를 중단하고 대자보를 작성하고 있었는데, 해제 직전까지 대자보에 실명을 넣을지 말지를 고민했다. 혹시 계엄 해제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자보를 부착하고 자신이 체포되었을 때 그걸 빌미로 학생총회가 열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보다는 손이 벌벌 떨릴 정도로 두려움이 앞섰던 밤이었다.
대학생이 되고부터 인권에 관심을 가졌지만 집회 참석은 처음이었던 지한씨는 다양한 소수자의 목소리가 광장 발언대에서 퍼져나가는 모습에 편안함을 느꼈다. 하지만 동시에 이성애자이고 남성이기도 한 자신의 정체성은 어디에 위치해 있는 것인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약자성이랑 약자가 다르다. 그러니까 모두가 약자성을 가지고 있고, 구체적인 맥락에서 누가 약자로 결정됐는지에 대해서 관심을 더 가져야 할 필요가 있겠구나…(중략)... 이런 내용들이 교차성 담론이랑도 많이 맞닿아 있다고 생각을 해요."
지한씨는 탄핵 이후 윤석열의 복귀를 바라는 여론을 보며 사람들이 권위주의를 희구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민주주의는 불안정한 체제이고, 시대적·사회적 맥락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더 견고한 민주주의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더 견고한 민주주의를 위한 시민교육
윤석열 파면은 한 사람의 퇴장을 넘어,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맞이한 중대한 분기점이다. 민주주의는 제도이자 이데올로기이면서 동시에, 그것을 구성하는 시민들의 감수성과 의식에 따라 흔들릴 수 있는 민감한 구조다. 지한씨는 민주주의를 단단하게 만들기 위한 방법으로 교육을 이야기했다. 특히 그중에서도 '시민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특히나 학교 교육에서 교사 운신의 폭이 굉장히 줄어드는 이유 중 하나가 정치의 중립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중략) 윤리 과목 빼고는 가치를 다루는 과목이 없어요, 결국엔 교사 역량에만 기대게 되죠."
지한씨는 사범대생으로서 어떤 '시민교육'을 해야 할지 고민해 왔다. 예를 들어 광우병 촛불집회와 같은 사건의 기억을 교실에서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단지 사실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시민으로서의 감각과 기억을 어떻게 교육해야 할지를 끊임없이 질문해 왔다. 지한씨가 생각하는 시민교육은 정치적 입장을 강요하는 일이 아니라 삶의 문제를 가치의 언어로 사유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가치를 가르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지만, 학생들이 세상을 주체적으로 바라보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교육의 본질이자 교사의 책임이 아닐까.
"정치의 중립이라고 하는 것이 정치에 관련된 그러니까 올바른 가치나 이런 걸 가지지 못 하게 하는 것과 굉장히 불가분이기 때문에, (중략) 대학에서도 지금 소실된 공론장을 빨리 찾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있습니다."
소셜투어를 통해 방문했던 4.19 민주묘지에서는 치열하게 투쟁했던 과거 청소년 민주열사들의 흔적을 마주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시민들은 거리로 나섰고, 청소년들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비록 정치적 권리를 온전히 보장받지 못한 위치에 있었음에도 이들은 가능한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애써왔고, 사회가 남긴 정치적 실패의 짐을 함께 짊어져 온 시민사회의 일원이었다.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를 부정하는 사회적 시선과 제도는 단지 나이의 문제만이 아니다. '정치적 감수성'을 억압하고 시민으로 성장할 기회를 제한하는 교육의 구조적 문제로도 연결된다. 청소년이 정치적 목소리를 내면 '선동'이라 불리는 사회 속에서, 우리는 민주주의를 가르치되 정치를 금지하는 역설 속에 살고 있다. 정치적 중립은 종종 학생들이 현실 사회에 문제의식을 갖고 말하는 것을 차단하는 구실이 되며, 그 결과 학교는 정치적 감수성 자체를 길러내지 못 하는 공간으로 전락한다.
더 나아가 대학 사회 역시 예외가 아니다. 오히려 대학은 공론장이 사라진 대표적 공간이 되어가고 있다. 최근 여러 대학에서는 학생자치가 위축되고 구성원의 의견이 구조적으로 배제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학교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이 사회 전체의 민주주의 방향성과 직결된다.
결국, 정치를 삶과 연결 짓지 못하는 수업은 학생을 판단하고 책임지는 시민으로 성장시키지 못 한다. 그렇다면 민주주의를 제대로 가르치는 교육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그것은 학생이 실제로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에 의견을 내고 토론하고 결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구조를 바꾸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나이를 이유로 목소리를 막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치적 감수성을 기를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민주시민교육이다.
민주주의는 말할 수 있어야 자란다. 말할 수 있어야 기억할 수 있고, 기억할 수 있어야 행동할 수 있다. 공론장을 다시 세우고, 학생사회의 목소리를 제도적으로 보장받는 일. 이는 단지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해결해나가야 할 공동의 과제이기도 하다.
시민적 우정, 민주주의의 또 다른 조건

▲<민주주의를 지켜온, 지켜갈 사람들> 구술인터뷰를 진행하는 고려대학교 구술인터뷰 기획단과 김정아씨의 모습 ⓒ 남혜윤
고대 아리스토텔레스는 '시민적 우정(philia politikē)'을 좋은 정치공동체의 토대라고 보았다. 올바른 사회란 단순히 법과 제도 위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돌보며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성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이 우정은 사적 친분을 넘어서,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들 사이에 형성되는 신뢰와 책임의 감각이다. 그리고 어쩌면 오늘날의 민주주의 역시 그 우정 위에 겨우 버티고 있는지도 모른다.
현대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제도화된 절차와 권한 분산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지만, 정작 그것이 지속 가능하려면 사람들 사이에 감정적 토대가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고자 하는 마음과 나와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이의 서사를 일단 받아들이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최근의 광장 정치가 보여준 것도 그것이었다. 제도 너머에서 벌어진 목소리와 감정의 결집, 그 안에 담긴 '서로를 친구로 대하는 태도'는 제도정치보다 더 깊이 민주주의를 감각할 수 있게 했다.
"'이해가 사랑의 다른 말'이라는 이야기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친구가 되면 사실 (서로를) 좀 이해하려는 마음이 생기잖아요. 그래서 나가서 자기 바운더리 안에 있는 사람 말고 그 밖의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많이 이야기하고, 귀 기울여 듣자. 그러면 자연스럽게 겸손의 마음과 존중의 마음도 생겨날 것이라는 생각을 해요. 사실 저는 굉장히 오만한 사람이었거든요."
정아씨는 "민주주의가 사회에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친구를 많이 사귀어야 한다"고 말했다.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나 아닌 누군가의 현실을 듣고, 이해하고,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는 사람들이 광장에서 나누는 말을 "편안한 자리에서는 들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 귓속에 때려 박히는 순간"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정아씨는 광장에서 낯선 타인의 고백을 듣고, 그 안에 담긴 맥락과 생존의 방식을 이해해 나가며 자신이 얼마나 편협했는지를 깨달았다. 그렇게 시작된 부끄러움은 점차 타인을 받아들이는 감각으로, 그리고 관용의 태도로 자라났다. 배척이나 비난이 아니라 이해하고 나아지도록 돕는 관계, 그것이 진짜 우정이고 민주주의의 바닥을 이루는 감정이라는 생각이었다.
소셜투어는 그런 의미에서 '만남의 정치'를 가장 직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기회였다. 역사적 현장을 단순한 기념비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의 전환지점'으로 삼았다. 광주 기행에서 가는 곳마다 1980년 광주의 현장에 있었던 분들과 우연히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감사 인사를 주고받던 경험, 4.16 기억교실에서 유가족분들과 함께 희생자 단원고 학생의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던 경험을 떠올린다. 선연한 만남들로 우리의 공동체의 기억을 채워갔으면 한다.
"저랑 친구가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전히 갈라치기와 혐오를 내세우는 후보가 대선에 출마하는 현실에서 관계 맺기를 통한 우정과 관용은 역설적으로 더 중요해졌다. 원론적일지언정 돌고 돌아 정착한 결론이다. 식빵에 핀 곰팡이가 표면에만 있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빵 안쪽까지 뿌리내리고 있어 그 부분만 도려내고 먹을 수 없는 것처럼, 우리 사회 안에 깊숙하게 뿌리내린 혐오를 점검하고 뽑아내야 더 단단한 민주주의로 나아갈 수 있다. 그 시작은 삶의 가장 작은 곳에서부터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것이다.
정아씨가 마지막으로 건넨 말 한마디는 단순한 인사가 아니었다. 누군가를 이해하려는 노력 끝에 도달한 말이고, 민주주의가 작동하기 위한 최소한의 감정적 조건이었다. 민주주의는 반드시 거대한 구호나 제도적 언어에서만 시작되지 않는다. 학교, 일터, 일상 등 작은 곳에서부터 시민성을 감각할 때 비로소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더 민주적이고 견고하게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