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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가 찾아온 6월 아침이다. 왠지 움직이기 싫지만, 그대로 있을 수는 없다. 누죽걸산,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라고 하지 않던가!
오전에 자전거를 타야 하고, 저녁엔 술자리 모임이 있다. 일찍 끝나고 수채화를 그리러 가야 하는데, 어떻게 할까 망설인다. 아침부터 망설임은 세월이 지났다는 뜻인데, 예전엔 어림도 없었던 일이다. 은퇴하면서 자전거와의 만남,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친구들과 어울려야 했다.
친구들과 등산도 하고 여행도 하지만, 요즘 전국적인 열풍이었던 자전거를 타보기로 했다. 기백만 원씩을 투자한 자전거는 삶에 있어 최고의 장난감이 되었다.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고, 혼자도 놀 수 있어서다. 운동도 할 수 있지만 푼 돈 더 들 필요 없는 최상의 놀이기구다.
며칠 전엔 친구들 10여 명이 모였다. 자전거를 타기 위함이다.
매주 목요일을 택해 10여 명이 자전거 행렬을 이룬다. 유니폼도 맞춰 입었으니 남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긴 행렬을 이루고 달리는 늙어가는 청춘들, 낙동강길과 섬진강길도 마다하지 않았고 남한강과 북한강을 멀다 하지 않았다. 춘천과 제주도길을, 포항에서 통일전망대 라이딩은 기억 속으로 세월은 흘러갔다.

▲자연은 아름답다.자전거길에 만나는 자연은 아름답다. 짙푸른 초록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 곳곳에서 만나는 계절별 꽃들은 눈을 잡아 놓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아름다운 자연을 따라가는 자전거길도 세월따라 변하고 있다. 거리와 속도 그리고 참여 인원이 줄어들고 자전거도 전기의 힘을 빌리기 시작했다. 세월의 흐름을 비켜갈 수 없으니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수 밖에 없다. ⓒ 박희종
종종 친한 친구들 10여 명이 모여 맛집을 찾고 볼거리를 찾아 나서곤 했다. 근교의 70여 키로는 쉽게 나섰지만, 언젠가부터 라이딩에 참여하는 친구 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손주를 보러 간다고도 했고, 누구는 허리가 아프다 한다. 한동안 보이지 않던 친구가 갑자기 나타나 몸이 아파서 그랬단다. 세월은 늙은 청춘들을 그냥 두지 않았다.
병원과 약국을 가야 했고, 가정사를 돌봐야만 했다. '근무한다'는 말이 예전엔 모든 것을 대변했다. 그 말이면 웬만하면 모든 일에서 제외였지만 이젠, 사정이 달라졌다. 모든 행사에 참여해야 했고, 앞장을 서야 하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병시중을 해야 하고, 요양원에도 들러야 한단다.
서울에 손주를 보러 다니던 친구, 자전거길에 넘어졌단다. 손목 수술로 얼마를 쉬어야 했고, 농사일이 바빠서 올 수가 없다 한다. 친구들의 참석이 한 명, 두 명씩 줄어드는 이유다. 10여 명이던 친구들이 대여섯 명 남았지만 라이딩은 멈출 수 없다. 누죽걸산, 누우면 죽고, 걸어야 산다고 하지 않던가?
이날 라이딩을 위해 모인 친구는 다섯 명뿐이다. 무릎이 좋아지면 온다는 친구는 아직도 편치 않단다. 조금만 더 기다리라는 연락이다. 자전거 길에 넘어졌던 친구는 손이 편치 않다며 근거리만 타자고 한다. 자연히 속도와 거리가 줄었다.
요즘엔 아예 자전거도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 친구 주변 어르신들은 전기자전거를 선호한단다. 너는 어떻게 할 거냐며 내 의중을 떠보는 친구의 말이다.

▲동해안을 따라서7번 국도를 따라 포항에서 통일 전망대를 향하는 길이다. 고단함을 무릅쓰고 달리던 자전거길은 어느덧 기억속의 추억이 되었다. 세월따라 적당한 속도와 거리를 즐기며 오르는 자전거길에 만족하며, 안전한 라이딩만이 세월을 이겨내는 최선의 방법이다. ⓒ 박희종
아직은 버텨 보자는 대답을 했지만 내심 망설여진다. 전력을 다하던 라이딩은 서서히 속도를 조절한다. 산을 보고 들을 보는 라이딩은 여유가 있다. 속도에 거리도 줄어들어 낙동강을 따라 부산으로 내딛던 자전거길은 근처에서 맴을 돈다. 남한강을 헤매던 자전거길도 이젠, 거칠 것이 없었던 청춘들의 오래 전의 추억거리가 되었다.
하루 70~80킬로는 버티던 힘, 이젠 40~50여 키로로 충분하다. 참여 인원이 적어지고, 속도와 거리도 즐겨야 했다. 오늘도 다섯 명이 모인 라이딩 팀, 점심 메뉴가 결정되면 출발이다. 친구 두 명은 벌써 전기자전거로 바꾸었고, 라이딩이 한층 여유로워졌단다. 친구는 얼른 전기 자전거로 바꾸란다.
아직은 버틸만하다며 허세를 부리지만 근육은 고단하다. 자주 만나는 이웃 동호회원들도 모습은 달라졌다. 기껏해야 근거리 라이딩 후에 식사가 전부다. 이것만이라도 좋다며 손을 흔든다. 나는 언제까지 자전거를 탈 수 있을까? 일주일에 서너 번 체육관 나들이는 근육을 보강하기 위함이지만, 점점 힘에 겨운 것은 어쩔 수 없다. 아직 버틸만하지만 가끔은 근육이 골을 부린다.
50여 킬로를 돌아 찾은 식당, 고희의 청춘들도 식사를 한다. 원거리를 속도로 경쟁하던 라이딩이 근거리도 전기의 힘을 빌려 즐기고 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직은 버틸만하지만, 마음만은 쉬는 걸 택하고 싶다. 6월 아침에 헤맨 들판엔 푸름이 익어가는데, 세월은 늙어가는 청춘들을 그냥 두질 않았다. 세월의 힘을 어쩌겠는가? 즐길만한 거리를 안전하게 가는 라이딩만이 최고라며 오늘도 옹색한 변명을 해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 스토리에도 실립니다.오마이 뉴스에 게재가 되고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브런치스토리에도 발행 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