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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업장에서 노동자 대상 직장 내 괴롭힘과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을 마친 후 자리를 정리하던 참이었다. 한 남성 노동자 A가 다가오더니, "하나만 여쭤봐도 될까요?" 하며 조심스럽게 말문을 연다. "9년 전 일이긴 한데요, 이게 진짜 성희롱인가요?"

꽤 오랜 시간 A의 마음에 고여 있던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당시 A의 부서는 여성 노동자 3인을 탕비실 담당으로 지정해, 간식을 채워 넣고 정리하는 등의 업무를 맡겼다. 이를 본 A는 "왜 탕비실 관리를 꼭 여성만 해야 하지?"라는 문제의식에 모든 부서원이 돌아가며 3인 1조로 순번을 정해 맡자고 제안했다. 그의 제안은 받아들여졌고, 이후 부서 전체가 돌아가며 탕비실을 관리하게 되었다.

그런데 남성 노동자들끼리만 탕비실을 담당하는 차례가 되면 간식에 대한 반응이 유독 시큰둥했다. 이 상황을 '해결'해 보겠다는 생각에 A는 한날 여성 노동자들과 담소를 나누다, "간식팀에 여자를 한 명씩 끼자"고 말했다. 이에 친하게 지내던 여성 노동자가 웃으며 "대리님, 그거 성희롱이에요~" 하고 농담 섞인 반응을 보였고, 대화는 웃음으로 마무리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말 한마디가 너무 억울하고 당황스러워서 A의 마음에 오래도록 남았더라는 것이다. 그것이 진심으로 자신을 향한 지적이었는지, 아니면 말 그대로 농담이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마침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을 하러 온 강사가 있으니 그게 정말 성희롱에 해당하는 것이었는지 물어라도 보고 싶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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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몇 해 전 직장내괴롭힘금지법이 제정된 직후, 고용노동부 위탁으로 운영되는 직장 내 괴롭힘 상담센터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하루는 대규모 금융업체의 인사담당자 B에게 전화를 받았다. B는 다소 짜증 섞인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우리 회사 여직원들 업무매뉴얼에 탕비실 관리가 명시돼 있는데, 이게 괴롭힘이라고 민원이 들어왔어요. 이게 진짜 직장 내 괴롭힘인가요?"

나는 이 사례에서 중요한 고민 지점을 도출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이후 교육 현장에서 이 사례를 토론 주제로 종종 꺼내게 되었다. 2년 전, 노동조합 지역본부 간부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직장 내 괴롭힘 및 성희롱 예방교육에서도 마찬가지로 이 이야기를 공유했다. 그러자 강의 말미, 한 남성 간부 C가 손을 번쩍 들며 말했다. "여자가 간식을 담당하는 게 문제인가요? 남자들이 하면 죄 이상한 것만 사오고, 맛없는 걸로만 사놨다고 여자들이 불만이 많던데요. 어디가 싸고 뭐가 맛있는지 여자들이 더 잘 아는데, 그냥 잘하는 사람이 하면 되지 않나요?"

 작고 사소해 보이는 장면 속에야말로 가장 일상적이고 견고한 차별과 불평등이 있다.
작고 사소해 보이는 장면 속에야말로 가장 일상적이고 견고한 차별과 불평등이 있다. ⓒ Pixabay

간식팀에 여성을 한 명 끼자는 게 성희롱인가. 해당 사안이 성희롱인지 아닌지는 남성 A의 말만으로 내가 알 수 없는 영역이다. 고맥락 언어인 한국어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장뿐만 아니라 전후 상황, 그 말이 나온 맥락, 발화자의 표정, 억양, 태도 등 비언어적인 요소들까지 고려해야 한다. 간식팀에 여자를 한 명 끼자는 말은 어떤 상황에선 '성별 다양성이 간식 선택에 반영되도록 간식팀의 성별 구성에 변화를 주자'는 의미가 될 수도 있지만, '간식팀에 남자들만 있으니 삭막하더라, 여자가 한 명 끼어야 분위기가 산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 설령 '여성의 간식 선택 능력이 탁월해서 간식팀에 1명을 꼭 배정하자'는 '칭찬'의 의미라고 할지라도, 그러한 역할기대는 해당 여성에겐 원치 않는 부담을 안겨준다.

직장 내 괴롭힘의 행위자는 '사업주 또는 다른 근로자'다. B의 사례가 괴롭힘이라면 누가 가해자인가? 매뉴얼이, 문화가, 관행이 가해자가 될 수 있을까? 물론 매뉴얼도 문화도 관행도 저 스스로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특정되지 않는 개인으로부터 시작되었을 수도, 사업주의 의지에 따라 만들어졌을 수도 있다. 그 시초자를 어떻게든 발본색원하여 책임을 물어야 할까? 가해자를 특정할 수 없다면 괴롭힘을 괴롭힘이라 말할 수 없는 걸까?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크나큰 오해 중 하나는 반드시 '가해자'를 '처벌(징계)'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아무도 징계받지 않는 직장 내 괴롭힘도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 직장내괴롭힘금지법은 가해자에 대한 징벌이 아닌 피해자에 대한 보호에 그 목적이 있다. 모종의 조치를 통해 피해자를 보호하고, 노동환경을 더 안전하게 만들 수 있다면 가해'자'를 특정하지 않거나 특정할 수 없다고 한들 '괴롭힘'이 아닐 이유가 있을까. 나아가 그 행위의 원인이 매뉴얼이든, 문화든, 관행이든 이를 유지하고 존속해 온 책임이 사업주에게 없다고 볼 수 없고, 그렇다면 사업주의 괴롭힘 행위를 인정하고 시정조치를 하면 된다. 매뉴얼을 바꾸고, 문화를 바로잡고, 관행을 없애는 조치로 괴롭힘을 없애면 된다. 그것으로 충분한 사안들이 분명히 있다.

여성은 왜 간식을 싸게 잘 사올까? 많이 해봐서 그렇다. 가사노동과 유사한 형태의 노동들에 대체로 남성보다는 여성이 더 익숙하다. 그러한 능숙함은 '자연스러운 소질'이 아니라, 반복된 사회적 학습과 성역할 고정관념의 결과일 뿐이다. 너무도 정확히 C와 같은 시선과 요구가 간식 관리에 능숙한 여성을 만들어냈다. 성차별적 사회를 견고하게 유지하고 강화하는 것이다.

특정 성별에 탕비실 업무가 몰리지 않도록 나섰던 반차별주의자가 졸지에 성희롱 가해자로 지목받은 상황으로 본다면 A가 느꼈을 억울함도 일견 이해가 간다. 매뉴얼이 가해자라고 명명하는 피해자의 언어가 낯설었을 B의 마음도 수긍이 간다. 잘하는 사람이 잘하는 것을 하면 된다는 효율주의자 C의 발언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탕비실의 간식 하나에도 특정 성별이 반복적으로 호출되는 현실은 분명 문제적이다. A, B, C가 성차별주의자라서, 가해자라서가 아니다. 우리가 마주한 문제는 개인의 악의가 아니라, 무심히 반복되어 온 구조와 관행에 대한 것이다.

'이거 괴롭힘 아니야?', '이거 성희롱인가요?' 우리의 질문은 누구도 해치지 않는다. 이러한 질문들을 '유난스러운 문제제기'로 계속해서 외면한다면, 누군가의 유탈한 일터도 계속된다. 작고 사소해 보이는 장면 속에야말로 가장 일상적이고 견고한 차별과 불평등이 있다. '탕비실의 간식 하나'에 불과한 사소한 질문들을 우리는 계속해서 던져야 한다. 그리고 바꿔야 한다. 간식을 누가 사오느냐가 아니라, 그 선택이 '당연히' 여성의 몫이 되는 구조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의 노동안전보건 월간지 <일터>에도 게재됩니다. 이 글의 필자인 문가람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이자 공인노무사입니다.


#성평등교육#젠더감수성#직장내괴롭힘#직장내성희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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