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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의 5.16에 대한 인식과는 상관없이 쿠데타세력은 <사상계> 7월호와 관련하여 장준하와 함석헌을 체포했다. 제2의 필화사건이다.

7월호가 서점에 깔린지 4, 5일이 지난 뒤 장준하는 취재부장 고성훈과 함께 수사기관원에 연행되어 중앙정부부장 앞으로 끌려갔다. 당시 중정부장은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김종필 예비역 중령이었다. 김종필은 36세, 장준하는 44세였다. 장준하는 이날 안내인에 따라 중정부장실 접객용 소파에 20여분 동안 앉아 있었다.

혁명의 주체중의 주체요 귀신도 떤다는 군사혁명정권의 총사령탑인 바로 그 사람의 방에서 잠시나마 뒤에 올 일들을 생각하여 명상에 잠겨 있을 때 요란스런 발자욱 소리와 함께 당시의 중앙정보부장 김종필씨가 계급장이 없는 군복차림으로 호위하는 몇 사람과 함께 어딘가에서 들어왔다. 한 젊은이가 그가 허리에서 끌러 던지는 쌍권총이 달린 탄띠를 받아 옷걸이에 걸쳐 놓는다. 물론 초면의 터였지만 그 때 신문 등에서 많이 본 얼굴이라 나는 그가 누구임을 곧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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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우리를 다만 곁눈으로 슬쩍 한 번 쳐다볼 뿐 아무 인사소리도 없이 자기 책상으로가 무슨 서류인가를 한참이나 뒤적이다가는 얼마 만에야 겨우 우리가 앉아있는 앞 쇼파로 와서 역시 아무 인사도 없이 앉았다. 그때 보좌관인 듯한 사람이 흰 종이로 표지를 싼 책 한권을 갖다가 그에게 주었는데, 그 종이가 반투명의 것이어서 그 책이 바로 <사상계> 7월호임을 알 수 있었다.

그는 그때까지도 뭣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하여튼 금방 주먹질이라도 할 것 같은 살기등등한 모습으로 거치른 숨결을 억제하며 <사상계> 표지에 나온 제목인 '5.16을 어떻게 볼까?'라는 부분의 둘레에다 볼펜으로 선을 쳐서 내 앞에 내놓더니 역시 '당신이 장준하냐? 나는 누구다'하는 그런 뭣도 없이 맨 처음으로 하는 소리가 이런 얘기였다.

"정신분열자 같은 영감쟁이 (필자인 함석헌 선생을 지칭하는 말)의 이따위 글을 도대체 어떤 저의로 갖다가 여기에 실었소? 성스런 혁명과업 수행과정에서 당신은 우리 군사혁명을 모독하는 거 아니오? 이것을 싣게 된 목적과 경위를 말해 보시오."

장준하는 이 오만무례한 '혁명주체'와 심한 논쟁을 벌였다. 자신이 직접 함선생께 집필을 부탁했고, 직접 받아다가 실었다. 남의 글을 전체를 보고 평가해야지 부분적인 대목을 가지고 말하느냐? 라고 따졌다.

김종필은 궁지에 몰렸던지 장도영(5.16때 계엄사령관, 군사혁명위원회 의장 내각 수반, 국방장관을 맡고 장준하와 김종필의 대면 전날 '반혁명죄'로 구속됨)과의 관계를 꺼냈다.

"장도영과 같은 고향이라 5.16에 반기를 든 것이 아니냐?"라고 엉뚱한 문제를 따져 물었다. 장준하로서는 어처구니 없는 노릇이었다. 사실 장준하는 장도영을 대단히 비열한 군인으로 알고 있었다. 중국 서주에서 한인병사의 탈영이 잦자 장도영은 일본도를 빼들고 탈주자는 자신이 먼저 처단하겠다고 설치다가 장준하의 질책을 받았던 일이나, 쓰가다부대에서 '짬빵불식동맹'때의 충돌사건, 그 후 그는 끝까지 일본군으로 복무하다가 해방을 맞았고, 해방 후 국군에 들어가 승승장구하여 장면 정부에서는 육군참모총장으로 있으면서 쿠데타 세력의 밀모를 알고도 양다리를 걸치고 이것이 성공하자 장면 총리를 배반, 박정희와 손을 잡았다. 그리고 권력투쟁에서 밀려나 구속신세가 되었다.

이런 사정을 설명하자 김종필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모습이었다. 쿠데타세력이 장준하와 장도영을 '한패'로 의심할 만한 일이 있었다. 7월 4일 장준하는 <사상문고> 100권 출간기념 리셉션을 창경원의 수정궁에서 열었다. 이 날이 미국 독립기념일인 데도 주한 미국대사가 직접 참석하고 장도영도 참석했다. 박정희나 김종필은 물론 나오지 않았다. 이것은 당시 <사상계>와 장준하의 위상 때문이지, 어떤 정치적 역학관계는 아니었지만, 쿠데타 실세 측은 이를 의심하게 되고, 장준하를 소환했던 것이다.

이날 김종필은 쿠데타세력이 의욕적으로 시작한 '재건국민운동본부'를 이끌고 있는 고려대학교 유진오 총장을 교체하겠다는 등, 사안과 별로 관계없는 얘기까지 하며 장준하의 의중을 떠보기도 했다. 김종필은 헤어지면서는 "앞으로 자주 만나 얘기하기를 원한다"하고 말했지만,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대화가 되었다.

시련이 끝난 것이 아니었다. 중정소환이 일어난 지 2주일 쫌 지난 뒤 군사정부의 '부정축재처리위원회'에서 출두명령서가 나왔다. 장준하는 지정된 시간에 서울시청 안에 자리잡은 위원회에 출두했다.

덧붙이는 글 |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 실록소설 장준하]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실록소설장준하#장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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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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