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잡스에 의해 모처럼 인류의 신문물이라고 할 수 있는 아이폰이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열광했다. 도구가 인간의 '손 안에' 들어오게 될 때 얼마나 놀라운 '연결'과 '확장'이 일어날지에 대한 흥분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아이폰을 손에 쥐었을 때 펼쳐진 세계는 압도적이었다. 현재까지 각종 스마트 기기들이 '혁신'을 외치곤 하지만 그때 그 첫 혁신만큼에 비할 수 있는 울림을 주는 것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겠다.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것이다.
영화에서나 보던 AI(artificial intelligence), 즉 '인공지능'이 언제부터 이렇게 가까이 우리 삶에 자연스러워졌는지 모르겠다. 아마 인류로 대표되는 이세돌 기사와 알파고의 승부 때 '알파고'라는 이름으로 수면 위로 살짝 올라왔다가, 이제는 ChatGPT를 통해서 초등학생도 그 존재를 모르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런 AI 등장과 아이폰의 등장을 비교해 본다면, 과연 사람들은 환호하기만 했을까? 정확한 통계상의 수치는 차치하더라도, 나 개인적인 체감과 이 세계의 체감 온도를 통해서 말해 보자면 감히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인간과 AI는 과연 무엇이 다른가... 그 피드는 정말 당신이 원하는 것인가
이유는 무엇일까? 쉽게 말해서, 스마트폰이 인간의 '손안에' 쏙 들어오는 '도구'로 인식되었다면, AI는 잘하면 인간의 손안에 잡혀서 충실한 도구가 되겠지만, 잘못하면 AI가 인간을 손안에 잡아버리는 주체가 되어버릴 수도 있겠다는 위협이 잠재되어 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이 위협은 그만큼 AI가 이제까지의 인류 역사와 문명에서의 어떤 도구보다, 인간에 가까운,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런 맥락 위에 놓여져 있고, 바로 이 책 < AI, 글쓰기, 저작권 - 생성형 인공지능 시대, 창작은 어떻게 바뀌는가>(2025년 6월 출간)은 이 시대의 중심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크게 외치고 있다.

▲AI, 글쓰기, 저작권책이 무척 얇다. 그러나 질문은 깊다. 이 책을 덮고 난 뒤에도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라는 물음이 맴돈다. 어쩌면 그 질문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더 자주 글을 쓰고, 더 오래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이 여름, 가장 필요한 건 정답이 아니라 질문일지 모른다. ⓒ 마름모출판사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원래 신문물이 등장하면 어느 시대나 그랬듯 과하게 경계하는 의견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극단을 오가면서 우리는 진화되는 것이기에 그렇게 날 세울 필요가 없이 역사적으로 흘러가듯 가면 된다고. 부정하지는 않지만, 공감하지도 못하겠다.
경계를 지키며 질문이라는 파수꾼을 세운 이들 때문에 인간의 역사는 그나마의 '균형'과 '질서'가 생겼던 것이지, 그런 작업이 없었다면 어쩌면 인류는 혼돈과 공허와 흑암에 잠식되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이 시대에 반드시 던져야 할 '질문'들을 망설임 없이 꺼내 놓는다. 단순한 기술 해설서가 아니다. 나를 향해,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를 향해 날카롭고도 정직한 질문을 던진다.
그 첫 질문은 철학에서 시작된다. 첫 번째 파트는 인간 삶의 의미를 재구성하는 깊은 사유로 가득하다. 인간과 AI는 과연 무엇이 다른가? 나를 나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오랫동안 인간의 본질을 '이성'에 두고, 그에 깃든 창조성과 감성이 인간됨의 증거라고 여겨왔다.
계몽주의와 낭만주의로 대표되던 이 믿음은, 이제 AI 앞에서 재검토되고 있다. 만약 그것마저 대체할 수 있다면, 우리는 과연 여전히 인간일 수 있을까. 게다가 AI 알고리즘이 조장하는 욕망은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일까. 그 질문 앞에서 나는 멈춰 섰고, 다시 나를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두 번째 파트에서는 '글쓰기'라는 행위를 중심에 놓고, AI의 실제 활용이 어떤 지점까지 와 있는지를 조심스럽게 보여준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인간됨의 본질을 기술과 도구의 경계에서 짚어보는 저자의 시선이다. 생성형 AI가 글을 생산해내는 지금, 우리는 글쓰기라는 행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단순한 생산인가, 아니면 존재의 표현인가.

▲'글쓰기'라는 행위를 중심에 놓고, AI의 실제 활용이 어떤 지점까지 와 있는지를 조심스럽게 보여준다.(자료사진) ⓒ santesson89 on Unsplash
세 번째 파트에서는, 자칫 잊기 쉬운 '저작권'이라는 주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AI가 생산한 결과물은 누구의 것인가? 인간의 창작과 알고리즘이 협업한 결과물에 대한 권리는 어떻게 나뉘는가? 이 질문에 대해 저자는 변호사라는 자신의 또 다른 얼굴을 통해 탄탄하고도 설득력 있게 해설해낸다. 기술의 발전이 무조건적인 진보가 아님을, 누군가는 분명히 선을 그어야만 한다는 점을 차분하게 일깨운다.
나 개인적으로는 첫 번째 파트의 철학적 논의가 가장 좋았다. 천천히 한 챕터씩 읽어 내려가면서 산책을 하며 곱씹을 때 그 풍미가 근사했다. 특별히 AI 알고리즘을 통해서 '설계된 욕망'을 풀어나가는 부분은 무척 탁월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AI 시대에 가장 위험한 건 '자기만의 취향'이라고 믿는 그것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AI 알고리즘은 우리의 취향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우리가 가장 좋아할 만한 것들만 제시해 주기 때문이다 ...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나는 과연 내가 진실로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내가 터치하고 있는 이 화면의 피드는 정말 내게 가치 있는가. 내가 '좋아요'를 누르며 쌓인 이 편향된 견해들은 정말 유일하게 옳은가.
나는 나의 진정한 삶을 위하여 지금 이 순간 이 영상을 보고 있는가. 오히려 이 모든 것이 나의 더 소중한 것들을 빼앗고 있지는 않은가. 가령 내게 주어진 영상 수십 편을 볼 시간에 곁에 있는 가족의 얼굴을 한 번 더 봐야 하는 건 아닌가. 내가 무심코 클릭해 쌓아놓은 장바구니 속 상품들 대신 내게 진짜 필요한 책 한 권이 따로 있는 건 아닌가. 바로 그런 의심을 거두어선 안 된다. 반성하고 의심하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에 우리가 가져야 할 '강령'이다."
이 책을 읽고, 그 질문들이 가리키는 길을 따라, 치열하게 걷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어서 좋았다. AI로 인하여 이 세계의 발전이 지독하게 가속되고 있어서, 언젠간 모든 것을 의심해 봐야 할 날이 올지 몰라도, 바로 지금 생각하고 있는 나의 존재 자체는 '진짜'라고 여겨져서, 이걸 놓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책이 무척 얇다. 그러나 질문은 깊다. 이 책을 덮고 난 뒤에도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라는 물음이 맴돈다. 어쩌면 그 질문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더 자주 글을 쓰고, 더 오래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이 여름, 가장 필요한 건 정답이 아니라 질문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