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방을 잡은 개개비의 모습 ⓒ 이경호
여수의 여름은 소리로 시작되는 듯했다. 지난 14일, 갈대가 출렁이는 작은 여수의 습지를 걷던 중 익숙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객객객객, 찌르르" 갈대밭에서 우렁차게 울려 퍼지는 소리는 바로 개개비의 였다. 잠시 기다리자 갈대 줄기를 타고 오르는 개개비가 눈에 들어왔다.
개개비는 우리나라에서 여름철 주로 번식하는 작은 새로, 몸길이는 약 18cm 정도다. 부리는 길고 날카로우며, 갈대와 비슷한 색을 띠어 갈대밭에 있을 때는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주로 습지의 갈대나 부들숲에서 둥지를 틀고 곤충과 작은 무척추동물을 잡아먹으며 번식한다. 수컷은 영역 표시와 짝짓기를 위해 특유의 빠르고 반복적인 재잘거림을 하루 종일 이어가는데, 이 울음소리는 습지 생태계의 건강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하다.

▲갈대밭 사시에 개개비 보호색으로 잘 눈에 띄지 않는다. ⓒ 이경호
국제자연보전연맹(IUCN) 적색목록에 따르면 개개비는 현재 '관심 필요(Least Concern)' 등급으로 분류되어 있지만, 지역적으로는 서식지 훼손으로 개체 수 감소가 우려되고 있다. 습지 감소와 수질 악화가 지속되면 미래에는 위험 등급이 올라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인근의 숲길에서는 또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휘휘이휘휘" 맑고 길게 이어지는 휘파람 소리였다. 섬휘파람새의 울음이었다. 섬휘파람새는 개개비와 비슷한 크기지만, 부리가 조금 더 짧고 둥근 편이다. 몸빛깔은 올리브 빛이 도는 갈색으로 숲속 나뭇잎 사이에 숨어 여름을 보낸다. 숲의 그늘진 곳이나 관목 사이에 둥지를 틀고 주로 곤충을 먹으며 번식하는 이 새의 울음은 부드럽고 선율적이라 숲의 고요함 속에서 멀리까지 울려 퍼진다.

▲나무에서 울고 있는 섬휘파람새 ⓒ 이경호
섬휘파람새 역시 IUCN 적색목록에서 '관심 필요(Least Concern)'에 속하지만, 국내에서는 서식지 파괴로 개체 수가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특히 산림 훼손과 도시화가 심화되면서 섬휘파람새의 서식지가 급속히 줄어들고 있어 보호가 절실하다. 이 두 새는 생김새가 매우 비슷해 육안으로 구분하기 쉽지 않지만, 서식지와 울음소리로 명확히 구별된다.
개개비가 습지에서 거칠고 빠른 울음으로 영역을 알린다면, 섬휘파람새는 숲속에서 부드러운 휘파람 소리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이처럼 개개비와 섬휘파람새는 각각 습지와 숲이라는 서로 다른 서식지를 대표하며, 우리 여름 자연의 두 가지 '소리'를 만들어낸다. 이들은 자연이 들려주는 계절의 노래이자 건강한 생태계의 바로미터다.
여수에서 이 두 종을 하루에 모두 만나는 일은 행운을 가지게 될 줄은 몰랐다. 습지는 도로 공사와 농지 조성 등 인간 활동으로 점점 줄어들고 있고, 숲은 도시 개발과 관광지 확장으로 훼손되고 있기 때문에 두 종을 동시에 만나기는 특정 도서가 아니라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개개비와 섬휘파람새는 점차 '보이는' 것뿐 아니라 '들을 수 있는' 새로서도 귀해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여수에서 개개비와 섬휘파람새 두 종의 소리도 듣고 모습도 보게 된 것은 작은 희망이다. 아직 자연의 숨결이 남아 있다는 신호다. 이 희망을 이어가려면 우리가 이들의 소리에 더욱 귀 기울이고, 서식지를 지키려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여름 습지의 개개비와 숲속의 섬휘파람새, 두 새가 부르는 노래가 오래도록 들릴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