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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해상공사 죽도와 송지호 해변을 잇는 길이 780m의 해상길과 해상전망대, 해중공원을 조성하기 위한 공사가 진행 중(2025/6/16)
죽도해상공사죽도와 송지호 해변을 잇는 길이 780m의 해상길과 해상전망대, 해중공원을 조성하기 위한 공사가 진행 중(2025/6/16) ⓒ 진재중

"예전엔 멀리서 바라볼 때 참 좋았거든요."
"근데 막상 와보니까, 뭔가 달라졌어요."
"그 조용하고 평온했던 느낌이 이제는 그냥 기억으로만 남을까 봐... 조금 슬퍼지네요."

강원도 고성군 죽도. 한때 '비밀스러운 섬'이라 불릴 정도로 한적했던 이곳을 다시 찾은 한 관광객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바라본 죽도는 더 이상 고요하지 않았다. 굴착기 소리, 거대 공룡처럼 서있는 구조물들, 안내판 옆을 지나는 공사 차량... 섬은 빠르게 바뀌고 있었다.

자연이 주는 위로를 기대하고 섬을 찾은 이들에게 지금의 죽도는 어딘가 낯설다. 관광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무엇을 얻고, 또 무엇을 잃어가고 있는가. 그 질문이 조용히, 그러나 무겁게 방문객들의 마음속에 떠오르고 있다.

"사라지는 풍경, 남겨진 기억"

죽도 강원특별자치도 고성군 죽왕면 오호리 송지호해변 앞에 있는 무인도(2020/2)
죽도강원특별자치도 고성군 죽왕면 오호리 송지호해변 앞에 있는 무인도(2020/2) ⓒ 진재중

몇 년 전의 죽도는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섬은 마치 엄마 돌고래와 아기 돌고래가 바다를 유영하는 듯한 신비로운 형상을 하고 있었다. 암반 사이로는 다양한 해조류가 자라고 있었고, 바닷바람에 실려오는 소금기 섞인 공기는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청량함을 전했다. 죽도섬은 자연을 온전히 느끼고자 하는 탐방객들에게 소중한 쉼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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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자연이 살아 숨 쉬는 죽도가 지금 깊은 상처를 입고 있다.

죽도를 아끼는 박숙자(67)씨는 "죽도가 지닌 고유한 아름다움을 지키면서, 이상향을 꿈꿀 수 있는 공간으로 남겨둘 수는 없을까요?"라며, 인위적인 개발보다는 자연과의 조화를 우선시해줄 것을 당부했다.

서울에서 강원도 고성의 무인도를 자주 찾는 윤장원(69)씨는 죽도 공사 현장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죽도는 사람이 함부로 들어가선 안 되는 곳입니다. 그 섬이 가진 소중한 자연은 우리 후손들을 위해 남겨야 해요." 그는 최근 지자체 주도의 관광개발이 섬의 본래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죽도, 대규모 관광 인프라 공사 본격화

죽도에서 바라본 풍경 죽도와 송지호해변간 해상공사 현장이 자연의 한 아름다움을 훼손한다. (2025/6/16)
죽도에서 바라본 풍경죽도와 송지호해변간 해상공사 현장이 자연의 한 아름다움을 훼손한다. (2025/6/16) ⓒ 진재중
죽도 섬을 삼킬 듯한 해상공사 현장(2025/6/16)
죽도섬을 삼킬 듯한 해상공사 현장(2025/6/16) ⓒ 진재중

현재 고성 죽도 일원에서는 대형 기중기와 중장비가 동원된 대규모 관광 인프라 공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 공사는 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해상길을 포함해, 지역 해양관광 자원을 활성화하기 위한 복합 개발 사업이다.

죽도 일대는 2018년 해양수산부로부터 '해중경관지구'로 지정되었으며, 바닷속 생태계와 경관이 우수하고 수도권 접근성이 뛰어나 해양레저관광 거점 시범지역으로도 선정된 바 있다.

현재 조성 중인 관광단지에는 해상 데크와 전망대, 해중공원, 탐방로, 친환경 주차장, 상업시설 등이 포함되어 있으며 송지호 해변과 죽도를 잇는 780m 길이의 해상길과 함께 산책로, 실내 다이빙장, 서핑장, 체험장이 들어설 예정이다.

이 사업은 '강원 고성 광역 해양관광 복합지구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총사업비 410억 원(국비 205억 원, 지방비 205억 원)이 투입되며 고성군의 위탁을 받은 한국농어촌공사가 추진하고 있다.

"죽도가 가진 아름다움, 있는 그대로 지켜주세요"

죽도 국내 최고의 바닷속 경관과 생물다양성으로 해중경관지구로 지정된 무인도(2020/5)
죽도국내 최고의 바닷속 경관과 생물다양성으로 해중경관지구로 지정된 무인도(2020/5) ⓒ 진재중
죽도 죽도는 대나무 군락지와 다양한 생물군이 자라고 있다. (2022/8)
죽도죽도는 대나무 군락지와 다양한 생물군이 자라고 있다. (2022/8) ⓒ 진재중

강원도 고성군에서 가장 큰 무인도인 죽도는 아름다운 경관뿐 아니라 특정 식물과 조류, 해양 생물이 외부 간섭 없이 살아가는 '생태적 격리 공간'이다. 그러나 최근 추진되는 산책로 개설, 전망대 설치, 선착장 정비 등의 개발 계획이 이 섬의 생태 균형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죽도의 생태를 조사한 김형섭 전 강릉원주대 교수는 죽도를 "섬 안에 습지가 있는 독특한 생태군락을 지닌 지역"으로 평가했다. 그는 외부 요소가 유입되면 섬의 민감한 생태계가 무너질 수 있다고 우려했으며 특히 무인도는 자정 능력이 뛰어나지만 인공 구조물이 들어설 경우 식생 변화, 생물 이동 경로, 바람 흐름 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섬의 생태계는 '보이지 않는 경계' 속에서 지켜져 왔으며, 개발은 그 경계를 허무는 첫 번째 균열이 될 수 있다. 특히 죽도처럼 오랜 시간 사람 손이 닿지 않은 섬일수록 고유한 생태를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 번 훼손된 섬 생태계는 수십 년이 지나도 회복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해조류의 천국, 죽도 바닷속 생태계가 위험하다

죽도 암반 화강암으로 이뤄진 죽도는 해조류가 자라기에 적합한 공간이다.
죽도 암반화강암으로 이뤄진 죽도는 해조류가 자라기에 적합한 공간이다. ⓒ 진재중
죽도 모자반,미역,톳,지누아리 등 다양한 해조류가 서식하고 있다.
죽도모자반,미역,톳,지누아리 등 다양한 해조류가 서식하고 있다. ⓒ 진재중
죽도 다양한 해조류와 함께 비경을 간직하고있어 해중경관지구로 지정되었다.
죽도다양한 해조류와 함께 비경을 간직하고있어 해중경관지구로 지정되었다. ⓒ 진재중

죽도 주변 바닷속은 지누아리, 곰피, 모자반, 미역 등 다양한 해조류가 풍부하게 자라는 해양 생태계의 보고다. 이들 해조류 군락은 단순한 수중 식물 집합체를 넘어, 다양한 어류와 해양생물의 산란장과 은신처 역할을 하며 지역 어업자원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김형근 강릉대학교 해양생물학과 명예교수는 죽도 주변의 해조류 군락이 동해안에서 매우 중요한 생태적 거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해안 개발과 인공 구조물이 해류와 수질에 영향을 주어 해조류 서식 환경을 급격히 변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한 무분별한 개발이 계속되면 해조류 군락이 쇠퇴하고, 이로 인해 다양한 해양 생물이 서식처를 잃어 수산자원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동해안 유일의 '모세의 기적', 죽도에서 사라질 수도

 송지호해변과 죽도사이에 모래톱이 형성, 모세의 기적이라고 부르는 길이 열린다. (2022/2)
송지호해변과 죽도사이에 모래톱이 형성, 모세의 기적이라고 부르는 길이 열린다. (2022/2) ⓒ 진재중
 고운 모래와 잘 형성된 모래톱(2022/2)
고운 모래와 잘 형성된 모래톱(2022/2) ⓒ 진재중

죽도 주변 해안은 자연스러운 해류의 흐름에 따라 모래가 이동하고 쌓이면서 건강한 해변 환경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이 지역은 동해안에서 유일하게 매년 한 차례 '모세의 기적'(서해안에서 썰물때 바닷물이 양쪽으로 갈라져 길이 열리는 바다 갈라짐 현상)으로 알려진, 육지와 섬이 연결되는 모래톱이 형성되는 특별한 지형적 특징을 지닌다. 그러나 최근 추진 중인 인공 구조물 설치는 이러한 자연스러운 해류 흐름을 왜곡시킬 우려가 크다.

관광객 윤중원(73)씨는 "서해안에서는 자주 볼 수 있는 '모세의 기적'을 동해안에서는 오직 죽도에서만 경험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 모습조차 보기 어려울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인공다리를 건너는 것보다 모래톱을 밟으며 이상향 같은 섬으로 향하는 경험이 더 깊은 인상을 남긴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죽도는 자연의 섬... 유인도식 개발은 되레 해악

죽도공사 현장 2022년 10월 6일에 착공한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2025/6/16)
죽도공사 현장2022년 10월 6일에 착공한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2025/6/16) ⓒ 진재중

전라남도 완도나 신안과 같은 유인도(사람이 거주하는 섬)는 주민의 일상생활 편의를 위해 다리나 인공시설 설치가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죽도는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무인도다. 이 점에서 유인도에 적용되는 개발 논리와 무인도에 대한 접근은 확연히 달라야 한다.

이처럼 죽도는 사람이 상주하지 않는 무인도로서, 자연환경 보호가 최우선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무분별한 인공개발 추진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관광객 증가를 위한 단기적 수익에만 집착하는 개발 방식은 결국 죽도의 고유한 자연자산을 잃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고다.

이충일 강릉원주대학교 해양생태학과 교수는 죽도가 해양 생태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 지역이라며 "무분별한 개발이나 관광이 이루어지면 섬의 생태계가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변할 수 있다"고 경고하며,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보전은 곧 미래에 대한 책임입니다

죽도 상공에서 바라본 송지호와 해변 석호인,송지호와 해변,백두대간이 한눈에 들어온다.
죽도 상공에서 바라본 송지호와 해변석호인,송지호와 해변,백두대간이 한눈에 들어온다. ⓒ 진재중
 송지호 해변은 파도와 모래가 마치 춤을 추듯 어우러져 아름답고 조화로운 모래밭을 형성하고 있다. (2022/2)
송지호 해변은 파도와 모래가 마치 춤을 추듯 어우러져 아름답고 조화로운 모래밭을 형성하고 있다. (2022/2) ⓒ 진재중

죽도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자연이 보호해온 소중한 생태계의 보고다. 죽도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서는 개발보다는 그대로 보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며, 이는 미래 세대를 위한 책임이다. 사람의 발길이 드문 죽도 같은 섬에 인공 구조물이 들어서고 사람의 왕래가 잦아지면 생명체들은 그 자리를 떠날 것이다. 지금은 자연의 가치를 되살리고, 그 고요한 아름다움에 다시 귀 기울여야 할 때다.

#죽도#해중경관지구#해안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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