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매일 발생하는 중대재해 소식에 마음이 움직인 다섯 명의 청년이 모였다. '김용균재단 청년기자단'의 이름으로 중대재해 사건을 정리하고, 소규모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추락 사망사고, 1주기가 돌아오는 아리셀 참사, 중대재해처벌법 재판에서 진짜 책임자 대신 호명되는 중간 관리자, 안전관리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다섯 차례에 걸쳐 청년기자단의 글을 싣는다.

 건설현장 이미지(내용과 무관합니다)
건설현장 이미지(내용과 무관합니다) ⓒ Pixabay Alexa

작은 현장에서 더 많이 죽었다

이틀에 한 명꼴로 사람이 죽었다. 산재사망률은 무려 일본의 두 배로, OECD 35개국에서 '부동의 1위'다. 고용노동부 산업재해 현황 부가통계에 따르면 2024년 건설업 사고 사망자 수는 276명으로 27명 감소했다. 그러나 영세 건설현장(50억 원 미만)은 오히려 사망자가 6명 증가했다. 노동계에서는 "산재 감소는 건설경기 부진으로 인한 착시"라면서도, "정부의 감독이 대형 현장에만 집중되어 영세 사업장이 외면받은 결과"라고 비판했다. 영세 사업장에서 발생한 사고의 대부분이 '떨어짐·끼임'과 같은 사고라는 점에서, 막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중대재해처벌법 관련 보도는 "처벌이 과하다"는 경영진의 입장으로 가득 차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재판에서도 진짜 책임자인 경영 책임자는 처벌을 면하고, 안전관리자, 중간관리자가 책임을 진다. 이런 까닭에, 안전을 업으로 삼는 이들의 말조차 들어볼 틈이 없었다. 문제가 반복된다면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현장의 이야기를 듣고자 5월 17일, 두 명의 안전관리자를 만났다. 이들은 "책임에 비해 권한이 적은 게 문제의 출발"이라며 입을 열었다.

"몸은 하난데, 할 일이 너무 많아요"

AD
소규모 건설업체에서 근무하는 현장책임자 A씨는 공식적으로 맡은 직함만 4개다. 그중 하나가 안전관리책임자다. "시공관리와 현장공무도 전부 내가 하다 보니, 안전 관리에 신경을 쏟기 어렵죠." A씨와 같은 사례는 적지 않았다. 작년 기준 영세 사업장의 절반가량이 "현장소장 혼자 안전업무를 수행하고 있다"라고 답했을 정도다.

안전관리자 B씨도 여러 업무를 동시에 하고 있다. A씨와는 달리 '명백한 불법'이다. 산업안전보건법상 다른 업무를 맡아선 안 되는 '전담안전관리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B씨는 "현업에서는 겸직이 일반적"이라며, 업계의 관행처럼 자리 잡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사고가 터지기 전에는 한가할 테니, 이것저것 시켜도 괜찮다는 안일한 인식이 퍼져있다"라는 것이다.

불법과 합법 여부를 떠나, 다른 업무를 하면서 시시각각 변하는 안전을 감독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B씨는 "하루 대부분을 서류 작성에 쓰는데, 그새 현장에서 무슨 일이 나지는 않을지 사무실에서 마음을 졸인다"라며, 안전 업무에 집중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여러 업체 뒤엉켜... 책임 소재 불분명

대부분의 건설 현장은 원청, 하청, 그리고 다수의 협력업체가 복잡하게 얽혀 돌아간다. 특히 영세한 건설 현장일수록 시공사가 직접 담당하는 공정이 적고, 협력업체와 하도급 비중이 높다. 안전관리자들은 이러한 다층적 구조가 안전관리의 혼선을 일으킨다고 입을 모았다.

B씨는 "현장에 안전관리자는 저 하나뿐인데, 건축, 토목, 전기, 기계 등 여러 공종이 동시에 작업하고, 심지어 같은 공종도 여러 업체로 나뉘어 발주되기도 한다"라며, "계약을 맺고 들어온 거지 고용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안전관리자의 개입을 불쾌하게 여긴다"라고 했다.

B씨는 특히나 여러 업체가 동시에 작업하는 날이면, 책임 소재와 권한이 더욱 불분명해진다고 분통을 토했다. "누가 어디까지 관여해야 하는지가 모호합니다. 저는 안전관리자로서 그냥 넘어갈 수 없어 안전 조치를 요구하지만, 제가 타 업체 직원이다 보니 지시가 잘 먹히지 않습니다. 벌점이나 사고 책임은 제가 져야 하는데, 책임만 있고 권한이 보장되진 않는 상황이죠. 하도급 업체 문제 발생시 어디까지 관여하고 책임을 져야 하는지 명확한 잣대가 없습니다."

안전 조치보다 우선시되는 돈과 시간

B씨는 명시적인 불이익을 받은 적은 없지만, '공사 기간(공기)' 단축에 대한 무언의 압박이 늘 존재한다고 말했다. "공기가 늘면 당연히 관리비도 공사비도 늘어나잖아요. 결국 '공기를 단축해야 비용을 줄여서 너희 월급도 줄 수 있다'라는 겁니다. 그런데 안전 조치는 어쨌든, 시간이 들잖아요. 시간이 다 돈인데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라는 불만을 자주 듣습니다."

산업안전보건법상 노동자에게는 급박한 위험시 작업을 중지할 '작업중지권'이 있으며, 안전관리자는 현장의 위험 상황 발생시 작업을 중지시켜야 할 '작업중지의무'가 있다. B씨는 두 권한 모두 실제로 발동되는 경우가 드물다고 말했다. "현장소장이 누구냐에 따라서 좌우돼요. 소장님들은 시공, 품질, 공기까지 책임져야 하니 '안전 때문에 늦어지더라도 괜찮다'라고 말하기 어렵죠. 안전관리자의 권한 범위는 현장소장의 성향에 따라 결정되는 셈입니다."

중처법 확대 시행 이후 사업주나 현장대리인들의 경각심이 높아져 안전관리자의 의견을 더 경청하려는 분위기가 생겼다고 평가했다. 이는 긍정적인 변화이나, 그 밖의 모든 문제가 그대로라고 선을 그었다.

"'언제 갈게요' 알려주고 점검 오더라"

A씨는 "형식적인 정부 점검이야말로 안일함의 끝판왕"이라고 말했다. "공무원들이 점검을 오기 전 '며칠 사이에 가니, 그때는 조심해 달라'라고 연락한다. 근처에서 누가 죽어야 불시 점검을 하는데, 소문 다 퍼진 다음이다. 이러는데 사고가 어떻게 없어지겠느냐"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B씨 역시도 "점검 방식이 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다"라며 제안을 내놓았다. 몇 달에 한 번 서류만 훑고 가는 점검이 아니라,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문제가 있다면 즉각적으로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보다 체계적인 '컨트롤 타워'가 있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고용불안을 겪는 안전관리자
서류 속에만 존재하는 관리감독자

현장에서는 관리자이지만, 그들 또한 고용된 신분이다. 사업주나 원청의 압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A씨와 B씨는 '상용직'으로 채용되었는데, 현장이 끝날 때마다 '퇴직 권고'를 받는다. 임금 체불이나 소속된 회사가 사라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는 것이다. B씨는 이를 두고 "현장 채용 계약직(현채직,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현장소장이 채용하는 계약 형태)이라고 이해하시면 편할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국회 질의에 등장한 대기업 건설사들조차 '36%'만이 정규직 안전관리자였다. 영세 업체의 상황이 더욱 심각하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고용 안정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안전관리자들이 적극적인 안전조치를 요구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사업주의 부당한 요구를 거절하는 일도 더욱 어렵게 할 것으로 보인다.

"새로 나온 안전용품 보급하고 싶어도..."

A씨는 '안전관리비'의 범위 확대가 절실하다고도 했다. "새로 나온 안전용품을 지급하고 싶어도 안전관리비로 처리할 수 있는 품목이 아니라면 별도 비용이 발생합니다. 처리가 복잡해요. 최신 스마트폰을 사주고 싶은데, 집전화만 사줄 수 있는 셈이죠." 또한 6월이 지나기 전에는 아무리 더워도 생수와 얼음팩을 지급할 수 없다며, 기후 변화와 건설노동자 평균 연령 증가를 고려해 기간을 확대하고, 제빙기 설치와 같은 폭염 대책이 절실하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뒤이어 그는 안전관리자가 증원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너무 작은 현장이 아니라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전담관리자 한 명 대신 복수의 안전관리자를 두도록 하자는 것이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안전관리비가 늘어나야 하는데, 영세 업체가 많은 특성상 정부 지원이 없으면 어려울 것 같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건설경기 안 좋다..." 그럴수록 안전 지켜야

안전 업무를 경시하는 관행과 복잡하게 얽힌 원·하청 구조는 결국 '비용 절감'에서 시작됐다. 인건비를 아끼려 다른 업무를 시키고, 공사기간을 줄이려 무리한 작업을 강행했다. 이를 감독해야 할 고용노동부는 책임을 다하지 않았고, 정치권은 "경기가 안 좋다"라며 안전규제 확대를 거듭 미뤄왔다. 그 사이에서 건설노동자의 피해만 커지고 있다.

물론 건설경기가 나빠진 것은 사실이다. 중견 건설사의 '줄도산'이 이어지고 있으며, 협력업체와 영세 업체들 역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안전이 중요하다. 악화된 업황이 '최저가 경쟁'을 불러올 경우, '안전 비용'이 가장 먼저 깎여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설마 사고가 나겠느냐"라는 안일한 태도는 여전히 건설업계에 만연하다. 계약을 따내려 안전을 '협상 도구'로 삼지 못하도록, 보다 체계적이고 확실한 감독과 입법이 필요하다. 건설업 구조의 변화와 더불어 직접 당사자인 현장 노동자들의 작업중지권이 제대로 보장될 수 있도록 하고, 동시에 안전관리자들이 노동자의 안전을 진실로 우선할 수 있는 환경도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안전업무는 진정으로 '사람을 살리는 일'이다. 그들이 최선을 다해 안전한 일터를 만들어나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할 이유다. 그들에게 제대로 일할 기회를 주자.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윤보성씨는 '김용균재단 청년기자단' 1기입니다.


#건설#산재#중대재해#안전관리자#인터뷰
댓글

2019년 10월 26일 출범한 사단법인 김용균재단입니다. 비정규직없는 세상,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하는 세상을 일구기 위하여 고 김용균노동자의 투쟁을 이어갑니다.


독자의견0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