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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김충현씨 추모하는 행렬.
고 김충현씨 추모하는 행렬. ⓒ 신문웅(고김충현대책위 제공)

"직원들은 사장이 누구인지 모르고, 사장은 직원이 누구인지 모르면서 매년 다른 회사의 옷을 입어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불안하고 고단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필연적 사고다. 우리도 언제든 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충남 태안화력에서 나홀로 근무하다가 '끼임사고'를 당한 고 김충현씨 빈소가 차려진 태안보건의료원 상례원에서 만난 동료 비정규직 노동자 박아무개씨의 말이다. 일을 마치고 빈소로 퇴근한 지 보름 가까이 됐다고 한다. 그는 "나도 혹시 이렇게 가족들과 이별하는 것은 아닌지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고 현장 동료들의 분위기를 전했다.

 혼자 일하던 작업공간인 공작실에서 나와 잠시 햇볕을 쬐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고 김충현 노동자
혼자 일하던 작업공간인 공작실에서 나와 잠시 햇볕을 쬐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고 김충현 노동자 ⓒ 신문웅(고김충현대책위 제공)

28년간 산업현장에서 '기름밥'을 먹어온 숙련 기술자 고 김충현씨. 그는 기계 정비, 설비 유지보수, 용접, 배관, 에너지관리 등 수많은 기술을 끊임없이 익히고 자격을 취득하며 살아온 정비기술 경력 10년이 넘는 베테랑이자 '고급기술자'였다.

하지만 그가 일한 발전소 현장은 고질적인 악습인 다단계 하도급으로 노동자들의 임금이 하청의 하청을 거치며 착복되고 있었다. 이 문제는 7년전 같은 발전소에서 사망한 고 김용균씨 사건 이후 사회적으로 드러났었다. 이런 임금 착복 구조가 개선되기는커녕 원하청 구조는 공고했고, 위험은 여전히 아래로 전가됐다. 다단계 하도급 구조 속, 노동자들은 끊임없는 고용불안과 임금 착복이란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음이 재확인된 것이다.

1인당 인건비 1억 원⟶4900만 원... 절반은 어디에?

 빛바랜 출입증. ㈜HKC는 한국파워오앤엠 직전의 재하청업체. 출입증은 1년단위로 발급되지만 업체들의 계약종료는 중구난방이어서 그때 그때 새로 발급되지는 않는다.
빛바랜 출입증. ㈜HKC는 한국파워오앤엠 직전의 재하청업체. 출입증은 1년단위로 발급되지만 업체들의 계약종료는 중구난방이어서 그때 그때 새로 발급되지는 않는다. ⓒ 신문웅(고김충현대책위제공)

김용균씨 죽음 이후 착복되는 임금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정부는 적정노무비 시범사업을 시행했다. 그런데 이때 김충현씨의 원청격인 한전KPS는 제외된 사실이 2021년 국정감사로 드러났다. 당시 배진교 정의당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태안화력발전소가 한전KPS에 지급한 1인당 인건비는 약 1억 원. 이 중 한전KPS가 하도급업체에 지급한 인건비는 약 7100만 원이었고, 하도급업체가 개별 노동자에게 지급한 인건비는 약 4900만 원이었다. 임금의 절반 이상을 뜯긴 것이다.

김충현씨는 한전KPS의 하청업체 한국파워오엔엠 소속 계약직 노동자였다. 그가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기 시작한 2016년부터 현재까지 소속은 수시로 바뀌었다. 1년, 혹은 수시로 이뤄진 재계약은 고용불안을 야기했고, 2020년에는 계약금 문제로 잠시 현장을 떠나야 했다.

 김충현씨의 지난 4월 급여명세서. 그가 마지막 받은 땀의 대가는 420만7470원이었다.
김충현씨의 지난 4월 급여명세서. 그가 마지막 받은 땀의 대가는 420만7470원이었다. ⓒ 신문웅(고김충현대책위제공)

고김충현대책위가 최근 공개한 고인의 마지막 급여명세서에서 그의 생전 마지막 땀의 대가는 420만7470원(2025년 세전)이었다. 태안화력이 올해 얼마를 지급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지난 2019년 임금명세서를 보면 2번에 걸쳐 임금이 반토막 났음을 추정할 수 있다.

2019년 태안화력에서 한전KPS에 지급한 금액은 1인당 월평균 1천만 원 가량이다. 다시 한전KPS가 재하청업체 ㈜오에스산업개발(김충현씨가 2019년도 속해 있던 업체) 지급한 금액은 1인당 월평균 530만 원 가량이다. 그런데 2019년 김충현씨 임금 명세서에 찍힌 금액은 393만8220원이었다.

 고 김충현 노동자의 2019년 11월 임금명세서.
고 김충현 노동자의 2019년 11월 임금명세서. ⓒ 신문웅(고김충현대책위)

노동자에 절대적으로 불리한 근로계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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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의 동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불안정한 고용 구조는 개별 노동자가 위험한 작업 지시를 거부하지 못하게 만들고, 불리한 노동조건을 감수하도록 내몰았다"고 증언했다.

실제로 한국파워오엔엠과 김충현씨가 맺은 근로계약서를 보면 ▲ 회사의 지시를 거부할 시 회사의 허락을 받아야 하며 ▲ 임금과 관련해 추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야 하고 ▲ 자신과 타인의 임금을 누설하면 안된다는 등 노동자의 주체성을 인정하지 않는 불리한 내용들이 여럿이었다.

그렇게 김충현씨는 10년 동안 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 한전KPS에, 하청 노동자라는 이유로 임금착복과 부당한 지시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조차 박탈을 당해왔다는 것이 고김충현대책위의 설명이다.

 고김충현씨의 근로(가)계약서.
고김충현씨의 근로(가)계약서. ⓒ 신문웅(고김충현대책위제공)
 고김충현씨의 근로(가)계약서.
고김충현씨의 근로(가)계약서. ⓒ 신문웅(고김충현대책위제공)

고김충현대책위 관계자는 "이는 김충현 노동자를 비롯한 발전소, 한국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라며 "고용불안과 노무비 착복이라는 이중고를 이제는 끊어야 한다. 발전소 폐쇄 이후 전환될 재생에너지 일자리는 고용불안과 노무비 착복이 없는 일자리, 충분한 인력이 보장된 일자리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김충현대책위#한전KPS#태안화력#임금착복#다단계하청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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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시대를 선도하는 태안신문 편집국장을 맡고 있으며 모두가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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