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발생하는 중대재해 소식에 마음이 움직인 다섯 명의 청년이 모였다. '김용균재단 청년기자단'의 이름으로 중대재해 사건을 정리하고, 소규모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추락 사망사고, 1주기가 돌아오는 아리셀 참사, 중대재해처벌법 재판에서 진짜 책임자 대신 호명되는 중간 관리자, 안전관리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다섯 차례에 걸쳐 청년기자단의 글을 싣는다.
아리셀 참사 사망자 23명 중 18명이 이주노동자였다. 그중 17명이 중국 동포였다. 참사를 계기로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이 한국 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아리셀 참사 이전에도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은 참담했다.
비닐하우스에서 일하다 죽고 다치는 이주노동자
베트남 이주노동자 즈엉 반 응웬씨가 하루 10시간, 주6일 노동으로 인해 과로사한 사건, 태국 이주노동자 프레용 자이분씨가 건설폐기물 처리 공장에서 일하다가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사망한 사건,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속헹씨가 난방이 끊긴 비닐하우스 숙소 안에서 사망한 사건, 네팔 이주노동자 수매씨가 한우 공장에서 일하다 사료 만드는 기계에 왼쪽 손가락 4개가 잘린 사건 등 많은 이주노동자가 죽거나 다쳤다. 특히, 속헹씨의 사망은 비닐하우스 숙소 폐지 운동 활성화의 계기가 되었다.
참사 이후에도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속헹씨 사망 후 4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비닐하우스에서 생활하고 있다. 2024년 10월, 태국 이주노동자 2명이 비닐하우스 숙소 안에서 난방용 LPG 기기를 틀어놓고 잠을 자다가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하기도 했다.
일터에서도 이주노동자들은 죽어간다. 2025년 2월 돼지 축사에서 일하던 네팔 이주노동자 툴시 푼 마가르씨는 사업주와 팀장의 괴롭힘으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열악한 숙소와 위험한 작업장에서 죽고 다치고 있으며, 최소한의 인권도 보장받지 못한 채 일하고 있다.

▲화성시 통리장협의회가 아리셀 화재참사 분향소 앞에서 "희생자 지원 그만", "행정정상화" 피켓을 들고 유가족의 앞을 가로막고 있다. ⓒ 아리셀 중대재해참사 대책위원회
이주노동자에 대한 혐오와 공격
이렇게 이주노동자들이 현재 한국 산업 구조에서 많은 피해를 보고 있지만, 한국 사회는 이주노동자에게 가혹한 시선을 보낸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만드는 구조적 문제는 외면하고 '불법'이라 낙인찍으며 공격하는 식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자국민보호연대(아래 자보연)다.
2018년 12월, 박진재씨의 주도로 설립된 자보연은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불법적인 검문·체포를 실시하고 있다. 박씨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도망가거나 저항하는 이주노동자들을 체포하는 영상을 올리고 있다. 그의 유튜브에는 현재까지 800개가 넘는 영상이 올라와 있다. 자보연만 이주노동자들을 혐오하는 것은 아니다. 2024년 4월 2일 열린 구로구청장 재보궐 선거에 출마한 자유통일당 이강산 후보도 '외국인 불법체류자 완전 추방'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러한 혐오는 아리셀 참사에서도 등장했다. 2024년 6월 화성화재이주민 공동대책위원회에서 안산시 단원구 다문화공원에 분향소를 설치하자, 그 지역을 관할하는 파출소장 찾아왔다. 그는 "분향소는 나라를 지키다가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 설치하는 것 아닌가요"라며 이주노동자들을 포함한 희생자들의 추모받을 권리를 무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인터넷에는 중국 동포들을 겨냥한 혐오성 댓글들이 등장했다.
지난 7월 25일에는 "아리셀 희생자 지원 그만", "행정 정상화", "분향소는 아리셀 공장으로" 등의 피켓들을 든 신원 미상의 20여 명이 유가족들 앞을 가로막았다. 아리셀 참사 유가족들은 아리셀뿐만 아니라 사회의 시선, 이주노동자에 대한 혐오와도 싸워야 했다.

▲2025년 5월 22일 진행된 이주노동자 권리보장을 위한 21대 대선 민주노총 10대 정책요구 발표 기자회견 ⓒ 노동과세계
작은 움직임에서 큰 흐름으로 나아가기 위해
한편,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움직임도 있다. 2020년 이주노동운동단체들이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등록 체류자들의 자진 출국을 유도하는 법무부의 '불법체류 외국인 관리 대책'을 비판했다. 같은 해 3월에는 코로나 시기 이주민에 대한 마스크 지급 차별을 규탄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이주노동자들과 이주 공동행동 등 이주·인권단체 회원들이 고용허가제의 '사업장 변경의 자유 제한' 부분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하고, 박씨가 올린 이주노동자 혐오 영상을 찾고 시민들과 함께 영상을 유튜브에 신고하는 캠페인을 벌이는 등 이주노동자의 현실을 알리고 바꾸기 위한 활동이 이어지고 있다.
아리셀 참사 이후에는 여러 시민단체들이 힘을 모아 '사람이 왔다'라는 이주노동자 차별 철폐 네트워크를 구성했다. '사람이 왔다'는 세계노동절 이주노동자 차별철폐 공동행동 진행, 출입국 폭력단속 규탄 전국 동시다발 1인 시위 등의 활동을 벌이고 있다. 또,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 이주노동자에게 인간다운 숙소를' 서명 캠페인을 통해 이주노동자들의 숙소 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오는 10월 17일 오후 2시 토론회를 통해 공식적으로 출범할 예정이다.
이주노동자들이 모여있는 이주노동자노동조합에서는 '이주노동자 권리보장을 위한 10대 정책요구안'을 발표하는 등 조기 대선 국면에서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거대 양당 대선 후보들은 이주노조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이주노동자 관련 정책을 공약집에 담지 않았다. 이준석 후보는 "외국인 최저임금 차등적용"이라는 차별적인 공약을 내놓았다.
여러 활동에도 불구하고 현재 한국 사회에서 이주노동자들의 목소리는 소외되고 있으며, 이들의 처지는 나날이 악화하고 있다. 이는 한국 사회가 이주노동자들을 '노동자'가 아니라 '노동력' 즉, '노동하는 사람'이 아니라 '노동에 이용되는 도구'로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주노동자들은 한국 산업의 발전을 위한 하나의 부속품으로 여겨지며, 그들의 권리는 중시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주노동자들은 죽고 다치고 있다.
아리셀 참사 1주기,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
곧 있으면 1주기를 맞는 아리셀 참사는 이러한 현실이 극단적으로 드러난 사례였다. 아리셀 참사의 해결은 단순히 사건 해결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진짜 책임자 박순관의 사과와 처벌은 물론, 한국사회 이주노동의 현실을 돌아보고 이주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는 것까지 포함해야 한다.
오는 6월 19일 대책위와 유가족협의회는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는 우리 사회에 무엇을 남겼는가?'라는 제목의 국회 토론회를 개최하고, 6월 21일 참사 1주기 추모대회를 연다. 이주노동자의 안전과 정주노동자의 안전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이주노동자들이 안전한 작업환경에서 노동할 때, 모두가 안전해진다. 그렇기에 우리는 아리셀 참사를 기억하고 재발방지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아리셀 참사가 우리에게 남긴 것이 무엇인지 되새겨야 한다. 끝으로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김용균재단 청년기자단 1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