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박관현 전남대 총학생회장의 누나 박행순씨가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5.18 보상법' 개정을 위한 국가폭력 피해자 증언대회에서 5·17예비검속 및 수배 피해 증언 도중 울분을 토하고 있다.
ⓒ 남소연
"우리 가족은 지옥과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고통을 당한 모든 분을 충분히 위로할 방안이 강구돼야 합니다."
5·18 민주화운동(아래 5·18) 투쟁을 주도하고 옥중에서 단식을 이어가다 사망한 고 박관현 열사의 누나 박행순씨가 떨리는 목소리를 높이며 이같이 강조했다. 국회를 찾은 그는 카메라 앞에서 동생과 자신, 그리고 가족이 45년째 겪은 피해를 소상히 설명했다. 발언 사이사이 눈을 질끈 감기도, 답답한 듯 책상을 두드리기도, 울컥하는 감정을 여러 차례 삼키기도 했다.
5·18 당시 수배·학사징계·해직 등을 겪은 피해자들이 소속된 '제8차 보상 신청자 모임'은 13일 오후 2시 서울 영등포구 국회 의원회관에 모여 '5·18보상법(아래 보상법) 개정을 위한 증언대회'를 열었다.
이번 행사는 지난해 9월 열린 '5·18 성폭력 피해자 증언대회'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린 증언대회다. 수많은 당사자와 국회 관계자 등이 이곳을 찾아 의자가 부족할 정도였다. 일부는 행사 내내 서 있었다.
피해자들은 현장에서 정부와 국회, 그리고 사회를 향해 자신의 피해를 증언하고 개선을 촉구했다. 이들은 4년 전인 지난 2021년 6월 여야 합의로 보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며 뒤늦게 5·18 관련자, 즉 국가 폭력 피해자로 인정됐으나 규정 미비로 피해 회복이 요원한 상태다.
"국가의 통지서, 사과 생각 없다는 말로 읽혀"

▲5·18당시 계명대 학생이었던 김균식씨가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5.18 보상법' 개정을 위한 국가폭력 피해자 증언대회에서 학사징계 피해 증언을 하고 있다.
ⓒ 남소연
피해자들은 "5·18 피해자에 대한 보상은 1990년에 시작되어 7차례 진행되었으나 대상이 사망자, 행방불명자, 상이자 등 희생자와 신체적 피해를 본 사람에 국한되었다"며 "우리는 그렇게 인권 회복과 보상의 사각지대에 있었다"고 했다.
또 "지난 2021년에야 보상법이 개정되어 비로소 성폭력·수배·학사징계·해직 등의 피해자들도 5·18 관련자로 포함됐고 (지난 2023년) 제8차 보상 신청이 진행됐다. 보상 심의는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그런데 (소관 부처인) 행정안전부와 5·18보상심의위원회는 우리와 같은 피해자들을 5·18관련자로 인정하면서도 정작 보상금 지급에 대해서는 '보상금 산출: 해당 없음(0원)' 결정을 통지했다"며 "피해자의 자긍심에 오히려 상처를 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국가를 향해 ▲그간 침묵하고 책임을 회피한 관계기관의 공식 사과 ▲5·18 당시 수배·학사징계·해직 등 조치 무효화 ▲명예회복과 보상 대책, 재발 방지 대책 마련 등을 주문했다. 또 국회를 향해선 '보상법 개정안 본회의 통과 협조'를, 사법부를 향해선 '5·18 피해자 인권 탄압 심판'을 요구했다.

▲이우봉씨(5·18당시 전주 신흥고3)와 박재택씨(5·18당시 영암 신북고2)가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5.18 보상법' 개정을 위한 국가폭력 피해자 증언대회에 참석해 있다. ⓒ 남소연
현장에선 5·17예비검속 및 수배 피해 증언에 나선 박행순씨를 비롯해 김균식(당시 대구 계명대 학생), 이우봉(당시 전북 전주 신흥고 학생), 박재택(당시 전남 영암 신북고 학생)씨 등이 5·18 학사징계 피해 증언을 맡았다. 당시 TBC 기자였던 김준범씨는 1980년 언론인 해직 피해를, 당시 원풍모방 노동자였던 장남수씨는 5·18을 전후한 노동자 해직 피해를 각각 증언하기도 했다.
이우봉씨는 "최근 법원이 5·18 관련자들에 대해 무죄판결을 했다"며 "5·18 관련 학사 징계자들에 대한 징계를 무효로 하고 그로 인한 정신적, 물질적 피해도 보상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제8차 보상 신청에 5·18 학사징계자 19명이 신청을 했는데 '관련자로 인정은 하지만 관련 규정이 없어서 보상은 해줄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고 토로했다.
박재택씨도 앞선 보상 결정 통지서를 언급하며 "통지서 속 글씨는 국가가 '잘못하기는 했는데 사과할 생각은 없다'고 하는 것처럼 읽혔다"고 지적했다. 정경자 전 5·18 조사위 조사관은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현충일에 '특별한 희생에는 특별한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고 말한 기념사를 뜻깊게 들었다"며 "새 정부에서는 실질적 보상이 온전히 이루어지길 기대한다"고 했다.
보상 때마다 '헛소리'하는 이들에게

▲격려사 하는 우원식 국회의장 ⓒ 윤종은
한편 이번 대회는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필두로 같은 당 김상욱·모경종·박균택·박정현·신정훈·안도걸·양부남·위성곤·윤건영·이광희·이학영·이해식·전진숙·정준호·정진욱·조인철·한병도·허영 의원, 정춘생 조국혁신당 의원,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 등 21명이 공동주최했다.
현장을 찾은 민형배 의원은 "대한민국은 80년 광주에 빚을 졌다. 이제 정부와 국회, 그리고 우리 사회가 힘을 합쳐 이 빚을 갚아야 한다"면서 "이에 보상법 개정안을 마련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위에서 논의 중이다. 법안이 통과될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우원식 국회의장도 참석해 "5·18 국가 폭력 피해자들은 45년 전의 고통이 아닌 45년째 고통을 겪고 있다"면서 "피해자들의 고통에 손 내밀고 용기에 응답하는 게 국가의 역할이자 책무"라고 말했다.
그는 "사망하거나 행방불명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신체적 장해가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평생을 짊어진 고통이 외면당해서는 안 된다"며 "보상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실질적인 회복이 가능하도록 보상법 개정에 국회가 노력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사회를 맡았던 한인섭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증언대회 말미 "보상법에 관해 이야기하면 '굳이 돈을 밝히나', '보상 안 받는 게 더 떳떳하다'라는 식의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나온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겠다"며 아래처럼 말했다.
"국가 차원 보상의 의미는 이렇다. 첫째, 공적으로 피해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둘째, 피해 사실에 대해 국가가 과거에 범죄·불법을 했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다. 셋째, 우리가 독재에서 민주화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피해자들이 특별한 희생과 기여를 했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다.
국가의 사과는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 전체의 미안함과 감사함을 담아 국가 예산으로 보상해야 한다. 이러한 보상은 현재의 국가관이 과거와 수준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또 민주주의 국가로서 긍지를 높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한 교수가 발언을 끝낸 후 참석자들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며 증언대회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