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중국 소설을 챙겨 읽는 가장 큰 재미는 중국 근현대사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태평천국이나 의화단 등은 증국번 등의 전기를 통해 만났다. 이후 국공내전 기간은 <중국의 붉은 별> 등 마오쩌둥이나 저우언라이, 덩샤오핑의 전기로 읽어냈다.
하지만 국공내전 이후 시간은 소설로도 만나기 시작했다. 1937년 중일전쟁부터는 중국 현대소설이 되기 시작했다. 팔로군 등의 스토리 등도 소설에 담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1949년 중국 해방이 왔다. 본격적으로 소설에 시대적 배경이 나왔다.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를 끈 위화이 소설 <살아간다는 것>의 주인공 푸구이(富貴)는 40년대 2차 국공합작이 한창이던 민국시대 후반부터 해방, 대약진, 문혁까지를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는데, 당대 작가들도 상당수가 그런 시대적 배경을 취사선택해서 썼다.
대약진(1958~1962)부터 문화대혁명(1966~1976)은 소설의 가장 많은 배경이 됐다. 모옌의 <개구리>, 옌롄커의 <딩씨 마을의 꿈> 등도 있지만 상당수의 소설이 이 시기를 거치면서 겪는 중국인들의 삶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후 시작된 개혁개방의 생생한 현장이나 도시화 과정의 문제도 항상 소설의 중심 소재였고, 그 흐름은 지속됐다. 위화의 <형제>나 <제7일>도 제조업의 발전이나 도시화 과정의 애환을 담은 소설이다. 이렇게 나는 중국 현대사를 소설로 느꼈다.
토지개혁을 배경으로 했다가 금서로
그런데 내가 까먹은 한 단계가 있었다. 중국 토지개혁의 시간이었다. 중국 공산당은 해방이전부터 토지개혁을 시도했다. 사실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가장 기본적인 개혁이기 때문이다. 첫 토지개혁은 1946년 5월 5.4지시로 온건노선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이 흐름은 1947년 시행된 토지법대강을 통해 급진노선으로 수정됐다. 이후 1950년 6월 토지개혁법을 통해 온건노선으로 마무리 됐다. 그런데 공산주의의 안착을 위해서 토지개혁은 가장 기본적인 배경인 만큼 그 과정에서 나온 문제를 다루기 쉽지 않았다.
이번에 읽은 팡팡의 소설 <연매장>(2025년 4월 출간)은 무상으로 지주의 토지를 몰수하던 1947년 급진노선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출간 후 2017년 루야오문학상을 수상할 만큼 문학성으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금방 금기인 토지개혁을 다루었다는 이유로 금서가 됐다. 바이두 등 중국에 있는 작가 소개에 '연매장'(软埋)은 사라졌다. 루야오문학상을 수상했음에도 중국 정부가 정식 출간은 물론이고, 다루는 것 자체를 금지했기 때문이다.

▲한국에 출간된 팡팡 소설 연매장 표지한국에 출간된 팡팡 소설 연매장 표지 ⓒ 문학동네
소설의 배경은 쓰촨과 후난의 경계인 언스(恩施)의 부근과 후베이성의 성도 우한(武漢)이다. 북으로는 창지앙 산샤가 있고, 남으로는 한국인이 많이 가는 장자지에(장가계)가 있다. 1998년 처음 중국을 방문해 취재한 곳이 대홍수 중간의 우한이었다.
2000년을 전후로 난 산샤댐 취재를 위해 그곳을 많이 다녔기 그 동네가 너무도 익숙하다. 때문에 소설을 읽으면서 그 공간들이 자연스럽게 연결됐다. 소설에 등장하는 펑지에나 완저우 등은 수차례 방문했다. 이번 소설의 배경으로 생각되는 다수이징(打水井) 등은 해발 1400미터의 고지에 마치 봉분 같은 산들로 이뤄진 지역이다. 완저우 쪽은 고도가 낮지만 산지로 이어져 교통 발달이 더뎠다.
50년 간극으로 회고되는 가족사... 지독한 역사 체험
소설 연매장은 딩쯔타오와 칭링 모자(母子)를 바탕으로 전개되는 소설이다. 당쯔타오는 1952년 촨동의 강가에서 거의 죽은 채로 발견되어 살아난 여인이다. 기억상실로 인해 앞 일은 기억하지 못하는데, 그녀를 구해준 의사 우자밍은 이름을 '딩쯔타오'로 적어서 호적을 만든다. 그녀가 정신을 차리자 마자 외친 것이 '딩쯔'였고, 그 때 병원 앞에 핀 꽃이 복숭아(桃)여서 작명했다.
우자밍은 혼란한 시대라 그녀가 구설수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군인인 류진위안 집에 가정부를 권유한다. 시간이 흘러 우자밍은 아내와 사별한 후 우한에 돌아와 가정부로 있는 그녀를 다시 만난다. 류진위안도 그녀와의 재혼을 권유해 둘은 1963년 결혼한다. 다음해 봄 임신 사실을 알고, 1963년 말 아들 칭린이 태어난다.
지극히 평온하던 이 가정은 칭린이 학교에 들어갈 무렵 우자밍이 탄 버스가 기차와 부딪혀 우자밍이 사망하면서 비극적인 상황을 맞는다. 다행히 딩쯔타오는 냉정을 찾고, 아들을 키우는 데만 치중한다. 잘 자란 칭린도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선전의 건설회사에 취직해 승승장구를 거듭해, 우한에 돌아와 딩쯔타오에게 아름다운 전원주택을 선물한다.
이제 어머니를 편하게 모시겠다는 칭린의 노력이 실현된 다음날 딩쯔타오는 모든 정신을 놓아버린 사람처럼 일체의 생각과 행동을 잃어 버린다. 억지로 잊으려 했던 잠재된 기억이 서서히 꿈으로 재현되고, 칭린도 아버지가 남긴 일기장을 통해 아버지의 슬픈 가정사 뿐만 아니라 어머니를 만났던 복잡스러운 상황도 대면해야 한다.
그 시간 칭린은 대학 친구 롱중융의 요청으로 촨동에 숨어있던 거대한 저택을 답사하게 되고, 그 곳에서 어머니가 말했던 낯설은 단어들을 직면한다. 그리고 그 장소가 어머니의 개인사는 물론이고, 지금 보스인 류샤오촨을 비롯한 부친 류진위안의 깊은 인연이 있다는 것을 안다.
작가는 한 권짜리 소설이지만 지금 시간인 2015년과 1950년 토지개혁의 시간을 교차하면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실력이 보통이 아니다. 독자들은 그 가족의 비극적인 역사를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이면서 연매장까지 이어지는 지독한 역사 체험을 하게 된다. '연매장'은 스스로 관에 들어가지 않고, 목숨을 끊음으로써, 환생을 거부하고 타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시신을 범접하지 못하게 하는 극단적인 죽음의 방식이다.

▲촨동 지역인 우릉의 저택우릉의 협곡 속에 있는 저택. 소설 속 루씨 장원인 이보다 휠씬 크지만, 기풍을 느낄 수 있다. ⓒ 조창완
망각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역사
딩쯔다오가 기억을 잃기 전인 다이윈의 집안이나 시댁 모두 민국 시절을 거치면서 거부가 된 가문이다.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거대한 성채 같은 집을 살았지만, 악독한 지주의 삶을 살지 않고, 공생관계를 유지하면서 살았다. 하지만 토지개혁의 시간이 오자 사람들은 거칠어졌고, 사감이 더해가면서 잔인하게 기존 지주 가문을 파멸시킨다. 자신의 성을 버린 우자밍이나 딩쯔타오은 살아서 힘든 자였고, 많은 가족은 연매장을 선택해 유령의 집에 묻혔다.
작가가 이런 소재를 선택한 과정도 책의 에필로그에 담겨있다. 그렇다고 이 소설의 전반이 사실적 기반에 있다고 할 수 없지만, 상당히 취재를 통해 진실에 가까운 모습으로 그렸으리라는 게 내 판단이다.
소설에는 다양한 기억의 상실이 나온다. 우자밍은 집안이 멸문한 뒤 성까지 바꾸어 과거를 잊고, 딩쯔타오도 물에 빠진 후 살기 위해 기억상실을 택했을 수도 있다. 살아남은 루씨 집안의 둘째와 막내 아들 역시 뒤늦게 찾아와 통한의 울음을 짓지만 결국 그들은 고향을 잊는 걸 택한다.
결국 그들은 아내 다이윈이나 아들 딩쯔를 찾는 것보다 이제는 더 이상 이곳과 인연을 잊지 않겠다며 결연하게 미국으로 떠나간다. 칭링 역시 마찬가지다. 아버지나 어머니 삶의 실체가 보이지만 더 이상 그 낀을 유지하지 않으려 한다. 이들은 능동적이든, 수동적이든 망각을 선택한다. 과가 루씨 집안의 사람들이 선택했던 잊혀지고자 했던 의지를 존중하는 것일 수도 있다.
중국과 인연이 사반세기가 넘으니, 나는 다양한 이들을 통해 중국 현대를 지나왔던 이들의 기억을 공유하게 된 경우도 있다. 그리고 기억은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도 새로운 모습으로 변형되면서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도 안다. 지도자의 부침에 따라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유를 불문하고, 과거와 함께 매장 당하는 경우도 있다. 그들도 외치고 싶을 것이다. "우리는 연매장 당하고 싶지 않다"(我们不要软埋)라고.
역사의 수레바퀴 아래 깔릴 수 밖에 없었던 슬픈 가문들의 역사 앞에 애도하지 않을 수 밖에 만드는 깊은 터널을 지나온 느낌이다. 문학은 사람들 간의 공감을 만들고, 인류애를 만든다. 한국 현대사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 땅에도 수많은 연매장이 이뤄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