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발생하는 중대재해 소식에 마음이 움직인 다섯 명의 청년이 모였다. '김용균재단 청년기자단'의 이름으로 중대재해 사건을 정리하고, 소규모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추락 사망사고, 1주기가 돌아오는 아리셀 참사, 중대재해처벌법 재판에서 진짜 책임자 대신 호명되는 중간 관리자, 안전관리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다섯 차례에 걸쳐 청년기자단의 글을 싣는다.
"재해조사의견서를 받았을 때 어떻게 일에 집중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아요. 빨리 집에 가서 확인하고 싶어서..."- 효진씨 인터뷰 중
응급구조사인 효진씨는 직업 특성상 일하다 다친 사람들을 매일 같이 마주한다. 그렇기에 공사현장에서 위험한 일을 하는 아버지는 40년 경력의 '베테랑'이었지만 효진씨에게는 '걱정덩어리 아빠'였다.
효진씨의 아버지는 지난 2024년 4월 18일, 일터인 화재복구 공사현장에서 중대재해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효진씨는 아버지가 왜 일터에서 목숨을 잃었는지 반드시 알아야만 한다. 1년 동안 고용노동부와 경찰에게 자료를 요청하고, 정보공개청구를 신청했다. 매번 거절당하고, 폭언을 들으며 얻은 것은 '재해조사의견서' 겨우 하나. 그마저도 효진씨에게는 너무나도 간절하고 절박했다.

▲인터뷰 현장인터뷰 중인 효진씨 ⓒ 김용균재단
수사 중이라 '알려줄 수 없다'고 모른 채로 있어야 하나?
아버지는 10m가 훌쩍 넘는 건물의 철골 뼈대 맨 꼭대기에서 인양되던 패널에 맞아 추락했다. 아무것도 알 수 있는 게 없던 1년 동안 효진씨의 삶은 무너졌다. 매일 같이 울었다. 아버지가 왜 죽었는지 알아야겠다는 마음에 노동부 감독관과 경찰, 사건 담당 형사 등 관계자들에게 계속해서 연락하고, 찾아가서 물었다. 그러나 그나마 변호사를 통해 듣는 간단한 사고 경위와 조사 과정 외에는 "조사 중이라 알려드릴 수가 없습니다", "지금 조사 진행 중입니다"라는 말뿐이었다. 유가족인데도 사고의 가장 기초적인 과정을 알게 되는 것조차 3개월이 걸렸다.
효진씨는 아버지의 사고와 비슷한 기사를 찾아보다 우연히 인우종합건설 노동재해자 문유식씨의 딸 혜연씨를 알게 되었다. 혜연씨를 만나며 다른 재해자 유가족도 사고에 대해 알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효진씨는 유가족 알 권리를 보장해 주지 않는 수사기관의 현실에 큰 답답함을 느꼈다. 가족이 어떻게 죽었는지 알게 해달라는 유가족의 당연한 요구에 왜 수사기관이 기초적인 경위 이외에는 답하지 않고 사고를 '숨기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효진씨는 혜연씨를 통해 김용균재단 '산재 사망사고 유가족을 위한 안내서'를 접하며 수사기관에 공소장과 수사결과보고서 등의 자료를 받고자 정보공개청구를 했다. 그런데 수사기관은 "선생님 유가족분 맞으세요?", "이미 형사 합의한 거 아닌가요?", "그걸 왜 알려고 하나요?", "변호사가 시켰나요?" 등의 방어적이고 날 선 답변과 태도를 보였다. 효진씨가 수사기관의 태도에 상처받으며 받을 수 있던 자료는 고작 공소장 하나였다. 수사결과보고서와 같이 사고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는 받지 못 했다. 유가족이 알 권리를 보장받지 못 하는 문제는 비단 효진씨만 겪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1년이 지나서야 겨우 받아본 재해조사의견서, 받지 못 한 산업재해조사표
효진씨는 산업재해 사건에서 재해조사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몰랐다. 어떤 자료를 요청해야 하는지, 요청할 수 있는지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인우종합건설 항소심 재판을 참관하다가 만난 기자에게서 국회의원실을 통해 아버지 사건에 대한 재해조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기소되어 증거로 넘어갔을 것이라 추정하며 법원에 열람등사를 신청했고, 그제야 재해조사의견서를 받아볼 수 있었다.
재해조사의견서는 중대재해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안전보건공단에서 작성하는 자료로 전문가의 현장조사 결과 등이 적힌 문서다. 재해조사의견서는 공개가 당연한 공공자료이지만, 수사 중이라는 이유로 공개되지 않는다. 수사기관 내부에서 기소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자료로만 활용될 뿐 유가족에게는 거의 공개되지 않는다. 공개를 잘 하지 않는 자료이다 보니 아예 재해조사 자체가 진행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인우종합건설 재해자 유가족 혜연씨는 아버지 사고의 재해조사의견서가 작성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국회의원을 통해 알았다. 이후 혜연씨는 이용우 국회의원과 국회노동포럼,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재해조사의견서 공개법(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발의하고 통과를 촉구하기도 했다. 이 법은 중대재해 사고 발생 시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재해조사의견서를 반드시 작성하도록 하고, 사고 발생 후 6개월 이내에 공개하되, 유가족이 정보공개를 요청할 경우 3개월 이내에 교부하도록 하는 법이다.
효진씨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1년이 지나서야 받은 재해조사의견서를 통해 사고의 경위를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재해조사의견서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은 '분명 막을 수 있던 사고'라는 사실이었다. 사측에서 '(노동자가) 올라가지 말라고 한 위치에 올라갔다'라며 아버지의 과실을 주장했지만, 재해조사의견서를 보니 허위임을 알 수 있었다. 당일 노동자에게 전달해야 했던 작업의 지시가 적힌 작업계획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추락 방지망과 안전대도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노동자의 추락을 방지할 안전장비 또한 노동자에게 지급하지 않았다. 아버지 죽음의 원인이 아버지의 탓이 아니었다는 이 간단한 사실이 적힌 자료 하나를 받기까지의 과정 중 쉬운 건 단 하나도 없었다.
한편, 산업재해조사표는 아직도 받지 못 했다. 사고 발생 1년이 지나도록 산업재해조사표가 작성되지 않았고, 유가족이 공개를 청구하고 나서야 산업재해조사표가 제출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담당기관에서 실수를 인지하고 업체가 작성·제출하도록 했지만, 업체가 유가족에게 공개하는 것을 거부했다. 기관에서 공개를 결정하더라도 주요 내용은 비공개 처리된 채로 전달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사고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구조적인 원인을 규명하기에 재해조사의견서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효진씨는 '왜 회사가 안전장비를 지급하지 않았는지?', '왜 안전장치를 설치하지 않았는지?' 여전히 알 수 없다.
효진씨는 이대로 아버지를 떠나보낼 수 없다
효진씨는 아버지가 왜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알아야 한다. 그전까지는 아버지를 떠나보낼 수 없다. 재해조사의견서를 받기까지 걸린 1년이라는 시간이, 정보공개청구를 하는 과정에서 수사기관에게 받는 날 선 말들과 윽박으로 인한 상처가, 여전히 '당사자'가 아니고 '조사 중'이라는 이유로 알 수 없는 수많은 진실들이 이미 소중한 이를 잃은 유가족에게 끊임없는 상처와 절망을 주고 있다. 사고의 진실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 하는 그 긴 시간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효진씨는 유가족 알 권리의 보장을 간절히 요구한다.
나아가 일하는 노동자가 안전한 구조를 간절히 요구했다. 매일 두 명의 노동자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일터에서 일하다 죽는 노동자는 해마다 이천 명을 넘긴다. 상상하기도 어려운 이 수많은 죽음들은 모두 예방할 수 있었고, 예측할 수 있는 죽음들이었다. 이 노동자들은 목숨이 이윤보다 '저렴'한 구조 때문에 죽었다. 효진씨는 아버지를 잃고 나서야 보이는 이 끔찍한 구조가 바뀌기를 간절히 요구한다. 더는 이 사회에서 아버지와 같은 죽음이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최예니씨는 김용균재단 청년기자단 1기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