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 원인 분석을 통해 예방과 수사를 하나의 기관에서 동시에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중대재해처벌법 취지에 부합함"
2021년 1월 26일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시행은 2022년 1월 27일)된 후 근로감독관이 중대산업재해에 대한 수사권을 갖도록 해달라며 고용노동부가 같은 해 9월경 국회에 밝힌 내용이다. 당시 고용노동부는 "전문성이 부족한 경찰이 중대재해처벌법 수사권을 행사하는 경우 과잉수사, 수사지연 등 현장의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했다. ILO 제81호 협약까지 제시하며 노동자 권리구제를 통한 현장의 노동 질서를 확보하는 근로감독관의 역할을 강조하기도 했다. 또한 노동계 및 시민단체, 유족 등의 감시·참여의 사례로서 김용균 사건과 평택항 사건을 내세웠다.
고용노동부는 원하던 대로 사법경찰직무법 등 관련 입법을 통과시켰고, 중대재해 수사를 위한 조직을 신설·확대하고 인력을 충원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을 통해 부처의 가장 큰 이해관계인 조직과 인력을 얻은 것이다.
그리고 약 4년이 지난 지금, 고용노동부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가족을 잃은 유족, 동료를 잃은 노동자들과 맞서고 있다. 사업장에서 사고 원인을 은폐하거나 근로감독을 방해하기 위한 조직적 시도를 하는 상황에서, 하청노동자 김충현의 사망사고의 원인을 밝히고 예방대책을 세우기 위해 사전에 협의되었던 '태안화력 고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아래 대책위)의 조사 참여를 갑자기 배제한 것이다.
오히려 이례적인 고용노동부의 태도

▲태안화력 고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철저한 진상규명 촉구태안화력 고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 주최로 지난 12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대책위 출범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투쟁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 이정민
고용노동부는 조직 확대를 위해 강조했던 ▲재해 원인 분석을 통한 예방 ▲노동자 권리구제 ▲노동계와 유족의 감시와 참여를 사실상 모두 저버린 채, "수사에 착수했으니 재해 원인 조사는 하지 않고 모두 수사로 수렴된다"는 입장이다. 산업안전보건법상 원인 조사나 근로감독이라는 감독기관 고유의 역할과 책무는 망각하고는, 재해 원인을 따져 묻는 유족에게 모든 것이 '피의사실'이라며 피의사실공표죄를 운운한다.
그런데 통상적인 수사실무를 고려할 때 이런 고용노동부의 태도가 오히려 이례적이다. 감독관이 하는 모든 것이 '수사'라는 것도 출처 불명의 틀린 말이거니와, 정말 '수사'가 피해자에게 모든 것을 감춘 채 은밀하게 진행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경우 수사기관은 범죄 피해자와 긴밀하게 소통한다. 특별히 피해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범죄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필요해서다.
수사 진행마다 피의자의 주장을 검증하고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피해자나 고소인에게 수시로 의견 조회를 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범죄 피해자에게는 알권리, 정보접근권, 진술권 등의 권리가 있기 때문에, 수사 중이라는 이유로 관련 절차와 내용에 있어 피해자를 배제하는 것은 부당하다.
사고조사와 수사에 피해자가 참여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고용노동부 스스로도 내세우며 선전했던 김용균 사건에서 확인할 수 있다. 3년이 넘는 재판 과정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점은, "작업환경은 안전했다", "김용균이 왜 사망했는지 알 수 없다"는 원·하청 피고인 측의 주장이 법정에서 수없이 반복된 것이다.
과거부터 재해가 반복되던 위험한 일터에서 홀로 일하던 노동자가, 다른 곳도 아닌 작업공간 내의 설비에 끼어 수습조차 어려운 상태로 발견된 사건이었다. 그런데도 "CCTV도, 목격자도 없으니 사망 원인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마치 '음모론' 같은 주장이 되풀이되었다. "사고 발생 경위가 불명확하다"는 변호인의 변론은 공판기일이 이어지면서 강화되고 구체화했다. 급기야 PPT로 진행된 1심 최후변론에서는 시신의 부위와 위치까지 그려가며, 공소사실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사실관계부터 모조리 흔들고자 했다.
험난했던 김용균 재판 과정에서 확인된 소중한 사실

▲태안화력 고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추모문화제가 지난 6일 오후 3시 서울역 12번 출구 앞에서 진행됐다. 민중가수 지민주씨가 "일하다 죽지 않게 차별 받지 않게"라고 적힌 팻말을 든 채 추모공연을 하고 있다. ⓒ 소중한
김용균 재판은 원청의 산업안전보건법위반 혐의를 무죄로 판단하고 업무상과실치사죄에서마저 원청 '윗선'의 책임을 부인하는 등 분명 전체적으로 한참 아쉬운 판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용균의 사망 원인이 '알 수 없는 이유'에서가 아니라, 사업장에서의 의무위반으로 인한 재해라는 점은 나머지 유죄 판결 부분을 통해 분명히 확인된다. 이러한 판결이 가능했던 것은, 유족과 노동조합, 현장 동료들, 민간 전문가들의 참여하에 이루어진 노동부·안전보건공단의 재해조사와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의 진상조사의 기여 덕이다. 유족 측과 충분히 소통하며 현장을 직접 확인하고 성실하게 수사와 기소, 공소유지를 담당했던 검사의 역할도 있었다.
피고인 측에서 방어권 행사를 명목으로 고인과 유족을 모욕하는 수준의 변론을 할 때, 재해조사의견서와 특조위의 진상조사결과 종합보고서의 기록을 토대로 반박이 이뤄졌다. 사고 당시와 달리 깨끗하게 정돈된 현장 사진이 제시되면, 사고 이전에 고인과 동료 노동자들이 촬영하고 사고 직후 조사과정에 촬영한 사진과 영상을 제출했다. 법원은 재해 발생 직후 다양한 주체와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충실히 조사하고 파악한 내용을 무시할 수 없었다. 수사에 이어 재판에서도 피해자가 의견과 증거자료를 제출하면, 이를 검사가 법원에 추가 증거로 제출하여 채택되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김용균이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사망했다"는 사실이 수사기관과 법원에서 '실체적 진실'로 확인되는 과정은 험난했다. 그 한 줄의 진실마저 없는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시도는 실로 견고했다.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현장의 경험과 조력을 기꺼이 받아들인 조사와 수사의 과정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에게 남겨진 실체적 진실은 뒤바뀌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죽음의 원인을 묻고 사회적으로 확인하는 것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다. 피해자와 현장의 참여를 배제한 채 발견할 수 있는 실체적 진실이란 없음을 고용노동부가 부디 깨닫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법률사무소 고른 변호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