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종철 인권상 시상식이 12일 오후 4시 서울 중구 새길기독사회문화원에서 열렸다. 지난해 수상자인 박정훈 해병대 대령이 시상식 중 묵념하고 있다. ⓒ 소중한
▲[현장] 박정훈 대령 "우리나라가 정의롭고 행복한 방향으로... 참 기분이 좋다"
소중한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박정훈 해병대 대령은 이 문장으로 말문을 열었다. 박종철 인권상 지난해 수상자로서, 올해 수상자인 '광장의 시민들'에게 격려사를 전하면서였다.
박 대령은 12일 오후 4시 서울 중구 새길기독사회문화원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고 채상병 앞의 "한 사람"이었던 자신과 내란 권력에 맞서 여의도·남태령·한남동·광화문에 서 있던 "한 사람, 한 사람"을 호명했다. 더해 위법한 명령을 거부했던 군인 "한 사람, 한 사람"도 거론했다.
그는 "광장에서 빛의 혁명을 일군 한 분, 한 분이 모여 위대한 대한민국의 역사를 이뤄냈다고 생각한다"라며 "이 분들로 인해 또 다른 한 사람, 한 사람이 깨어나고 그래서 대한민국은 보다 정의롭고 행복한 나라가 될 것을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왼쪽부터 지난해 수상자인 박정훈 해병대 대령, 올해 수상자인 '광장의 시민들'을 대리해 수상한 이주리(참여시민)·서지원(자원봉사단)·서민영(비상행동 상황실)씨, 박동호 박종철기념사업회 이사장. ⓒ 소중한
박 대령은 "한 병사(고 채상병 지칭)의 시신 앞에서 '너의 죽음에 억울함이 없게 하겠다'며 한 사람(박 대령 본인 지칭)이 다짐하고 약속했다. 모든 것의 시작점이었다"라며 "이후 한 사람의 격노로 모든 국가권력기관이 총동원돼 사건을 왜곡하고 은폐하려 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고위직과 장군들의 민낯을 보게 됐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더해 "호주대사, 삼부토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공범, 마약수사 외압 등 권력의 어두운 부분들이 마치 고구마 줄기처럼 세상에 드러났다. 그들은 교만했고 거짓을 또 다른 거짓으로 덮었으며 악을 더 큰 악으로 막으려했다"라며 "이후 광장에서 응원봉을 들고 목청 높여 소리쳤던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함께해 대한민국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지켜냈다. 남태령에서 기적을 만들었던 장면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벅차 오른다. 저는 한 사람의 한 생각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면서 "제가 내일 또 재판을 받는다. (1심에서 항명죄 혐의 무죄를 받았지만) 군검찰이 항소해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라며 "재판을 앞두고 꼭 이 자리에 와서 광장에 직접 축하의 말을 전하고 싶었다. 제가 현역 (군인) 신분이다보니 그 동안 광장에 나갈 수 없었지만 유튜브로 (집회를 보면서) 한 번도 빠짐 없이 응원하고 있었다"라고 덧붙였다.
끝으로 박 대령은 시인 박노해의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를 낭독했다.
"세계의 모든 어둠과 악이 총동원되었어도 결코 굴복시킬 수 없는 한 사람이 살아 있다면 저들은 총체적으로 실패하고 패배한 것이다. 삶은 기적이다. 인간은 신비이다. 희망은 불멸이다. 그대, 희미한 불빛만 살아 있다면.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수상자들 "광장 덕분에 다시 일어섰다"

▲박종철 인권상 시상식이 12일 오후 4시 서울 중구 새길기독사회문화원에서 열렸다. ⓒ 소중한
이날 시상식엔 이주리(참여시민)·서지원(자원봉사단)·서민영(비상행동 상황실)씨가 참석해 대리 수상했다. 수상 소감을 발표하며 울먹인 이주리씨는 "이직을 준비하는 취업준비생으로서, 자취생으로서 경제적인 걱정인 끊이지 않았고 '지금 네가 이러고 있을 때냐'라는 질문도 (스스로에게) 했다"라며 "그럼에도 광장의 동지들 덕분에, 그리고 저와 함께 늘 광장에 나간 친구들 덕분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라고 떠올렸다.
이어 "저는 이 순간에도 견디고 있는 청년들을 대신해 이 자리에 섰다고 생각한다. 학력과 스펙이 곧 내가 되고 그것으로 판단받고 평가받는 각박한 세상 속에서 그럼에도 신념과 광장을 지키며 살아낸 청년들이 있었다는 것 기억해줬으면 한다"라며 "청년들이 언젠가 사회의 부당함을 외면하지 않고 목소리를 내는 어른이 돼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원봉사 조끼를 입고 온 서지원씨는 "지난 4개월은 여러분 덕분에 덜 공허하고 덜 외로운 시간이었다. 그 기간 동안 동지는 저의 또 다른 이름이 돼줬다"라며 "아직 새로운 시작이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과제들을 눈앞에 두고 있다. 현재의 또 다른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고 동지라는 이름으로 또 다시 불릴 수 있도록 앞으로도 광장에서 연대를 이어나가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왼쪽부터 올해 수상자인 '광장의 시민들'을 대리해 수상한 이주리(참여시민)·서지원(자원봉사단)·서민영(비상행동 상황실)씨, 박동호 박종철기념사업회 이사장. ⓒ 소중한
내란청산·사회대개혁비상행동에서 조직팀장을 맡았던 서민영씨는 "매주 광장을 열며 너무너무 추웠다. 그때 정말 집에 가고 싶었는데 '왜 (집회가 끝나도) 시민들이 집에 안 갈까' 생각했었다"라며 "광장에서 기꺼이 다른 사람들,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낯설더라도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연대의 박수를 보낸 모든 시민들에게 감사드린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도 응원봉을 갖고 있는 누군가의 팬이다. 응원봉은 정말 소중한 물건이라 콘서트가 아니면 절대 밖으로 갖고 나가지 않는다"라며 "(시민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으로 광장을 가득 메웠던 것이다. 사랑의 마음이 민주주의를 지켜낸 것처럼 앞으로 우리 사회도 혐오와 갈라치기가 아니라 사랑과 이해가 넘치는 사회가 됐으면 한다"라고 덧붙였다.
박종철 열사의 형 박종부씨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저는 예비검속 대상자였고 끌려가서 고생했다. 지난 12월 3일 그 사건으로 45년 전 하루하루가 또렷이 다시 떠올랐고 솔직히 무서웠다"라며 "국회로 가는 것은 물론이고 도망칠 용기도 나지 않았다. 다행스럽게 광장에 시민들이 있었고 그 용기는 결국 나를 바꿔냈다"라고 회상했다.
이어 "어제 대북방송이 멈췄고 대남방송도 멈췄다. 여러분 덕분이다. 코스피 주가가 3000을 바라보고 있다. 그것도 여러분 덕분"이라며 "여러분이 바꿔낸 이 정부가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는 사회, 인권이 밥 먹여줄 수 있다는 사실을 이뤄내는 그런 정부가 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공존과 연대의 길 열어"

▲박종철 인권상 시상식이 12일 오후 4시 서울 중구 새길기독사회문화원에서 열렸다. 박종철 열사의 형 박종부씨가 시상식 중 발언하고 있다. ⓒ 소중한
박종철 인권상 심사위원회(위원장 한상희·김형완·문경란·박래군·홍성수)는 '광장의 시민들'을 올해 수상자로 선정하며 "헌법재판소가 '시민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 임무수행' 덕분에 계엄이 실패했다고 말했지만 우리 시민들의 행동은 그런 형식의 수준을 넘어섰다"라고 강조했다.
이날 심사위원회를 대표해 심사평을 발표한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권력에 항거하였을 뿐 아니라 세상의 질곡을 꾸짖고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이끌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공존과 연대의 길을 열였다"라며 "지난 (2016~2017년) 촛불집회가 채 맺어내지 못했던 이야기들까지 품으며 우리가 이 시대 주인임을 거듭 확인했다. 그뿐 아니라 그 험한 길을 가면서도 시민동료들에 대한 존중과 배려는 무엇보다 빛났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자율적으로 차별 없는 집회를 위한 인권지침을 만들어 모든 이들이 평등과 관용의 윤리를 공유하고 실천함으로써 집회의 자리 하나하나가 유의미한 공동체로 구성될 수 있었다. 스스로 원하던 세상을 스스로 만든 광장 속에서 가열차게 실천했던 것"이라며 "가히 빛의 혁명이라 할 것이다. 응원봉과 촛불의 빛살은 박종철 열사의 '해방 춤'과 함께 더 많은 민주주의를 일궈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동호 박종철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지난해 기념사업회가 박정훈 대령께 이 상을 바쳤을 때만 해도 올해 이 상을 광장의 시민들께 드리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라며 "그렇게 불충한 관리인들(윤석열 정권)의 무도한 준동의 기세가 아무리 교활하고 포악했더라도 탈취의 그 뜻을 이루지 못한 까닭은 무엇보다 주인이 사회를 굳건히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오늘날 우리 사회는 여기저기 손 볼 곳도, 정리할 곳도, 허물고 새로 세워야 할 곳도 많다"라며 "새로 들인 관리인이 그 책무에 충실하도록 빛을 밝혀야 할 몫은 여전히, 그리고 다시 주인에게 맡겨졌다. 그 모범을 보여 주셨음에 깊은 경의를 표한다"라고 덧붙였다.

▲박정훈 해병대 대령이 지난해 수상자 자격으로 발언한 뒤 경례를 하고 있다. ⓒ 소중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