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 예방을 위해서는 현장의 유해·위험요인에 대한 의견 개진이 활발해야 한다. 노동자 참여에 기반한 위험성평가뿐 아니라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 등 사업장 단위의 노동안전보건활동이 강조되는 이유다. 그러나 개별 현장의 작업환경 및 노동권 보장 수준이 상이한 만큼 노동자 참여에 있어서도 그 편차가 존재한다.
금속노조는 2021년 마련한 모범 단체협약(안)을 통해 안전보건에 관한 노동조합(혹은 노동자)의 참여를 현장에 정착하고자 노력 중이다. 위험성평가를 비롯한 일상 노동안전보건활동을 현장에 뿌리내리기 위해 분전 중인 경기지역 금속사업장 노동안전보건 활동가들로부터 현장의 난관과 고민을 들어보았다. 금속노조경기지부 김두형 노안국장, 말레동현화성지회 박종대 노안부장, 현대모비스안양지회 최수민 노안부장이 참여했다.

▲2025.05.17. <일터> 기획좌담에 참여중인 금속경기 노동안전보건활동가들의 모습(왼쪽부터 금속노조경기지부 김두형 노안국장, 말레동현화성지회 박종대 노안부장, 현대모비스안양지회 최수민 노안부장). 세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강조했다. “노동자 참여가 실질적으로 보장돼야 위험 상황에 대한 능동적인 대처도 가능하다.”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통제적인 안전보건관리체계부터 근본적인 혁신 필요
-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이 시행 4년 차에 접어들었다. 사업장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면에서 어떤 점이 달라졌나?
최수민(이하 '최') "현대모비스는 모듈 부품을 생산하는 공장이 전국에 흩어져 있다. 그러다 보니 사업장 안전보건 이슈에 대해 노사가 함께 논의할 기회가 흔치 않다. 작년에 공장별로 실시했던 위험성평가의 성과나 과제를 공유하는 자리가 얼마 전 있었는데, 재해 예방을 위한 안전보건 전담 인력의 문제라든지 예산의 문제에 대해서도 여러 이야기가 오갔다.
일례로 작년 안양공장에선 근골격계질환 예방을 위해 자동화 설비를 도입했는데 여기에 3억 원가량이 투입됐다. 우리 사업장(안양공장)이 상대적으로 많은 예산을 배정받았고, 어떤 사업장은 1천만 원 정도가 편성됐다고 하더라. 설비 개선 같은 안전에 투자하는 비용이 사업장 수준에서 감당할 수 있는 (예산) 범위를 초과하면 다른 사업장에 배정된 예산을 전용하는 방식인데, 어떻게 보면 한정된 예산을 여러 사업장이 나눠 쓰는 구조라는 생각도 든다."
박종대(이하 '박') "우리 회사는 작년 5월 중대재해 예방과 관련한 컨설팅을 받았다. 종전과 확연히 달라진 부분은 중대재해처벌법 대응을 이유로 규정과 절차를 지나치게 강조한다는 점이다. 모든 문제에서 작업자의 과실, 개인의 문제로 몰아가는 경향을 보인다고 생각한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 나오는 사측 반응도 엇갈린다. 예전(컨설팅 전)에는 '왜 그랬어?', '개선책이 뭐야?' 이 정도였다면, 요새는 '안전센서도 있고 비상 스위치도 있는데, 왜 그렇게 서둘러 작업했느냐?'라고 문제를 제기하는 식이다. 작업자들이 할당된 물량을 채우느라 기계를 세우지 않고 무리하게 작업하다가 다치는 건데, 안전수칙 지켜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물량 얘기도 빼놓지 않는다. 말인즉슨 물량도 안전도 둘 다 챙기라는 얘긴데, 사실 모순되는 주문을 계속 넣고 있는 거다."
중처법 시행 이후 노조의 안전보건 일상 활동을 안착하기 위한 노력은 이렇듯 다층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안전을 앞세워 노동배제적이고 노동자에 대한 현장통제를 강화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기업의 안전보건관리체계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인력과 예산의 효율적 투입뿐 아니라 업무상 위험을 가장 잘 알고 있는 현장 노동자의 의견과 노동조합의 참여가 수용되어야 한다. 법이 부여한 사용자의 안전보건조치 의무와 책임을 기계적으로 준수하는 데만 몰입해 통제적인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고수한다면 노동자나 노동조합이 위험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가능성은 그만큼 줄어든다.
박 "사출 공정에서 작업자 안면부에 안료가 튀는 사고가 한번 있었다. 다행히 실명으로 이어지진 않았고, 이 사고를 계기로 회사에서는 작업환경 개선대책 마련에 박차를 가했다. 혹여 작업자의 실수로 책임을 돌릴까 봐 노조에서도 우려가 컸었는데, 공정표 자체도 없는 작업이라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결국 개선책으로 나온 것은 개인 보호구 착용을 철저히 하라는 것이었다. 물론 이번 사고처럼 사출기계 성능 개선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부분도 있지만… 그 외에도 많은 위험이 있을 수 있는데, 이 모든 것들을 안전보호구라든지 개인이 '알아서, 잘' 대처해야 하는 문제로 처리되는 것 같아 씁쓸할 때가 많다."
안전한 작업장 문화를 만드는 과정은 노사 간 갈등과 긴장을 불러온다. 작업자들 또한 기존의 작업관행을 바꾸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노동안전보건활동을 하는 현장 활동가들에게는 회사를 설득하는 것만큼, 동료 작업자를 설득하는 것 또한 만만치 않은 과제이다.
최 "우리 현장은 라인작업이다 보니 UPH(Unit Per Hour, 시간당 생산량)가 작업속도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일을 처리하는 속도에 개개인의 편차가 생길 수 있지만, 대부분의 작업자들은 작업속도를 높여서 물량을 맞추고 남는 시간에 길게 쉬는 걸 선호한다. 생산 물량이나 속도에 매이지 않고 차근차근 안전하게 일하는 현장을 만들려면 무엇보다 (현장 노동자들의) 이런 문제에 대한 공동의 인식을 만들어야 한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김두형(이하 '김') "경기지역 금속 사업장 전반으로 넓혀서 보면, 일상 노동안전보건활동이 일정하게 안착된 현장은 사실 중처법 시행 효과가 뚜렷이 감지된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앞서 얘기한 물량제일주의나 작업관행은 아직까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데다가 사측은 이러저러한 절차나 규정만 더욱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장통제가 강화되는 흐름에 그나마 맞설 수 있는 곳은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이나 노동안전보건활동이 활성화된 사업장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열악한 사업장들, 이를테면 노동조합이 없거나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은 중처법 시행 이후 어떤 상황인지 면밀히 파악해야 할 것 같다."
위험에 집단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역량 강화하기
중대재해의 획기적인 감축을 위해서는 위험 정보에 대한 알 권리, 위험 작업을 거부 또는 중단할 권리, 위험 작업 개선 및 재해예방에 참여할 권리가 현장 노동자에게 주어져야 한다. 이러한 권리는 위험성평가, 작업중지권, 산업안전보건위원회 노동자 참여 등을 통해 제도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각각의 현장 상황은 실제로 어떨까.
박 "우리 현장은 올해 위험성평가가 이제 3년차를 맞이한다. 1년 차에는 회사 주도로 실시했고, 작년에 금속노조 안을 제시했다가 사측으로부터 거부당했다. 올 들어서는 노조 단독으로 진행하고 있다. 지난 2년간은 현장에 (위험성평가) 설문지를 배포했는데, 현장 의견을 이렇게 청취했다는 걸 표시하는 수단에 불과했다. 반면 올해는 노조에서 적극적으로 현장 의견을 수렴하려고 한다. 라인마다 들어가서 개별 작업마다 사고, 근골격계 부담작업, 화학물질과 관련된 유해·위험요인에 대해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솔직히 들어볼 예정이다."
최 "저희도 작년에 노사 공동으로 위험성평가를 실시했고, 이때 도출했던 개선안들이 아직도 진행 중인 게 좀 많다. 그래서 현장의 가시적인 변화 측면에서 좀 더디다고 느끼는 부분들이 있고, 노사간담회 자리에서도 그런 얘길 주로 나눴다. 종전에도 그랬지만 올해 위험성평가는 사측에선 안전관리자가 전담을 하고, 노측은 저를 포함해서 노안부장 두 사람이 참여할 계획이다. 마음 같아서는 실행위원을 약간 명이라도 두어서 현장의 참여를 넓히고 싶은데, 뜻대로 될지는 모르겠다."
김 "경기지부에 대략 60개 정도 사업장이 있다. 위험성평가 실시현황을 조사해 보면, 대부분 노사합동으로 진행하고 있긴 하다. 다만 형식적 참여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일부 현장에서는 위험성평가 보고서에 실질적인 위험에 대한 공유가 아니라 일반적인 건의사항 수준의 내용을 담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가령 내가 일하는 현장의 유해·
위험요인의 얘기가 아니라 '길 가다 패인 데 좀 고쳐 달라'는 정도의 이야기들 말이다."
구조적인 위험을 인식하고 잠재된 위험을 발굴하는 데 있어 가장 필수적인 것은 위험에 대한 공통의 감각을 키워가는 것이다. 대개의 경우 현장 노동자들이 위험을 감내하는 까닭도 위험에 대해 거부할 수 있는 힘이 나(혹은 우리)에겐 없다고 생각하거나, 심지어는 그것이 위험인지 아닌지조차 사업장 차원에서 함께 논의, 확인할 수 있는 과정이 생략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안전보건활동은 특정 담당자의 역할이 되어버리며, 집단적인 대처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 위험에 맞닥뜨린 누구나 위험을 통제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다.
- 끝으로 안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해 앞으로 어디에 주안점을 두고 활동한 계획인지 얘기해 달라.
박 "두 가지가 중요하다고 본다. 하나는 '예방', 또 다른 하나는 '산재'다. 재해자가 힘들지 않도록 돕는 게 일차적인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다음으로는 현장에서 일상적인 안전보건활동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최 "우선 안전 역량과 자원을 집중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은 노사 어느 한쪽만의 과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해마다 골병 드는 노동자들이 속출하고 있는데, 앞으로 현장 개선 활동을 어떻게 해나갈지 계속 고민하고 실천하겠다."
김 "중대재해는 물론이고, 현장에서 질병자나 아차사고가 발생했을 때 노조로 보고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노조의 개입방안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그런 것을 더 잘해 나가면서 전체 사업장의 안전역량이 상향평준화되도록 노력하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의 노동안전보건 월간지 <일터> 6월호에도 게재됩니다. 이 글의 필자인 임용현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