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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인시민신문

경기도가 광복 80주년을 맞아 추진 중인 '올해의 독립운동가 80인' 가운데, 의병의 날(6월 1일)을 기념해 추가로 21인의 명단을 공개했다. 이번 명단에는 용인 출신 독립운동가 4인이 포함돼 지역사회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올해의 독립운동가 80인 선정은 광복회 경기도지부와 함께 진행되는 광복 8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이다. 주요 독립운동 관련 기념일을 중심으로 순차적으로 명단이 공개되고 있으며, 지난 4월 11일 임시정부 수립일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경기도는 의병 활동이 활발했던 지역으로, 특히 1895년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에 반발해 일어난 을미의병의 주요 무대였다. 이번 공개 인물 중에는 경기지역에서 창의한 의병장과 해외에서 독립운동에 헌신한 인물들이 다수 포함됐다.

교육으로 나라 살린 용인의 선각자, 여준 지사

여준 지사는 용인 출신 독립운동가다. 1906년 이상설 선생과 함께 북간도 용정에 서전서숙을 설립하고, 교육을 통한 구국운동을 전개했다. 이후 만주로 망명해 신흥무관학교 교장으로 독립군 양성에 힘썼으며, 1918년에는 대한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9인 중 한 사람으로 기록됐다.

항일 의병장 임옥여, 무장투쟁 이끈 이천창의소 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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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평창리에서 태어난 임옥여(1872~1907) 의병장은 1907년 고종 강제 퇴위를 계기로 관직을 내려놓고 항일 무장투쟁에 뛰어들었다. 그해 8월 이금풍, 주창룡 등과 함께 경기도 이천에서 '이천창의소'를 구성해 좌장으로 활동하며, 일본 기병대를 기습 공격했다.

이후 이천 우편취급소와 순사분파소를 습격하고, 포군 70여 명을 모집해 이동읍 굴암산 일대에서 일본군과 치열하게 교전했다. 그는 이천, 죽산, 안성, 용인 일대를 넘나들며 전과를 올렸고, 11월 고향집에 들렀다가 양지 추계리에 주둔하던 일본군에게 체포돼 끝내 순국했다.

신민부 통합 주도한 김혁 장군, 기흥 출신 독립운동가

기흥구 농서동 출신의 김혁(1875~1939) 장군은 북로군정서를 실질적으로 이끈 독립운동가다. 1921년 자유시 참변 이후 독립군 군세를 수습하고 만주로 복귀, 각 독립운동 단체를 통합하는 데 힘을 쏟았다.

그는 북만주 지역 독립운동 통합단체인 '신민부'의 중앙집행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며 무장투쟁 기반 확충과 동포들의 민족의식 고취에 힘썼다. 1928년, 일본 영사관 경찰과 만주경찰대에 체포되어 1929년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0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다. 일제의 회유에도 굴하지 않은 그는 옥중에서 병을 얻어 1936년 가출옥 후 1939년 4월 23일 순국했다

고종의 양위 반대, '동우회' 조직한 홍재설 지사

홍재설(1873~1939) 지사는 고종의 양위 반대운동을 이끈 인물이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 이후 벼슬을 버리고 '동우회'를 결성, 항일 결사대를 조직해 활동했다. 1907년, 일제가 고종 황제(광무제)를 일본으로 압송하려 하자 대원들과 함께 덕수궁 광장에서 주야농성에 들어가 이토 히로부미로부터 철수 서약을 받아내기도 했다. 이후 을사오적 이완용을 처단하려다 실패하고 그의 집에 불을 질렀다는 이유로 내란죄로 체포돼 전남 지도로 유배됐다. 그의 두 아들인 홍종욱·홍종협 선생 역시 용인 포곡지역에서 권종목 선생과 함께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7월 24일 '부민관 의거일' 34인 추가 발표 예정

경기도는 오는 7월 24일, 부민관 의거일을 맞아 올해의 독립운동가 명단 중 남은 34인을 추가로 공개할 예정이다. 부민관 의거는 1945년 7월 24일, 서울 부민관에서 열린 친일단체 주최 행사에 조문기 등 애국의사들이 폭탄을 투척해 행사 자체를 무산시킨 일제강점기 마지막 의거다.

한편, 지금까지 공개된 '올해의 독립운동가 80인'에 대한 정보는 경기도청 누리집과 광복회 경기도지부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용인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용인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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