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이 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점검 2차 태스크포스(TF)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마침내 이재명 대통령 시대가 열렸다. 그가 선도해서 만들어 낼 '진짜 대한민국'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크다. 그런데 그 진짜 대한민국은 어떤 대한민국일까? 그는 선거 기간 중 민주당을 '중도 보수'로 위치 지우기도 하고 최근 들어서는 아주 자주 '실용주의'를 표방하기도 했는데, 이런 데서는 그가 꿈꾸는 대한민국에 대한 비전 같은 게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는 오래전부터, 그리고 자신의 이념적 지향에 대한 예각화를 피하고자 했던 이번 선거 운동 과정에서도 가끔, '억강부약(抑强扶弱) 대동세상(大同世上)'을 열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하곤 했다. 아마도 이 표현이 그가 만들어 보려 하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지향을 가장 압축적으로 표현해 주는 건 아닐까 싶다. 이를 좀 자세하게 살펴보는 것도 나름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한다.
아마도 그가 말하는 '대동세상'은 그의 궁극적인 정치적 이상을 담고 있는 표현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대동세상 또는 '대동사회'는 사실 오랫동안 유교 전통이 추구해 왔던 정치적 이상을 담고 있다. 이런 전통적인 정치적 이상이 이재명 대통령의 정치적 구호로 사용되었다는 점이 무척 흥미롭다. 이 대동 사회의 이상은 '천하위공(天下爲公)', 곧 '세상은 모두의 것이다'라는 걸 기본 원리로 한다. 이것은 말하자면 유교적 평등주의의 이상을 나타내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원리는 현대적 맥락에서 볼 때 아주 강한 복지국가에 대한 지향을 담고 있다. <예기(禮記)> '예운(禮運)'편은 대동 세상을 이렇게 묘사한다.
"사람들은 자기 부모만을 친하지 않고 자기 아들만을 귀여워하지 않는다. 나이 든 사람들이 그 삶을 편안히 마치고, 젊은이들은 쓰이는 바가 있으며, 어린이들은 안전하게 자라날 수 있고, 홀아비·과부·고아, 자식 없는 노인, 병든 자들이 모두 부양되며, 남자는 모두 일정한 직분이 있고, 여자는 모두 시집갈 곳이 있도록 한다. 땅바닥에 떨어진 남의 재물을 반드시 자기가 가지려고 하지는 않는다. 사회적으로 책임져야 할 일들은 자기가 하려 하지만, 반드시 자기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 때문에 간사한 모의가 끊어져 일어나지 않고 도둑이나 폭력배들이 생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문을 열어놓고 닫지 않는다."
이 대동세상의 이상은 우리 인간의 본원적 취약성과 의존성을 직시하면서 이를 보듬어 돌보는 게 국가라는 정치적 질서가 해결해야 하는 최우선적인 과제라는 인식을 담고 있다. 인간은 누구든 상처 입기 쉽고 아프고 외로울 때는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인데, 국가의 궁극적 목적은 누구든 그런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보장하는 데 있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대동세상에서는, 혼자의 힘으로는 결코 생존할 수 없는 유아동기의 유약함과 생리적 노화 및 병듦, 그리고 홀아비나 과부가 되며 고아가 되거나 늙어 혼자가 되는 '환과고독(鰥寡孤獨)'이라는 사회적 외로움에 이르기까지, 누구든 인간이라면 겪을 수밖에 없는 삶의 불가피한 상처 또는 고통을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아야 한다. 인간의 취약성이나 타인에 대한 의존성은 결코 어떤 사회적 악이나 병리가 아니다. 오히려 그 사실이 지시하는 돌봄의 필요나 상호적 유대 및 호혜의 당위는 정치가 감당해야 할 중요한 도덕적 과제다. 우리는 이재명 대통령이 강조해 온 '기본 사회'의 이상을 바로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한편 '억강부약', 곧 강자는 억누르고 약자는 힘을 북돋는 건 그와 같은 대동세상을 이루기 위한 실천적 방법론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물론 이것은 이재명 대통령을 '극단적 좌파'로 몰아가기 위해 일부에서 이해하듯이 강자의 자유와 지위를 공격하고 빼앗아 약자에게 나누어주자는 식의 이야기는 아니다. 오늘날의 맥락에서 억강부약은 민주주의의 이상과 더불어 이해되어야 한다. 강자를 억누르자는 건, 무엇보다도 기득권 세력이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 등에서 부적절하고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여 국가 권력의 공공성과 공정성을 훼손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이야기로 이해할 수 있다. 약자들을 북돋우자는 건, 곧 사회적 약자들이 기득권 세력의 노골적이거나 은밀한 '지배'의 시도에 맞서 존엄성과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도록 다양한 보호 장치와 역능화(empowerment)를 위한 수단을 갖도록 하자는 이야기로 해석할 수 있다.
물론 이런 원칙으로부터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들을 도출할 수 있는가는 반드시 분명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에서 대략적으로만 보더라도, 우리 사회에는 실업에 시달리는 청년 계층, 비정규직 노동자들, 청소부나 택배 노동자들 같은 저임금 육체노동자와 여성 노동자, 소상공인 등 구조적으로 사회적 강자들의 지배 욕구에 고통을 받을 수 있는 상태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 많다. 이재명 정부가 억강부약의 원리에 충실하려면 어떻게든 이 약자들의 상황을 개선하고 이들이 놓인 원천적인 구조적 취약성 관계를 혁파할 수 있는 개혁 로드맵 같은 걸 만들어 차근차근 실천해 가야 할 것이다. 반면 기득권 세력은 언론이나 인맥 등의 지원을 받으며 정치권과 정부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많은 법과 정책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만들 수 있다. 그리하여 가령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간접 고용 관계를 만들어 열악한 저임금 노동을 일반화하고 공권력의 비호 속에 공장 폐쇄나 부당 해고를 자행한다. 민주당 정부는 이런 상황을 끊임없이 경계하고 감시하며 기득권 세력의 권력이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지배 관계로 발전할 가능성을 차단하는 데 필요한 '노란 봉투법' 같은 법적 보호 장치들을 만들어 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이상을 실현하는 일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리는 만무하다.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5년은 금방 지나갈 것이다. 이 임기 동안 억강부약을 통한 대동세상의 실현이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해서 비난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 국민들은 이재명 정부가 그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진정성 있는 노력을 다했는지는 엄정하게 평가할 것이다. 민주당 이재명 정부에 대한 시민들의 큰 기대가 저버려지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권연대 주간 웹진 <사람소리>에도 실립니다.글쓴이 장은주 인권연대 칼럼니스트는 영산대학교 성심교양대학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