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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윤 아리셀산재피해가족협의회 공동대표
김태윤 아리셀산재피해가족협의회 공동대표 ⓒ 충북인뉴스

"죽은 자를 추모하고 산자를 위해 투쟁하라!"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1년을 돌아보면서 '산자는 누구를 의미하는 것이고, 죽은 자를 추모하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걸까?'를 생각해 본다.

세월호·이태원·오송·무안제주항공참사,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반복되고 있는 SPC 노동자의 죽음. 태안화력 하청노동자의 죽음.. 일상을 함께 했던 이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현실이 단순히 참사 유가족과 살아남은 자들만의 분노이고 아픔일까? 그랬다. 유가족들도 남의 얘긴 줄만 알았다. 그러나 참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가까이 있었다.

하루 6명 매년 2500여 명의 노동자들이 안전하지 못한 일터와 일상의 행복속에서 죽임을 당하고 있다. 한국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자본의 이윤을 위한 탐욕에 상시 노출되어 있는 수많은 노동자들. 이들 또한 자본과 정권에 의한 잠재적 참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산자는 누구이며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명확해 진다. 왜 억울한 죽임을 당했는지 명백하게 진상을 규명하여야 한다. 사업주를 엄중하게 처벌하여 반복되는 죽음을 막아야 한다. 사회적 구조를 바꾸고 안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한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 연대와 투쟁을 통해서만이 산자의 트라우마는 조금씩 치유 되어갈 것이고, 죽은 자를 진정으로 추모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되었다.

 지난해 6월 24일 경기도 화성시 아리셀 공장에서 폭팔사고가 발생해 23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지난해 6월 24일 경기도 화성시 아리셀 공장에서 폭팔사고가 발생해 23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 충북인뉴스

2024년 6월 24일 자본의 탐욕이 부른 기업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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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셀은 2022년부터 군부대에 리튬밧데리를 납품하면서 품질평가원의 자격 기준을 맞추기 위해 시료를 바꿔치기하고 문서를 조작하여 47억에 이르는 부당한 이익을 취하였으나, 국방부는 법적 책임을 묻는 대신 제때 납품할 것만을 강제하였다. 더군다나 아리셀에서 납품받은 밧데리 폭발사고는 군부대내에서도 3차례 이상 있었던 상황이었다.

납품기일을 맞추기 위해 허가받지 않은 파견업체를 통해 미숙련된 노동자들을 대거 투입하여 하루 5000개(평소 2배)에 달하는 밧데리를 생산하게 하였다. 외부 충격에 민감한 밧데리를 케이스에 넣기 위해 고무 망치로 두들겨 끼워 넣게 하였고, 절단기 칼날이 마모되어 이물질이 들어가거나, 발열이 의심되는 밧데리를 손으로 만져 열을 감지하게 하여 분리하였다가 그마저도 기일이 촉박해지자 완성 밧데리로 양산화하였다.

참사 당일 현장의 CCTV를 보면 출입구 앞쪽에 납품기일을 맞추기 위한 3만5천 개의 밧데리가 적재되어 있었고, 한 곳에 있던 밧데리에서 연기가 나기 시작하자 일반소화기로 진화를 하려는 모습이 보인다. 38초 후 순식간에 연쇄적으로 폭발하면서 1000도가 넘는 화마는 23명의 노동자를 처참히 삼켜버렸다.

리튬밧데리는 외부의 충격으로 분리막이 훼손되거나 전해질 주입 후 발열이 지속될 경우 열폭주로 폭발해 버리는 특성이 있어, 완성된 밧데리는 개별케이스 넣어 소량씩 구분하여 콘크리트로 된 공간에 보관하여야 하고, 폭발의 위험이 있을 경우 리튬용 소화기나 대량의 물로만 진화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23명의 노동자들은 알지 못했다.

폭발사고 발생시 리튬소화기가 없으니 일반소화기로 진화하려 하지 말고 무조건 대피하여야 한다거나, 비상구가 있는지조차 아무도 알려 주지 않았다. 그 비상구라고 하는 것마저도 일부 임직원만이 지문 인식을 하거나 ID카드가 있어야만 열 수 있는 문이라는 사실 또한 아무도 몰랐다.

내가 어느 소속의 노동자인지, 어떠한 위험 물질을 다루는지 모르던 미숙련된 노동자들은 아무런 안전교육이나 대피 훈련 없이 자본의 이윤을 위해 납품기일을 맞추기 위한 소모품에 불과한 존재였던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사법조치 65건, 과태료 82건), 업무상 과실치사상, 불법파견, 불법 건축물 개조, 소방법 위반, 사기 및 업무방해 등 아리셀은 불법의 온상이자 죽음 공장이었던 것이다.

공급망 책임의 무도한 민낯

 지난해 8월 김앤장 변호사 8명 대동하고 영장실질심사를 받으러 수원남부경찰서에 들어가는 박순관 아리셀 대표.
지난해 8월 김앤장 변호사 8명 대동하고 영장실질심사를 받으러 수원남부경찰서에 들어가는 박순관 아리셀 대표. ⓒ 충북인뉴스

아리셀은 에스코넥의 자회사다. 엄밀히 말하자면 밧데리 사업부서로 기능하였다. 2000억이상 자본 잠식 상태임에도 에스코넥은 아리셀에 대해 지속적으로 자본을 집행 · 관리하였고, 지분의 96%를 가지고 있었다. 아리셀과 에스코넥의 대표이사는 박순관이고 아리셀은 그의 아들인 박중언이 본부장이다.

에스코넥 압수수사 결과, 이미 2017년~18년에 시료바꿔치기와 성적을 조작하고 문서를 위조하여, 국방부를 상대로 82억원 상당의 부당한 이익을 취하였다는 점과 아리셀에 직접 해당 업무를 지시한 정황이 밝혀졌다. 이 모든 사실들이 에스코넥이 진짜 사장임을 가리키고 있다.

이 공급망의 최정점에 삼성이 있다. 에스코넥 대표이사는 삼성시계 출신으로, 핸드폰 부품의8~90%를 삼성에 납품하고 있으며 삼성SDI에 이차전지를 납품하고 있다. 삼성은 '협력사 행동규범'을 통하여 안전보건의무등을 다하지 않았을 경우 거래 중단 등을 강제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지금까지도 책임을 지려하지 않고 있다.

부패한 정부가 부른 사회적 참사

시료를 바꿔치기 하고 성적을 조작하여 부당한 이득을 취하고, 납품받은 군납밧데리에서 3차례의 폭발이 있었음에도 에스코넥과 아리셀에 대해 아무런 법적 책임을 묻지 않는 국방부의 태도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에스코넥의 군납비리와 관련하여 구속영장이 청구된 국방연구원 출신 임원의 극단적 선택이 과연 박순관과 국방부와 무관한 것인지가 의구심만 증폭한다.

고위험사업장으로 선정하고도 사고 예방 대책이나 관리 감독을 하지 않은 노동부는 어떠한가? 아리셀이 자체적으로 평가하여 제출한 위험성평가서, 해당년도만 수정하여 제출한 평가서로 3년 연속 우수사업장으로 선정하여 산재보험료를 감면해 주었다. 아리셀 공장의 크고 작은 4차례의 폭발 특히 참사 2일전인 22일 폭발사고에 특별근로감독을 하였다면 참사는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인력이 부족해서, 사람이 죽지 않아서 특별감독을 할 수 없었다'는게 이장관의 답변이었다. 유가족들의 투쟁을 '죽음의 굿판'이라 비하하고 노동조합과 노동자를 혐오하는 김문수 전 노동부장관은 어떠한가?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투쟁의 성과로 진행된 '불법파견과 인사노무 컨설팅' 결과를 발표하였다. 전국 영세중소사업장 229곳 중 83%가 법을 위반하였고, 38%가 불법파견이다는 결과가 나왔음에도 파견을 합법적으로 해달라는 기업의 입장을 대변하여 파견을 확대하겠다고 하였다. 참사의 원인이 불법적 고용구조에 있었음에도 노동자들의 생명과 안전을 외면하고 참사를 되풀이 하겠다는 노동부 장관의 발표는 참담함을 넘어 분노를 느낀다.

파란리본! 처벌불원을 거부하다

참사가 벌어지면 정부는 제일 먼저 장례절차와 공단에서 지급하는 산재보험 청구에 관하여 말한다. 진상규명과 책임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려 하지 않는다. 하물며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산업안전보건법 등을 집행하는 근로감독관의 직무에 관한 집무규정에 '2명이상 산재사망발생시 즉시 검사에게 구속영장을 신청하여야 한다'라고 규정되어 있음에도 도주와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라는 이유로 구속영장을 신청하지도 않았다.

유가족이 싸우지 않으면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 아파하는 것도 목놓아 우는 것도 유가족들에게는 사치다.

참사 발생 2일 화성시로 유가족들이 모이면서 유가족협의회를 구성을 제안하고 공동으로 대응하기를 결의하였고 이후 지역의 100여 개가 넘는 노동 시민단체들이 대책위를 구성하여 함께 투쟁을 만들어 나갔다. 폭염과 폭우, 추위와 폭설을 뚫고 화성시, 경기도, 노동부, 국방부, 국회, 삼성, 검찰과 법원, 그리고 에스코넥 앞 천막농성까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외치며 거리투쟁을 진행하였다. 그 결과 관리 감독의 책임이 있는 지자체로 부터는 6개월간의 숙식지원(사업주에게 구상권 청구)을 이끌어 냈으며, 추모공원 조성을 위한 조례제정과 부지선정 논의가 현재 진행 중에 있다. 참사 3개월만인 9월에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이후 최초로 대표이사와 본부장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되어 구속수사하게 되었고 이후 검찰에 의해 구속기소되어 현재 재판 중에 있다.

박순관 대표이사는 김앤장의 입을 빌려 '본인은 경영책임자가 아니다. 본부장인 아들이 경영책임자이고 나는 죄가 없다', 박중언본부장은 '안전 보건 의무는 미흡하지만 진행하였다. 22일 폭발사고시 생산한 밧데리는 참사와 인과관계가 없다'는 궁색한 변명만을 내놓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억울한 죽임을 당한 관리 책임자와 연구소장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고 있으며, 군납비리와 관련하여 극단적 선택을 한 에스코넥 임원에 대해서는 '전횡과 비리가 심했다'는 등 모든 책임을 고인에게 떠넘기고 있다.

참사 초 대표이사와 본부장은 폭발 발생 다음 날 언론을 통해 국민들 앞에 사죄한다고 허리를 조아렸다. 그러나 정작 유가족들에게는 죄를 인정하거나 진심어린 사죄를 한 적이 없다. 오히려 협의회와 대책위와의 면담을 거부 한 채 대리인을 앞세워 개별 유가족들에게 접근해 길림성 기준 일실수입 산정, 위자료 5천만 원 지급, 비자에 따른 차등 적용, 단순업무 추방 협박과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처벌불원서에 동의하라는 파렴치함의 끝을 보였다.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 민사소송 전환 이전에 박순관과 박중언에 대한 책임을 엄중히 묻고 민사상의 배보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대재해처벌법상 징벌적 손해배상의 책임이 있는 법인이자 진짜 사장인 에스코넥 앞에 천막을 치기로 결정하였다. 최대주주인 박순관은 구속 직전 에스코넥에 대한 민·형사상의 책임을 피하기 위하여 대표직을 사임한 바 있다. 직무대행인 김치원은 박순관과 더불어 삼성시계 출신이며, 부사장인 강동균은 2대주주인 사내복지기금의 대표로 아리셀 등재이사이기도 하다. 이 둘은 에스코넥 설립 멤버이다.

유가족들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 충북인뉴스

에스코넥 앞에서 3개월여간 천막농성과 추모문화제, 시민 선전전과 집중투쟁을 진행하였으나 책임있는 이들의 사과와 면담은 단 한차례도 없었다. 민사상의 책임을 물을까 두려운 임원들의 차량은 천막을 친 이후 보이지 않았고, 유가족들에게 무대응으로 일관하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한다. 공장의 문은 도발을 유도하게끔 열려 있었고 영업방해와 손배청구를 하기 위한 cctv로 도배되어 있었다. 공단으로 향하는 골목에 위치한 에스코넥은 하루에도 수십대의 대형화물차량이 드나드는 곳으로, 새벽 물류를 나르는 차들의 과속은 공포를 느끼기에 충분하였다.

아무 성과가 없진 않았다. 65세까지의 일실수입 산정기준이 길림성에서 한국기준으로 바뀌였고 위자료도 투쟁을 거듭하면서 매번 일정 안이 사측 대리인들과의 교섭을 통해서 나오긴 했다. 유가족들도 중국으로 가야한다거나 개인적 사정으로, 민사소송으로 갈 경우 지난한 투쟁이 될 수밖에 없음을 알기에 어쩔 수 없이 합의를 하는 가정이 늘어났다.

그럼에도 남아 있는 유가족들은 언제 끝날 지 모르는 지난한 투쟁이지만 끝까지 멈추지 않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 형사재판을 거듭하면서 중대재해참사의 경영책임자임을 부정하고 죄를 인정하지 않는 박순관과 박중언에 대해, 처벌불원서 작성을 요구하고 고인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후안무치하고 무도한 에스코넥과 아리셀에 대해, 이들에게 민·형사상의 책임을 엄중히 묻기 위해, 반복되는 죽음을 막기 위해서.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북인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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