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월 26일 부산시의회 브리핑룸에서 '부산 ‘영화숙·재생원 사건' 관련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 국가 사과 권고 발표가 이루어지자 한 피해생존자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 김보성
"60년 만에 국가의 공식 사과 권고를 받았지만, 억울함을 증명하기 위해선 이렇게 소송을 해야만 하는 실정입니다."
부산지방법원에 소장을 접수한 손석주 영화숙·재생원피해생존자협의회 대표는 11일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안타까움을 표시하며 이렇게 말했다. 사회 정화라는 명목으로 강제수용과 노역, 가혹행위·성폭력 등 불법으로 점철됐던 시설의 기억을 떠올린 그는 "정부와 부산시가 과거사를 인정하고 제대로 배상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과거 부산지역의 부랑인 집단수용시설에 끌려가 고통을 받았던 영화숙·재생원 피해생존자들은 하루 전 부산지법을 찾아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권위주의 시절 벌어진 형제복지원 사건과 마찬가지로 국가의 분명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형제복지원처럼 항소·상고 반복 안 돼"
피고에는 대한민국·부산시, 원고에는 피해생존자 160명과 사망자 11명의 유족 25명 등 185명의 이름이 적혔다. 그 시절 10살 정도에 불과했던 피해자들은 경찰이나 단속반에 강제로 끌려가 광범위한 인권유린을 당했다. 수십 년 만에 대통령 직속 독립기관에 의해 그나마 진상이 드러났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손 대표는 피고들을 향해 수개월이 지나도록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반문했다.
이들은 신속한 소송 마무리를 바라고 있다. 대부분이 고령자인데다 한두 명씩 세상을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소장에 유족의 이름이 적힌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원고를 대리하는 변호사들은 "피해생존자들이 아무런 배상도 받지 못한 채 사망하게 될 수도 있다. 정부가 이런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라고 밝혔다. 형제복지원처럼 법무부의 항소·상고 반복도 크게 우려했다.

▲부산 집단수용시설인 영화숙·재생원 피해생존자협의회 대표 손석주씨가 지난 7월 31일 국회 기자회견 이후 여의도 인근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영화숙·재생원 당시 촬영된 원생들의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 복건우
공익소송단(민변 부산지부) 단장을 맡은 이정민 변호사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권고에도 여전히 그대로다. 결국 소송을 통해 피해를 복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답답함을 대신 전했다. 그러면서 아직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 원고들의 처지도 설명했다. 이 단장의 말을 들어보면, 대부분이 육체적·정신적 고통 속에 일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소송의 전체 청구액은 총 700억 원 규모로 시설 구금 햇수당 8000만 원에 더해 미성년자나 장애 등 다른 가중 요인을 고려했다. 이 변호사는 "소송금액은 기준을 세워 요구했고, 부산 민변이 지원하는 1건과 서울의 해마루 법무법인이 담당하는 1건 등 두 건으로 나뉘어 진행된다"라고 설명했다.
이번 소송을 계기로 수면 밑에 있는 피해자들이 더 드러나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2기 진실화해위의 조사기간이 종료되면서 추가 직권조사 등은 당장 어려워졌다. 최고운 부산반빈곤센터 대표 등은 피해생존자들과 함께한 기자회견에서 "침묵 속에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 대한 진실규명 절차 확대와 별도의 소송 없이 배상받도록 관련법 개정"을 강하게 요구했다.
영화숙·재생원은 1960년~1970년대 군사독재정권 시기 부산 사하구(당시 서구) 장림동에서 부랑인을 대거 수용한 시설이다. 군대식 일상 통제와 구타폭력, 열악한 수용 조건은 기본이었고, 숨진 원생의 시신은 주변 야산에 암매장됐다. 이런 사태는 부산시가 부랑자 선도를 내세워 위탁계약을 체결한 결과였다. 경찰은 위법하게 공권력을 행사했고, 법인은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는 단속반을 가동하며 시설 인원을 늘렸다.
지난 2월 2기 진실화해위는 조사 결과를 공개하면서 "중대한 인권침해가 있었다"라고 발표했다. 진실규명과 동시에 ▲ 국가 공식 사과 ▲ 피해자 트라우마 장기치유 계획 수립 ▲ 시신 암매장 추정 지역 유해 발굴 ▲ 진정 없이도 보상, 재활 서비스 구제책 마련 등을 권고했다. 당시 박선영 진실화해위원장은 "지금이라도 책임지는 것이 국제인권법·인도법이 규정하는 인간 존중이며 정의"라고 언급했다.

▲국가와 부산시를 상대로 한 영화숙·재생원피해생존자협의회 손배소가 진행될 부산지법. ⓒ 김보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