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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아래 '중대재해처벌법') 법안은 19, 20대 국회에서 여러 차례 발의되었지만, 심의조차 하지 못하고 회기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되는 수순을 되풀이했다. 2020년 4월 30일, 무려 38명이나 되는 노동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이천 물류센터 화재 참사가 발생하면서 같은 해 5월 17일 136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를 발족하였다.

매일 6~7명씩 노동자가 일터에서 죽임을 당하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 10만 국민동의청원으로, 추운 날씨에도 국회 앞 농성과 가족을 잃은 산재 유가족의 한 달이 넘는 단식투쟁으로, 2021년 1월 8일에 이르러서야 중대재해처벌법이 만들어졌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제정된 중대재해처벌법은 2022년 1월 27일부터 시행되었고, 2024년 1월 27일부터는 5인 이상 사업장에도 확대 적용되었다. 현재 시행 4년 차를 맞은 중대재해처벌법이 법제정 취지와 목적에 맞게 시행되고 있는지 돌아보고, 향후 과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2022.01.01. 국회 앞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을 요구하는 108배 진행 모습
2022.01.01. 국회 앞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을 요구하는 108배 진행 모습 ⓒ 한노보연

비공개, 늑장 대응으로 일관하는 수사·기소의 처리 절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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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시행부터 2024년 상반기까지 고용노동부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 수사를 한 사건[1]은 717건이었지만 이중 검찰로 송치한 건수 128건을 포함하여 수사가 완료된 사건은 223건으로 사건 처리율은 고작 31.1%밖에 되지 않았다. 검찰 또한 2025년 1월 21일까지 기소한 사건[2]은 74건밖에 되지 않아 사건발생일로부터 기소까지 소요된 기간이 평균 16개월로 확인되었다. 심지어 기소까지 31개월이나 걸린 사건도 있었다.

더욱이 큰 문제는 이러한 과정에서 노동부의 재해조사 보고서와 수사 및 송치, 검찰의 기소 현황은 수사와 재판에 영향을 준다며 유족에게조차 비공개를 원칙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비단 고용노동부와 검찰만의 문제가 아니다. 2025년 1월까지 검찰이 기소 송치한 74건 중 재판부가 1심 이상 선고 판결을 내린 사건은 35건으로 43%였으며, 이중 대법원 확정판결은 단 1건에 불과하였다. 반면 2024년 6월 24일 발생한 아리셀 화재참사는 사건이 발생한 지 3개월 만에 기소가 되었다.

실제로 고용노동부와 검찰이 의지를 갖고 처리하거나 사회적으로 관심이 높은 중대 사건에서는 조사결과도 일부 공개하고 빠른 진행이 가능함을 확인하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대다수 사건이 법 시행 초기보다 늦어지고 있고, 당국이 비공개 원칙을 고수하고 있기에 그에 대한 문제 제기와 해결이 시급하다.

 2024.11.25. 아리셀 화재참사 해결을 요구하는 시민문화제 모습
2024.11.25. 아리셀 화재참사 해결을 요구하는 시민문화제 모습 ⓒ 아리셀 화재참사 대책위

법 취지를 반영하지 못하는 편파적인 판결의 문제점

5월 20일 전주지법 군산지원 형사3단독 (부장판사 지창구)은 군산지역 하수관로 매립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중대재해 사건의 원청업체인 '삼화건설'의 대표자와 현장소장에게 무죄를, 삼화건설 법인에 벌금 400만 원을 선고하였다. 오히려 하청업체 현장소장에게 산업안전보건법 위반과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징역형(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하청 법인에 벌금 500만 원을 선고하였다. 이로써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1심 기준으로 다섯 번째 무죄판결[3]이 나왔다.

검찰에서는 원청에서 지반 붕괴 방지조치 미설치, 굴착 장소 출입금지조치, 작업계획서 미작성 등으로 중대재해가 발생했음을 확인하고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4조3호인 '유해·위험요인 확인·개선 절차 마련 등 의무' 위반으로 기소하였다. 하지만 재판부는 원청이 위험성평가를 실시하였기에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이 아니라고 보았다. 도급인 (원청) 범위도 좁게 해석하여 사고 당시 하청노동자에게 작업을 지휘 감독할 '사업주'는 하청업체이므로 원청의 대표자와 현장소장은 안전조치의무 위반에 대한 책임이 없다고 판결하였다.

이번 판결은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개정 취지,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취지를 무시한 편파적인 판결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문제적인 지점은 올해 1월까지 선고된 사건 35건 중 유죄 선고 비율은 94.3%에 달했으나 이중 실형은 5건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중대재해처벌법상 법정형 하한선인 1년 미만의 판결이 많아 집행유예 선고에 그치는 등 솜방망이 처벌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중대재해처벌법을 무력화시키는 재판부의 편파적인 판결은 오히려 중대재해 예방에 큰 걸림돌로 작동하고 있다.

 2024.08.07. 중대재해없는세상만들기 부산운동본부의 노동청 앞 기자회견 모습
2024.08.07. 중대재해없는세상만들기 부산운동본부의 노동청 앞 기자회견 모습 ⓒ 중없세부산운동본부

하지만 현장은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지난 2024년 7월에 제조업, 서비스업, 건설업, 공공부문 등에서 선정한 5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한 민주노동연구원의 '중대재해 처벌법 효과성 연구' 결과는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이후 현장에서의 긍정적인 변화를 엿볼 수 있다. 경영자들의 안전보건 인식이 크게 달라졌으며, 이로 인하여 안전보건 부서 보강과 권한 강화, 예산 증액, 안전보건 교육 심화, 작업환경 개량, 원하청 간 안전보건관리체계 개선, 노동조합 의견 반영 등의 변화가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노동안전간부(노측 160명) 및 안전보건 담당자(사측 20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마찬가지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이렇듯 중대재해처벌법은 기업들이 사전 예방적 안전보건 관리체계를 구축하고, 이를 실행해 나가도록 하는 데 충분한 견인 효과를 보였다고 평가하였다. 그러나 긍정적인 여러 변화 속에서도 안전보건 관리체계에서 노동조합의 참여, 개입 수준은 여전히 취약한 상태라는 점도 동시에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노동조합의 실질적 참여 확대가 향후 절실한 과제라는 점을 드러낸다.

법 시행 4년 차, 앞으로 나아갈 방향

앞에서 살펴본 문제점 외에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시행 과정을 거치면서 법 취지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개선과 해결이 시급하다. 중대재해 감축과 예방을 위해서도 이는 결코 회피할 수 없는 과제다. 그러니 경영계나 보수 야당이 주로 제기하는 '중대재해처벌법 무용론'이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하다.

다른 한편, 노동자건강권운동이 향후 지향해야 할 목표에 대해서도 강조하고자 한다.

먼저, 노동자의 알 권리 보장 및 실질적인 참여권 확대에 힘써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 효과성 연구'에서도 안전보건 관리체계에서 노동조합의 참여, 개입 수준이 여전히 매우 취약한 상태임을 지적하고 있다. 정부가 줄곧 강조해온 '자율 규제 안전 패러다임'은 노사 모두가 동등한 관계에서 예방적 안전보건체계를 함께 구축하고 실행할 때 가능하고 효과적인 시스템이다. 그렇기에 현장에서 노동조합의 실질적인 참여를 보장하는 법 제도의 정비와 마련이 중요하다. 더불어, 중대재해조사 과정에서 노동조합 및 시민사회단체의 참여 보장 및 재해조사서 공개가 투명하게 이뤄져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중대재해 원인을 함께 파악하고 대책을 모색할 때 노동자·시민이 안전한 일터와 사회를 만들 수 있다.

다음으로, 국가 차원의 위험성 평가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5월 22일 고용노동부는 2023년 노동부의 위험성평가 컨설팅과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컨설팅을 받은 사업장에서 2022년과 2024년 사고사망자 수(유족급여 승인기준)를 비교했을 때 사고사망자 수가 66.7% 감소했다는 결과를 발표하였다. 보다 자세한 검토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이번 조사결과는 60% 이상의 중대재해가 발생하는 (50인 미만) 작은 사업장일수록 현장의 유해위험요인을 발굴, 개선해 나가기 위해 제대로 된 위험성평가가 절실함을 시사한다. 또한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은 중대재해를 포함한 산업재해 감축 및 예방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소규모 사업장을 대상으로 한 종래의 지원방식을 넘어서서 국가 차원의 위험성평가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현장의 유해위험요인 개선을 위한 지원체계를 보다 확대하고 강화해야 한다.

법 취지에 맞는 판결과 처벌로 예방을 견인하자

중대재해 예방효과가 좀체 나타나지 않는다며 중대재해처벌법 무용론을 제기하는 세력에 맞서, 과연 누가 법 시행 취지 및 효과를 왜곡하고 무력화하고 있는지를 제대로 드러내야 한다. 나아가 단위 현장을 넘어 공단과 지역, 사회에서 발생하는 중대재해 현안에서 노동조합과 시민사회가 함께 대응하고, 조사부터 처벌까지 문제제기와 개입을 적극적으로 시도하자. 그래야 노동자·시민의 생명·안전보다 기업 이윤, 국가 경제를 우선시하는 경영계와 정부의 행태에도 제동을 걸 수 있다.

각주
[1]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고용노동부를 통해서 받은 자료 참조
[2] 지난 1월 22일 민주노총에서 개최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3년 평가와 과제 토론회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3년 무엇이 법을 멈추는가?'의 자료집 발표 자료 (중대재해처벌법 수사, 기소, 재판 현황분석)를 참고함.
[3] 2025년 5월 21일 매일노동뉴스 기사 참조
https://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8031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의 노동안전보건 월간지 <일터> 6월호에도 게재됩니다. 이 글의 필자인 이숙견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입니다.


#중대재해처벌법#위험성평가#노동자참여권확대#예방적안전보건체계#솜방망이처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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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숙견 (kilsh) 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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