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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가는 날은 누구나 긴장하거나 초조해진다. 혈압도 가끔 높게 나온다. ⓒ 이혁진
어제는 96세이신 아버지가 1년에 두 번 정기적으로 서울 신촌 인근 대학병원에 가는 날, 아버지는 며칠 전부터 내게 병원 예약 여부를 재차 확인하는 등 긴장하면서 분주하다. 전날 입고 갈 옷도 미리 골라 옷걸이에 걸어두었다. 이를 보고 아버지 병원 가는 날이 다가온 것을 안 적도 있다.
나도 현재 암 치료차 병원을 방문하지만, 아버지처럼 단정하지는 못하다. 대충 가벼운 차림으로 가는 편이다. 아버지는 늙고 추레해도 담당 의사에게 깨끗하게 보이고 싶어 한다. 소위 '노인의 자존심'을 지키려는 것이다.
아버지 보호자로서 나도 아버지만큼 초조하고 마음이 바쁘다. 그간 아버지가 복용하는 여섯 가지 약의 잔여분을 확인하고 아버지를 대신해 의사에게 질문한 사항도 따로 정리해야 한다.
병원 가는 날 나의 역할은 아버지가 병원 진료를 잘 마치도록 돕는 것이다. 고령에 따른 노환을 치료하지만 아버지가 의사를 만나는 자체가 스트레스다. 그래서 아버지의 초조한 기분을 보살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괜찮아'라는 말 한마디가 병원에서 위축된 마음을 일으켜주는 법이다. 투병하면서 작은 위로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아버지를 위해선 웃기는 개그맨이 되기도 한다.
의사를 만나기 두 시간 전에 채혈과 혈압측정도 미리 체크해야 한다. 아버지의 느린 걸음을 감안하면 시간은 두 배가 필요해 집에서 서둘러 출발해야 한다.
병원 오가며 나눈 부자지간 대화들... 어머니도 떠올랐다

▲지팡이를 든 아버지가 경로당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 이혁진
그런데 병원으로 출발하기 전 아버지가 수행할 작업이 하나 있다. 배뇨차 화장실을 다녀와야 한다. 아버지는 하루 20번 정도 소변 보실 정도로 전립선 비대증이 심하신 편이다(80대~90대에선 흔한 질병이고 증상이다).
집에서 병원까지는 한 시간 거리지만, 항상 30~40분이 더 걸린다. 특히 병원 주변의 교통 체증이 심하기 때문이다. 차를 타고 가는 길, 그런데 병원 도착을 얼마 앞두고 아버지가 갑자기 급박뇨(조금의 여유도 없이 참기 어려운 소변)를 호소하셨다. 한시가 급하지만, 주변에서 화장실을 찾는 건 불가능했다.
이를 위해 트렁크에 우유 담는 용기를 소변통 용도로 비치했다. 문제는 앉은 상태에서는 요도가 막히기에 소변통도 무용지물이라는 것. 소변을 보려면 일어서야 해서, 밖으로 나와야 한다.
하는 수 없이 비상등을 켜고 운전하던 차를 길가 한 곳에 세웠다. 차에서 내린 아버지는 엉거주춤한 상태로 소변통을 들고 일을 봤다. 나는 차량문과 함께 아버지를 엄호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이 모습을 보고 뭔 일인가 갸우뚱했을 것이다.
얼마나 급했던지 아버지의 깔끔한 체면은 온데간데없었다. 말 못 할 고민을 해결했다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차량 거울에 비친 아버지는 편안해 보였다.
병원 가는 날 긴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정상혈압도 병원에서 재면 혈압은 오른다. 아버지의 급박뇨도 초조하거나 긴장하면 더 심하다. 나는 무안해하는 아버지에게 용케도 오래 참으셨다며 위로했다.
나이가 들면 비뇨기 문제가 생기는 건 매우 흔한 일이다. 생각해 보면 생전에 어머니도 요실금으로 무척 고생하셨다. 함께 가족 나들이를 할 때면 어머니가 자주 힘들어하셨다. 당시엔 어머니의 괴로운 얼굴만 봐도 화장실을 급히 안내하고 보살폈는데, 돌아보니 그게 내가 참 잘한 일 중 하나란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들면 비뇨기 문제가 생기는 건 흔한 일이다(자료사진). ⓒ timmossholder on Unsplash
의사와 드디어 대면하는 시간, 의사는 암환자인 내가 아버지를 보살피는 것이 대단하다며 덕담부터 건넸다. 이 말에 나는 잠시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는 아버지는 연세에 비해 검사 결과는 양호한 편이라고 말했다.
사실 의사는 아버지의 채혈과 혈압, 얼굴색, 그리고 내가 보고하는 환자의 자세한 상황을 보고 진단과 처방을 내린다. 의사와 내가 나눈 대화는 나중에 아버지에게 따로 말씀드렸다.
병원을 오가면서 차에서 부자지간 많은 대화를 했다. 추억도 소환됐다. 아버지는 30여 년 전 내가 집에서 넘어져 발목이 골절 됐을 때 나를 업고 근처 병원까지 내달렸다는 무용담을 전해줬다.
아버지를 돌보는 것이 힘들다 해도, 휠체어까지 탄 환자를 부축해 데리고 오는 보호자를 보면 내 상황은 그래도 괜찮은 편이란 생각이 든다. 건강한 편인 아버지께서 되레 자식인 나를 도와주는 것 같아 감사할 뿐이다.
새벽 6시부터 움직이기 시작해 오전 진료 후 간단히 점심을 해결했다. 이어 약국에서 6개월간 먹을 약을 수령하고 귀가하니 4시를 가리켰다. 아버지는 수고했다며 나를 격려했다.
이날 나는 이른 저녁을 먹고 피곤하고 긴장이 풀린 탓인지 잠으로 빠져들었다. 깨어보니 다음날 새벽이었다. 아버지는 벌써 기상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전날 아버지의 길가 소변 장면이 문득 생각나 혼자 웃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