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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의 악사들

민족문제연구소와 식민지역사박물관은 "당신의 민주주의를 기증받습니다"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시위용품을 기증받기 시작한 지 3개월이 넘어가던 즈음, 박물관에 플루트 기증 신청이 들어왔다. 악기를 기증하겠다는 신청은 처음이었고 기증 사연은 매우 강렬했다.

"폭력이 아닌 음악으로, 예술로 이 세상을 이기고 싶었습니다."
_ 플루트 기증자 기증사연 중

세월호 리본과 이태원 참사 열쇠고리, 여성의 날 리본 등으로 알록달록 꾸며진 플루트를 기증하겠다고 찾아온 이는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문화제에 참석하면서 악기를 들고 다니는 사람을 보게 되었고, 자신도 그때 플루트를 사게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플루트 전시 모습
플루트 전시 모습 ⓒ 식민지역사박물관

"저는 문예창작과를 다니고 있는 대학생이고, 1월 중순쯤부터 악기를 들고 여러 시위 현장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 사실 악기도 기증받으실까, 많이 고민했는데 단두대 같은 다양한 시위용품들도 기증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친구가 '얘는 새로운 시대를 같이 노래한 악기라고 충분히 가치가 있다'라고 말해줘서 기증을 결심하게 됐습니다."_플루트 기증자 인터뷰 중

플루트 기증자는 다양한 시위 현장에서 악기를 연주하면서 합주자들과의 커뮤니티가 형성되었다고 했다. 그는 합주자들과 함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다이인(Die-in) 행동, 세종호텔 문화제, 한화 오션 본사 앞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문화제 등에서 공연을 하면서 이전과 달라졌다고 했다.

"이전에는 정치나 역사에 관심이 많았지만,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12월 3일 이후 상식선의 파괴가 일어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잖아요. 그래서 여태 너무 무관심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이제는 사람들의 삶에 좀 더 관심을 가지려고 해요."_플루트 기증자 인터뷰 중

전시 개막식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하자 합주를 같이하는 이들에게 부탁하여 공연을 준비하겠다 했다. 어떻게 소개하면 좋겠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광장의 악사들'이라 불러주세요."

바닥에서 탄생한 저항의 목소리

개막식에 온 참가자들이 박물관 입구에 전시된 작품을 보면서 여기서 실물을 보게 될 줄 몰랐다고 했다. 온라인상에서 유명했던 이 작품은 이화여대 서양화 전공 학생들이 만든<윤석열 콜라주(2024. 캔버스에 콜라주, 145.5✕97.0cm.)>이다.

 <윤석열 콜라주>전시 모습
<윤석열 콜라주>전시 모습 ⓒ 식민지역사박물관

"콜라주에 사용된 종이는 여의도 집회에서 사용된 피켓과 신문을 재활용한 것입니다. 사실 처음부터 피켓을 모을 목적으로 집회에 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12월 7일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되는 것을 지켜보며, 이 상황에 대해 목소리를 낼 필요를 느꼈습니다.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시대 흐름을 반영하고 싶어 떨어진 종이들을 줍기 시작했고, 그 길로 집회 현장의 종이들을 주워 만든 작품이 이 콜라주입니다."_ <윤석열 콜라주> 기증 사연 중

그들은 작품 소개에서 재료로 쓰인 모든 종이는 '시민들이 시위 현장에서 내비친 결의의 흔적이자 저항의 목소리'라고 소개한다. 그렇게 바닥에서 피어난 저항의 목소리들이 모여 하나의 외침이 되었다.

"우리는 모두 예술가로서 주로 개인적인 작업을 해 왔지만, 이번만큼은 시대의 파도 안에 있는 국민으로서 작업에 참여했습니다. 개인이 아닌 사회와 역사 속에 있는 창작자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민주주의 수호가 바탕이 될 때, 그 아래 있는 개인의 삶도 더 자유롭게 조명할 수 있다'라는 생각에서 목소리를 내었습니다."_ <윤석열 콜라주> 기증 사연 중

캔버스에 덧댄 것은 침묵하지 않겠다는 그들의 결의이자 저항의 목소리에 대한 화답이었다. 그들이 그린 것은 윤석열이 아니라 그를 만들어낸 권력과 부패에 대한 시민들의 경고이다.

광장의 흔적으로 눌러쓴 '남태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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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남태령' 깃발이 전시장 입구 천장에 부적처럼 걸려 있다. 천을 염색하고 먹으로 직접 쓴 깃발은 마치 동학농민운동 당시 깃발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기도 한다.

깃발을 제작한 리우 작가는 내란이 터지기 전 김후주(트위터명 '향연')님과 과수원 농사를 같이 지으러 내려갈 준비를 했었다. 더 이상 그림 그리는 일이 쉽지 않음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12.3 계엄 이후 만약 계엄이 성공했다면 자신을 비롯한 작가들이 예전과 달리 제약이 있는 상태에서 작업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때, 갑자기 그림이 너무 그리고 싶어졌다고 했다. 자신의 방식으로 광장의 사람들을 기록하고 싶었다고 했다.

"처음 시작은 깃발이었어요. 일단 (2024년 12월 21일에) 몸이 좋지 않아 남태령을 못 갔고, 그 커다란 어떤 시류에 합류하지도 못했다는 약간의 부채감도 있었어요. 가까운 사람(향연)이 남태령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는데 저도 합류하고 싶은 그런 마음도 있었고, 뭐라도 해 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향연이) 깃발 얘기를 하길래 '아, 그럼 내가 깃발을 만들어 줘야겠다'라는 생각으로 만든 거예요."_리우 작가 인터뷰 중

이후 그는 스티커, 책갈피, 부적 등을 만들어서 광장에 함께한 이들에게 전해주었다. 그가 만든 부적에는 수복강녕(壽福康寧)이라고 적혀있다. 당시 윤석열 즉각 퇴진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진행하던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정영이 회장이 병원에 실려 가는 모습을 보고 만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광장의 순간도 그림으로 남겼다.

"(이 그림은) 전봉준투쟁단이 다시 트랙터를 이끌고 서울로 재진격했던 3월에 총장님(전국 여성농민회총연합 신지연 사무총장)을 그린 것인데, 아직 미완성이에요. 남태령에서 트랙터 때문에 경찰들과 실랑이하고 있었어요. 저는 폭력적인 상황을 보게 되면 몸이 얼어서 어쩔 줄 모르는데, 총장님이 도로로 팍 뛰어드시는데 경찰들이 밀치면서 다칠 뻔하고 그랬거든요. 저도 그때 같이 뛰어들어서 중앙분리대 붙잡고 눕고 그러다 끌려 나가고 그런 추억이 있는 (그림입니다)."_리우 작가 인터뷰 중

 리우작가의 작품들. 맨 오른쪽이 <나의 투쟁 동지 신지연 총장님>
리우작가의 작품들. 맨 오른쪽이 <나의 투쟁 동지 신지연 총장님> ⓒ 식민지역사박물관

그는 당시 남태령에서 분필로 그림을 그리던 이들도 기록했다. 살면서 누군가와 싸워본 적도 없을 것 같은 웃음을 지으며 그날 경찰과 대치한 일에 관해 이야기해 주었다. 그는 여전히 폭력은 무섭지만, 자신의 손으로 광장의 흔적을 남긴 것에 대해 개막식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품위와 사람다움을 잃지 않는 투쟁, 그것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아닐까요."

흩어진 말들이 모여 만든 빛

 '광장말빛' 전시 모습. 이지완님이 보내주신 파일을 3권으로 나눠 제작하였다.
'광장말빛' 전시 모습. 이지완님이 보내주신 파일을 3권으로 나눠 제작하였다. ⓒ 식민지역사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에는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책상과 의자가 있다. 이 책상 위에 조그맣게 빛나고 있는 책들이 있는데, 바로 이지완님이 기증해주신 '광장말빛'이다. 이 책은 이지완님이 1월 3일 한강진 철야 투쟁부터 기록을 시작하면서 3개월 동안 광장의 목소리를 모은 기록집이다.

"(한강진에서)그 전에 어디서도 듣지 못했던 생생한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건 꼭 기록으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 정치인이나 학자들의 기록은 공적 기록으로 많이 남아있지만, 실제 민중들의 삶이 어떠했는지 사료로 잘 남아있지 않은 경우가 많더라고요. … 훗날 이 비상계엄이라는 초유의 사태 이후에 시민들이 어떤 식으로 저항해 왔는지 분명히 연구할 텐데, 후대의 연구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록을 남기게 되었습니다."_이지완님 인터뷰 중

그는 흩어져 사라질지도 모르는 목소리들을 모았다. AI를 이용하지 않고 현장에 직접 참여하면서 목소리를 녹취하고 그것을 다시 푸는 과정을 거쳤다. 광장에 참여하는 시민으로서 누군가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몸으로 학습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발언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그가 발견한 것은 '연결고리'였다.

"아직 기록을 시작하지 않았던 때지만, 일단 여의도부터 쭉 흐름을 보면 당시에는 12월 비상계엄 그 자체에 대한 충격과 공포가 광장에서 지배적이었던 것 같아요. 근데 12월 21일 남태령을 계기로 소수자들의 정체성 문제 등이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되면서 지금까지 억압됐던 자기 서사들이 분출되었고, 특히 한강진에서 정점을 찍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다음 분출된 에너지들이 이제 소규모 투쟁 사업장들로 이어졌다고 생각해요. 모든 억압이 연결돼 있다고 생각하게 된 사람들이 각성하고, 그러면서 투쟁하고 있던 노동자들이나 소수자들로부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과정이 있었다고 생각하거든요."_이지완님 인터뷰 중

다수의 정치가 만연한 사회에서 소수자의 목소리가 광장을 비롯하여 연대 현장을 채우는 모습은 그에게도 변화로 다가왔다. 계속 소리치고 있었지만, 모두가 듣지 못했을 뿐인 소수자들의 외침이 파도가 되어 넘쳐흘렀을 때 광장은 모두에게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윤석열 퇴진) 광장에서 소수자들을 중심으로 통합이 이루어졌다고 보여져요. 소수자들을 중심으로 통합이 이루어지다 보니까 혐오와 차별의 목소리는 오히려 뒤로 밀려나는 모습들이 보여지더라고요. 그걸 가장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 평등 수칙이라는 광장의 약속이었던 것 같고요. 그래서 저는 광장이 보여준 가능성이 좀 더 우리 사회에 널리 확산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_이지완님 인터뷰 중

12.3 계엄 이후 광장에는 수많은 질문이 쏟아졌다.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일상은 안전한가, 평등은 무엇인가 등 우리 사회가 그동안 외면하거나 자주 말하지 않았던 질문들이 쏟아졌고 여전히 대답은 진행형이다. 그리고 쏟아지는 질문에 예술로 답하던 이들의 공통분모는 이들에게는 여전히 공동체를 향한 헌신과 타인에 대한 존중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작지만 큰 목소리를 내는 플루트, 바닥에 있던 종이들이 만들어낸 콜라주, 함께 한 동지들의 모습을 따뜻한 시선으로 포착한 채색화, 산개하던 목소리를 모아낸 광장말빛은 모두 이기심이 아닌 이타심에서 비롯된 사랑의 한 형태였다. 그들은 혁명을 표현하고 창조하는 예술을 했다.

누군가는 예술이 한 사회가 얼마나 발전했는지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면, 혁명을 표현한 사람들에게 예술은 사랑으로 사회를 투영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소개한 작품 외에도 전시장에는 아마스 님의 분필 그림, 성명서에서 영감을 얻어 창작한 <우리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무참히 짓밟히는 광경을 목도하였다>, <더불어 숲이 된 우리는 그 누구보다 강합니다> 등 더 많은 작품이 있다. 꼭 한 번 식민지역사박물관에 들려서 시민들이 만든 작품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보고 가시면 좋겠다.

*리우 작가와 이지완님의 인터뷰 영상은 온라인 전시를 통해 6월 13일에 공개할 예정입니다. 많은 시청 바랍니다.

긴급전시행동 민주주의와 깃발
이 글에 소개된 깃발과 기증자 사연은 식민지역사박물관 1층 기획 전시실과 온라인 전시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전시 안내]
- 기간 : 5월 16일 ~ 8월 17일 (매주 월요일 휴무)
- 장소 : 식민지역사박물관 (서울시 용산구 청파로47다길 27)
- 특별 해설 : 6월 12일 ~ 7월 26일 / 매주 목, 금, 토 오후 2시
해설 신청 : https://forms.gle/uoZx6UZwk6SUMP7i8
- 문의 : museumoch@gmail.com

[온라인 전시]
https://democracyflag.oopy.io/

#식민지역사박물관#긴급전시행동#민주주의와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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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이랑 (raley) 내방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 박이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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