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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석 총리 후보자가 기자 간담회에서 기자의 질문을 듣고 웃고 있다
김민석 총리 후보자가 기자 간담회에서 기자의 질문을 듣고 웃고 있다 ⓒ 유튜브 갈무리

"야권과 온라인상에서 후보자님한테 1985년 미국 문화원 점거 사건과 관련해 '미국 입국이 불가능하다, 반미주의자'라는 소문이 많이 돌고 있는 상황이다."

10일 김민석 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기자가 김 후보에게 한 질문입니다.

김 후보자는 질문을 듣고는 웃으면서 "누가 진짜로 이런 질문을 했다면 조금은 저에 대해 조사를 하셨으면 좋았겠다"라는 말로 답변을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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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후보자는 "제가 동년배 중에서 여행 자유화 이후 비교적 해외 경험을 빨리 한 축에 속한다"면서 "미국에서 다양한 공부를 했고, 공교롭게도 전임 총리와 같은 학교(미국 하버드대)도 다녔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미국 헌법에 관심이 있어서 미국 변호사 자격증도 받았다"고 덧붙였습니다.

김 후보자는 "저는 미국의 가장 훌륭한 수출품이 헌법이라고 부르는 사람"이라며 "미국 헌법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미국 헌법의 형사 소송 절차에도 관심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아울러 "우리 사회가 앞으로 가야 할 방향 중에 이런 미국의 헌법 정신이라든가 형사 소송 절차의 구체적인 내용들은 상당히 참고할 바가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밝혔습니다.

김민석 "미 문화원 점거 농성은 광주민주화운동 알린 사건"

 대한뉴스가 보도한 미국 문화원 점거 사건
대한뉴스가 보도한 미국 문화원 점거 사건 ⓒ 유튜브 갈무리

김민석 총리 후보자는 "1985년에 있었던 서울 미 문화원 사건은 매우 중요한 사건"이라며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 이후에 사실상 최초로 광주 문제를 세계에 알렸다"고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그는 "(미문화원 점거는) 광주 문제를 세계에 알리기 위한 효율적인 방법이었다"면서 "당시 전두환 노태우에 의한 한국군의 군사 이동을 허용했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했던 사건이었다"고 강조했습니다.

김 후보자는 "미국에 대한 찬반을 떠나서 우리의 동맹국가이자 우방이자 민주주의 국가로서 미국이 어떠한 태도를 가지고 있는 가를 물은 일이었다"며 "더 근본적으로 광주 민주화 운동을 세계에 알리는 데 굉장한 의미가 있었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그 일을 통한 한국과 미국의 각성이 이번 빛의 혁명 과정에서 미국 정부가 일관되게 한국의 국민과 민주주의를 지지하고 군사반란 세력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았던 그러한 역사적 경험을 축적한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습니다.

1985년 5월 23일 서울지역 5개 대학생 73명은 미국 문화원 2층 도서관을 점거한 후 유리창에 "광주 사태 책임지고 미국은 공개 사과하라"는 대자보를 붙였고, '광주학살원흉처단 투쟁위원회' 명의로 "우리는 왜 미문화원에 들어가야만 했는가"라는 유인물도 배포했습니다.

미문화원을 점거한 학생들은 농성 나흘 뒤 스스로 나와 경찰에 연행됐고 25명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됐습니다. 당시 서울대총학생회장이자 전학련 의장이었던 김민석 후보자는 이 사건을 배후 조종한 혐의로 징역 5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1988년 사면 조치됐습니다.

김민석 후보자는 미 문화원 점거 사건 당시 직접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미국도 입국을 제재하지 않았고 김 후보자는 하버드와 로스쿨을 다니고 미국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김민석 총리 후보자가에 대한 미국 입국이 불허됐다는 주장은 허위인 셈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독립언론 '아이엠피터뉴스'에도 실립니다.


#김민석#미문화원점거#기자#반미주의자#가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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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언론 '아이엠피터뉴스'를 운영한다. 제주에 거주하며 육지를 오가며 취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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