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 인간의 길이 아니라, 스스로의 길을 따라 흐른다. 한뼘 더 낮은 곳으로."
4대강 사업으로 흐름을 멈춘 금강을 따라가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진실을 실감하게 된다. 세종보 천막농성 1년의 기록을 담은 다큐멘터리 <강은 길을 잃지 않는다>는 바로 그 진실에서부터 시작했다.
지난 5월 30일 세종에 이어, 9일 대전에서 다큐 <강은 길을 잃지 않는다> 공동체 상영회가 진행됐다.
2007년 '대운하'에서부터 시작된 4대강 사업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더욱 충격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다큐는 2012년 완공 이후 6년간의 담수와 7년간의 개방을 통해 인공 담수 저수지가 된 강과 흐르는 강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준다. 그리고 다시 흐르기 시작한 구간이 회복되면서, 흰수마자, 미호종개 흰목물떼새 등 생명의 시각에서 달라진 강을 보여준다.
50여 분의 짧지 않은 영상은 강을 따라 살아가는 이들의 삶과 힘이 부족한 생명들의 이야기, 대치 되는 정치를 돌아보게 만든다. 그리고 강은 다시 묻는다. "이번에는 정치가 강의 편에 설 수 있는가." 김병기 감독은 끈질기게 4대강을 기록해 온 인물이다. 그는 농성장을 지킨 3명의 활동가들을 기록하면서 흘러야 강이 되는 것을 확신했다고 소회를 말했다. 그동안 써왔던 기사와 영상들이 담겨있는 유튜브 채널 <김병기의 환경새뜸>도 홍보했다.
세종보 아래, 강은 질식하고 있었다
금강은 스스로 흐르며 수많은 생명을 품은 강이었다. 그러나 4대강 사업 이후, 강은 더 이상 강이 아니었다. 세종보를 포함해 금강 본류에 설치된 3개의 흐름을 막고, 물을 가두며 강을 거대한 저수지로 망가트렸다.
흐르지 않는 강은 썩기 시작했고, 그 속에 살던 60만 마리의 물고기들은 떼죽음을 맞았다. 물속엔 남조류가 창궐했고, 강바닥엔 썩은 유기물이 가득 쌓였 붉은깔따구와 실지렁이가 득실했다. 금강에서 생태계 전체가 붕괴되었다.
임도훈 활동가는 "4대강 사업으로 대규모 녹조가 창궐한 것을 직시해야 한다. 인체에 유해한 녹조가 있는 강은 건강함을 잃어버린 죽은 강"이라고 일갈했다. 이어 "WHO 기준인 녹조 독소 24ppb를 초과해 1600ppb가 검출되는 현장에서 수상레져를 즐기는 모습은 그야말로 참혹한 현장"이라고 경고하며, "안전한 강으로 다시 가기 위해 보 해체는 선결조건"이라고 강조했다.
물꼬가 트이자, 강은 스스로 길을 찾기 시작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2017년 환경부는 4대강 재자연화 계획의 일환으로 세종보, 공주보, 백제보 등의 수문을 개방하기 시작했다. 전면 철거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일부 보에서 수문이 열리자 강은 빠르게 반응했다. 썩은 물은 흘러가고, 강바닥엔 다시 모래톱이 드러났으며, 일부 수생 식물과 물고기가 돌아왔다.
온전히 개방된 공주보와 세종보 일대에서는 멸종위기종인 생명들이 지속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펄이 가득했던 강에 모래와 자갈이 돌아오면서 수달의 배설물과 발자국은 이제 세종보의 농성장과 금강에서 너무나 쉽게 볼 수 있다. 이 작은 변화는 강이 흐를 수 있게만 만들어도 강은 스스로 길을 찾는다는 것을 증명한 사건이었다.

▲상영회가 끝나고 감독과 춸연자인 활동가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보철거시민행동
다시 흐르기 위한 조건, 정치의 결단
문재인 정부는 세종보와 금강의 보 철거를 결정했지만, 임기 말까지 실제로 철거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후 윤석열 정부는 보 철거를 전면 백지화했다. 보 수문을 다시 닫기 위한 준비들이 시작됐고, 강은 또다시 흐름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흐르던 강은 멈추게 할 수 없다며 펼쳐진 농성장은 벌써 1년을 훌쩍 넘었다.
사회를 맡은 박은영 시민의 질문은 분명했다.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 정권은 과연 강을 다시 흐르게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기대와 의심이 있다며, 우리는 기대만 하는 것이 아니라 경계를 하며 농성장을 지켜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기후 위기와 생태 회복의 상징인 세종보 철거를 실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길을 잃지 않는 강'이 우리에게 남긴 것
두 도시에서 열린 상영회는 단지 다큐 상영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의 질문과 기억, 분노와 희망이 교차한 자리였다. 관객들은 그 안에서 자신들의 삶과 무기력했던 정치, 그리고 잊혀진 자연의 언어를 다시 발견했다.
다큐의 마지막 장면에서, 다시 알을 품는 멸종위기종 흰목물떼새가 1년간 지켜냈던 농성장의 의미를 증명해 주었다. "정치가 머뭇거리는 사이, 아니 후퇴한 사이에도 강은 여전히 스스로 길을 찾고 있다. 이제 당신은 그 길을 막을 것인가, 아니면 함께 흐를 것인가."
<강은 길을 잃지 않는다>는 단지 금강의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오늘날 한국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를 묻는 다큐멘터리다. 그리고 그 질문은 지금,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에게로 향하고 있다. 강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우리는 결단해야 한다.
▲대전공동체 상영회를 마치고
참가자들과 구호를 외치고 있다. 보철거시민행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