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일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일련의 이민 단속 이후 3일간의 충돌이 이어진 후인 9일 경찰이 저녁 시위대와 교전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시 지도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주 방위군을 투입한 이후, 로스앤젤레스의 긴장감은 여전히 고조되고 있다. ⓒ Getty Images/AFP/연합뉴스
지난 6월 6일(미국 현지 시간), 이민세관단속국(ICE, U.S. Immigration and Customs Enforcement)과 연방수사국(FBI)은 중무장한 채 LA다운타운의 여러 곳에서 '불법 체류자' 체포를 위한 대규모 작전을 벌였고,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4일째 계속되고 있다.
이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 그 배경과 전개과정을 살펴보고, 앞으로 일어날 일을 전망을 해본다.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혼선
트럼프 대통령이 한 텀을 띄고 다시 대통령에 당선된 요인을 두 가지만 뽑으라면, 하나는 대기업과 고소득층이 지원한 선거자금이고, 다른 하나는 저소득 백인의 표이다. 대기업과 부자들은 트럼프의 감세 정책으로 더 많은 부를 축적할 기회를 기대하고 주머니를 열었다. 트럼프 1기와는 다르게 미국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타인종의 표가 적지 않게 포함되었지만, 저소득 백인이 트럼프에게 표를 몰아 준 데에는 그들의 어려운 경제 현실이 반영되어 있다.
다만, 이들은 근본적인 원인을 찾고 국가에 해결책을 요구하는 수고를 하는 대신, 'Great America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이라는 트럼프의 깃발에 무더기로 몰려다니는 선택을 했다. "너희가 못사는 것은 이민자 때문"이라는 손가락질이 다른 어떤 설명보다 쉽고 확연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통계와 여러 연구를 보면,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저소득 백인의 삶이 나아진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이전과 똑같은 방법을 써서 표를 움직였고, 여전히 그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불평등이 극도로 심화됨에도 불구하고 저소득층 백인이 민주당에 등을 돌리고 트럼프에 열광하는 미국의 현실은 지난 40여 년 지속되어온 신자유주의 심화 과정의 결과이며, 이 흐름을 잘 읽은 트럼프의 정치력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025년 다시 집권한 후 관세정책을 통해 미국 경제를 보호하고, '불법 체류자'들을 강력하게 단속하여 미국 노동자를 보호하고 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해왔다. 그런데 이게 아니러니하게도 내부 분열을 일으켰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은 미국 기업에 반드시 득이 되는 정책은 아니다. 자유무역으로 막대한 이윤을 챙겨온 자본에게 이 정책은 양날의 칼과 같다. 미국 국내 산업이 보호되는만큼 외국의 장벽도 높아지는 것이니 전 세계 시장에서 이윤창출이 점차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부 분열이 일어나는 더 큰 이유는 트럼프의 '오락가락'에 있다. 일관성이 없는 정책과 끊임없는 말 바꾸기로 인해,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는 연방 정부의 정책이 도대체 어디로 갈지를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6월 7일 기사에서 트럼프의 예측 불가능한 관세 정책이 기업들에게 장기 계획을 세우기 어렵게 만들고 있고, 다른 불안정 요소들(금융시장 불확실성, 주택시장 침체, 채무 연체율 증가 등)과 함께 미국 경제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반이민 정책
트럼프는 선거 기간 내내 이민자들을 공격했고, 저소득층 백인들은 이에 환호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동안 서명한 147개의 행정명령 중에는 백악관에 들어서자마자 (1월 20일) 발동한 'Protecting the American People Against Invasion(침략으로부터 미국인 보호)'이 있다. 제목에서 보다시피 이민자를 '침입자'로 규정하면서, '불법 체류자'를 신속하게 체포하고 추방하는 행정명령이다. 이 행정명령은 이민을 국가 안보 위협으로 규정하고 강력한 연방 주도 단속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핵심이다보니, 권한 남용·인권 침해·연방-주권 갈등이라는 중요한 법적·정치적 이슈를 동반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4월 말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100일 만에 추방한 '불법 체류자' 수가, 바이든 정부가 2024 회계년도 중 추방한 수보다 많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그러나 이 발표는 거짓으로 드러났다. 15만여 명을 체포했고, 13만 5000여 명을 추방했다고 발표했지만 실제는 그 반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팩트첵킹을 한 언론보도를 통해 일반인들이 알게 된 사실은, 바이든 정부 하에서도 매년 27만여 명이 체포되고 추방되었다는 점이다.
'불법 체류자'에 대한 단속이 민주당/공화당 정부를 가리지 않고 계속 되어왔는데, 트럼프의 말이 워낙 거칠다보니 선거 내내 떠들었던 '미국 지키기'가 트럼프만의 정책으로 포장되어왔음이 드러난 셈이다. 그래서 트럼프는 뭔가 보여주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LA에서의 '불법 체류자' 단속과 시위 양상

▲6월 9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이민 단속에 대한 항의 시위가 벌어지는 동안 시위대가 연방 건물을 보호하는 캘리포니아 주방위군과 대치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캘리포니아주로부터 추가 지원을 요청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며칠 동안 로스앤젤레스 지역에서 진행 중인 이민 단속에 대한 대규모 시위 이후 주방위군 2000명을 배치했다. ⓒ EPA/연합뉴스
지난 6일 이민세관단속국(ICE, U.S. Immigration and Customs Enforcement)과 연방수사국(FBI)은 LA다운타운의 여러 곳에서 '불법 체류자' 체포를 위한 작전을 펼쳤다. LA 다운타운의 패션디스트릭트는 의류업체와 봉제공장이 밀집한 지역이다. 의류 제조공장이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지역 중 하나이며, 한인 운영자가 많다. 국외의 공장과 경쟁을 하려니 봉제공장에는 남미 출신의 저임금 노동자들이 많을 수밖에 없고, 그러다보니 늘 ICE의 타겟이 된다.
이번 체포 작전이 펼쳐진 또 다른 곳은 LA 다운타운 서쪽에 있는 홈디포(Home Depot)이다. 홈디포는 각종 건축자재·공구·가전·가정용품 등을 판매하는 거대한 매장이다. 주택 건축이나 수리를 하려는 사람들은 이 매장에서 물품을 구입하고, 일손이 필요할 경우 매장 앞에 있는 일용노동자를 즉석에서 섭외한다. 이 일용노동자들은 대부분 남미 출신의 저임금 노동자들이다.
이 작전에는 테러진압에 사용되는 장갑 차량이 등장했으며 이날 44명이 체포되었다. 이 체포 작전에 대해 주 지사와 LA 시장은 물론 여러 시민단체에서 비난의 목소리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7일 ICE는 파라마운트 시(Paramount)에 있는 홈디포에서 다시 체포작전을 벌였다. 파라마운트 시는 LA 다운타운에서 남쪽에 위치한 도시로서 LA의 대표적인 남미계 거주지이다. 여러 차례 흑인 '폭동'의 중심지였던 캄톤 시(Compton)와 이웃하고 있다. 두 도시 모두 대부분 저소득층이 사는 지역이다.
파라마운트 시 홈디포에서의 체포작전은 LA 다운타운에서의 작전과는 다른 양상으로 진행되었다. 이민당국의 요원들이 '불법 체류자'로 '추정'되는 일용노동자를 체포하는 것을 지역 주민들이 그냥 두고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군집한 수백 명의 시위대와 이민당국 요원들이 충돌했고, 진압복을 입은 경찰이 강경 진압에 나서면서 시위도 격화되었다. 경찰은 최루탄, 고무탄, 섬광탄 등을 사용했다.
이 긴장된 상황에 트럼프가 불을 붙이고 기름을 부었다. 캘리포니아 주지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주 방위군(National Guard)을 시위현장에 투입했고, 9일에는 해병대 700명과 주 방위군 2000명을 추가 투입했다. 주 방위군은 평시에는 주 정부의 통제를 받다가 비상시에 연방 정부의 통제 하에 해외 파병이나 국내 질서 유지 임무를 수행하는 군 조직이다. 주 지사의 동의 없이 주 방위군이 투입된 것은 60년 만의 일이다. 캘리포니아 주는 트럼프의 이 명령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다.
6일 이후 대규모의 시위가 벌어지고 있지만, 낮의 시위는 대체로 질서있고 평화롭게 진행되고 있다. 다만 밤의 시위는 고속도로 점거와 차량 소각 등 폭력성을 띠고 있다. 아직 2020년 BLM(Black Lives Matter) 때와 같은 대량 약탈은 보고되지 않고 있다.
왜 LA인가?
LA 카운티와 시에 거주하는 남미계의 인구는 이 지역 전체 인구의 거의 반에 달한다. 원래 멕시코 땅이었다가 미국 땅이 되었으니 남미계 인구가 많은 지역인 데다가 멕시코에서 가까우니 남미계의 이민자 유입이 계속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불법 체류자'도 많다. ICE가 LA에서 대대적인 단속을 벌이는 것이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는 현상의 일부만 설명한 것이다. 왜냐하면 캘리포니아 주와 LA시는 트럼프의 반이민정책에 반기를 들고 있는 대표적인 곳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이번 사건을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 주는 2017년 캘리포니아의 보호자 법안(Senate Bill No.54, California Values Act)을 제정했다. 주 정부와 지방 정부가 ICE의 집행에 직접 관여하지 않음으로써 이민자와 지역사회 간의 신뢰 유지를 하겠다는 목표를 담았다. 이 법에 따라 캘리포니아 주 정부와 지방 정부는 ICE가 행하는 신분 조사, 이민 혐의자 추적 체포에 장비, 데이타, 자원을 제공하는 것을 금지했다. 또한 공공기관(학교, 병원, 법원, 도서관 등)을 '안전지대(safe place)'로 지정하여 이곳에서의 ICE 활동을 막고 있다. 연방정부(당시 트럼프 1기 행정부)는 즉각 이 법을 중지시키기 위한 재판을 걸었다. LA 시는 2019년 캘리포니아의 보호자 법안에 발맞춰 LA를 '피난도시(sanctuary city)'로 선언하는 조례를 제정했다.
따라서 트럼프에게 캘리포니아와 LA시는 눈엣가시이다. 게다가 주 지사인 개빈 뉴섬(Gavin Newsom)은 유력한 차기 민주당 대통령 후보이다. 트럼프 입장에서는 눈에 확 띄는 이벤트를 벌이기에 LA가 적절한 지역으로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한편, 트럼프는 빈번하게 국가비상사태 권한(National Emergency Power)을 행사하고 있다. 무역 적자를 국경 안보 위협이라 선언하고 이를 근거로 높은 관세를 부과했고, 에너지 공급을 위기라 주장하며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포해 환경 규제 완화, 인프라 확장 조치를 허용했으며 이민·국경 문제 등도 계속 비상사태 선포 대상이라 선언했다. 이번 군대의 투입도 이에 따른 것이다.
트럼프가 국가비상사태 권한을 남발하는 것은 법의 허점(emergency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는 점)을 이용해 의회 권한을 우회하여 권력을 남용하는 것이다. 여러 언론은 트럼프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흔들고 있다고 비판한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
이번 저항운동은 BLM(Black Lives Matter) 운동과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2020년의 BLM 운동은 미 전국으로 확산되어 대규모 저항운동의 성격을 띠었지만, 유의미한 결과물을 만들어내지는 못 했다.
이번에는 조금 다른 양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 노조에서 얼마나 조직적으로 참여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지난 6일 캘리포니아 서비스노조(SEIU) 위원장인 데이비드 웨어터(David Huerta)가 체포되었다가 오늘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다. 시위 현장에 젊은이들의 참여가 높은 것도 눈에 띈다. 트럼프의 중동정책에 반대하는 집회가 계속되면서 조직화되었고, 트럼프와 대학간의 갈등으로 학생들의 불만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름방학을 한 학생들이 대거 이 집회에 참여하는 것으로 보인다. 시위가 지속되면 군대와 부딪치게 될 것이고 시위도 더 폭력성을 띠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국가비상사태 권한을 남발하는 트럼트 탄핵은 이루어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어렵다.
현재 공화당이 연방 하원과 상원을 모두 장악하고 있다. 내년 11월에 중간선거가 열리게 되는데, 하원은 민주당이 다수당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하원은 임기가 2년이라서 매 선거마다 전체 하원(435명)을 새로 선출한다. 그러나 상원은 임기 6년 중 2년 단위로 1/3을 새로 선출한다. 현재 공화당이 53석, 민주당 45석, 무소속 2석으로 공화당이 다수당이다. 이번 선거에서 35석을 교체하게 되는데, 공화당이 장악한 최소 4곳에서 민주당이 이겨야 상원 다수당이 될 수 있다. 가능성은 아직 반반이다. 그러나 민주당이 상하원 모두에서 다수당이 된다 해도 트럼프 탄핵은 어렵다.
미국 대통령 탄핵절차는 두 단계로 진행된다. 하원에서의 탄핵 소추(과반 결정)와 상원에서의 탄핵 심판과 파면(2/3 결정)이다. 하원에서의 탄핵소추는 가능하지만 상원의 탄핵심판에서 대통령을 파면하려면 100명 중 67명이 찬성을 해야 하는데, 공화당 의원이 대거 탄핵에 찬성하지 않는 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트럼프 1기 때 2019년과 2021년 하원에서 탄핵 소추가 통과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상원에서 파면에 실패한 것은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