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옵티칼에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2024년 1월 8일부터 한국옵티칼 구미공장 건물 옥상에 올라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해고자 박정혜(39), 소현숙(42)씨. 사진은 지난 2월 1일 모습. ⓒ 금속노조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박정희, 전두환의 계엄과 군사쿠데타를 겪고 어렵사리 얻은 민주화 이후 생각지도 못한 계엄을 겪었다. 또다시 시민들은 떨쳐 일어났고 불의하고 무도한 윤석열 정권을 탄핵했다.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혹한을 견디면서도 그 자리를 지키며 신속한 탄핵과 사회의 개혁을 외쳐왔다. 광장에서 고공농성장으로, 농민들의 트랙터 시위로 연대가 번져가는 것을 보았다. 꺼지지 않는 열망은 정권 교체 그 이상의 사회적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그리고 모든 국민들의 눈과 귀는 새 정부에게 쏠려 있다.
나는 오랜 시간 거리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독재정부도, 민주정부도 겪어왔다. 보수 정권이 들어서면 노동자, 농민, 억압받는 사람들은 압도적인 국가 폭력 앞에 속수무책 당해왔다. 민주 정권이 들어서도 상황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국책사업이라고, 기업이 살아야 노동자도 산다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이런저런 말들로 전국의 산하는 파헤쳐지고 풀뿌리 민중들의 요구는 무시당한 채 언제나 노동자, 농민, 억압받는 사람들은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함께 싸워온 많은 동지들은 사회를 바꿔보겠노라며 체제 내에 들어갔고 거리에서 국회로, 혹은 정부부처로 들어간 동지들은 다시는 거리로 나서지 않았다. 그러니 거리에서의 투쟁은 그야말로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끼는 모양새가 됐다.
오히려 후퇴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권리

▲삭감한 하청노동자 상여금을 회복하고, 상용직 숙련노동자의 고용을 확대 등을 요구하며 30미터 위 CCTV 철탑에 오른 김형수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거통고지회) 지회장 ⓒ 유지영
50년 전 만났던 투쟁하던 노동자들과 지금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비교했을 때 지금 노동자들의 형편이 더 어려워졌다. 70, 80년대에는 가난했어도 함께 싸워갈 용기가 있었고 더 나은 세상이 올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비정규직이라는 것이 일상이 되면서 자본의 노예가 되고 한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품처럼 취급되기 일쑤다. 어렵게 만들어온 노동자들의 권리는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 고용이 불안하니 삶이 불안해질 수밖에 없고 노동자들이 불안한 시대에 사회는 더욱 불안해진다.
앞으로 나아질 수 있을까. 기후 붕괴의 시대에도 여전히 계속되는 새만금 신공항 건설, 산천을 파헤치는 무분별한 개발, 노동자 권리 후퇴, 나와 다른 이를 차별하고 혐오하는 마음, 나만 잘 살면 된다는 경쟁심. 이제 구순을 앞둔 나는 거리에서 열심히 산다고 살았지만 희망이 없는 시대를 남겨주는 것 같아 젊은이들을 보면 미안함뿐이다.
원직복직을 요구하는 노동자 셋이 고공농성중이다. 500일을 넘기며 최장기 고공농성중인 한국옵티칼 박정혜, 화려한 서울 한복판에서 반딧불처럼 올라선 세종호텔 고진수, 세계 1등을 한다는 배를 만들어도 노동자 처우는 최하위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김형수. 얼마나 의지할 곳이 없으면, 얼마나 희망이 없으면 스스로를 하늘과 가장 가까운 감옥에 가둘 수 있을까.
새만금신공항 환경영향평가 부동의를 촉구하는 천막농성장에 앉아 있다 보면 나도 모르게 화가 난다. 도대체 이들이 무엇을 그리 잘못했기에 직장에서 쫓겨나고 기계처럼 대우받다 버려지는가. 마음은 당장이라고 현장에 가고 싶지만 수라갯벌을 지키기 위해 친 '서각기도장'을 지키는 것 또한 내가 할 일이기에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굴뚝 신문의 발행인으로 이름만 올려놓고 현장에 몸을 두지 않는 게 부끄러워 고공농성중인 세 명의 노동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혼자가 아니라고, 좁은 곳에 있지만 몸을 움직이고 건강을 지키라고 짧은 통화를 마쳤다.
나는 그들을 일터로 되돌려줄 힘도 없고, 신공항을 중단시킬 힘도 없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처분만 기다릴 수만은 없지 않은가. 오늘은 한 통의 전화였지만 돌아오는 토요일(14일)에는 혼자라도 구미옵티칼에 갈 작정이다. 그곳에서 서각 기도로 마음이라도 보태려 한다. 손닿을 수 없는 곳에 있지만 마음만큼은 새처럼 날아 그 높은 곳에서 외로움과 서러움과 더워지는 햇볕과 싸울 노동자들과 할 테다.
나는 새롭게 시작된 이재명 정부가 그 어떤 정부보다 성공적으로 임기를 마무리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어설픈 통합으로 계엄과 군부독재, 비리에 면죄부를 준 이전 정부들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또한 국민이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를 단단히 다져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국민이 주인이 되려면 무엇보다 국민이 살아갈 토대가 바로 서야 한다. 노동자, 농민이 존중받는 세상, 차별과 혐오가 없는 세상 그리고 삶의 터전인 자연을 보존하는 시대적 사명을 무슨 일이 있더라도 놓지 않기를 바란다.

▲고진수 관광레저산업노동조합 세종호텔지부장이 서울 명동 세종호텔 옆 10미터 철제구조물에 올라 고공 농성을 벌인 지 100일이 되는 5월 23일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에서 세종호텔 앞에서 세종호텔 해고노동자 복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벌였다. ⓒ 유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