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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건축물은 지역에서 어떤 의미를 지닐까. 잘 키운 자식 하나가 집안을 건사해내듯, 랜드마크가 되는 공공건축물은 지역에 소중한 자산이다. 일본 소도시를 다니다보면 이런 사례를 흔히 접한다. 일본 이야기는 잠시 미뤄놓고 전주 이야기부터 해보자.

전주가 도서관 도시로 입지를 굳히기까지 여정을 담은 <도시의 마음>(2025년 5월 출간)이란 책을 흥미롭게 읽었다. 저자 김승수는 전주시장 재임 당시 책 읽는 시민들이 도시의 품격을 만든다며 도서관 정책에 올인했다. 그는 시청사 로비를 책 놀이터로 바꾸고, 특색 있는 도서관을 신축 또는 리모델링함으로써 현실로 옮겼다.

전주 덕진공원 연화정도서관 전주 연꽃에 둘러싸인 세상에 하나 뿐인 한옥형 연화정도서관에는 시민들과 여행자들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전주시는 애초 음식점이 있던 이곳 팔각정을 헐고 이곳에 도서관을 지었다.
전주 덕진공원 연화정도서관전주 연꽃에 둘러싸인 세상에 하나 뿐인 한옥형 연화정도서관에는 시민들과 여행자들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전주시는 애초 음식점이 있던 이곳 팔각정을 헐고 이곳에 도서관을 지었다. ⓒ 김승수

숲속과 한옥마을에 특별한 도서관을 짓고, 폐 동사무소와 파출소를 리모델링해 작은 도서관으로 전환하고, 노후화한 공단에 그림책 도서관을 설립하고, 덕진공원 연못에 세상에 하나뿐인 한옥형 연화정도서관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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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를 찾는 외지인들이 처음 접하는 공공건축물 또한 첫마중길 도서관이다. 또 다음달 개관을 앞둔 아중호수도서관은 길이만 100m에 이르는 국내 최장 곡선 형태 도서관이다. 숲과 정원, 나무와 꽃, 하천과 호수를 낀 도서관은 새로운 볼거리로 떠오를 게 분명하다.

여행자들 사이에 입소문을 타면서 도서관에서만 시간을 보내려는 여행자들이 잇따랐다. 전주시는 수요가 급증하자 아예 도서관 투어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대박을 쳤다. 저자가 꿈꾸었던 전주다움을 인정받고,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다가간 것이다.

핵심은 저마다 특색을 살린 도서관에 있다. 모든 도서관은 특색 있는 외관에다 이용자를 염두에 둔 설계와 운용으로 이목을 끌고 있다. 고정관념을 깬 도서관에서 시민과 여행자들은 색다른 경험을 하며 감동한다.

 도시의 마음
도시의 마음 ⓒ 출판사

<도시의 마음>은 공직자에게 필요한 안목과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도시가 바뀌면 시민들 삶도 바뀐다. 정책의 차이가 삶의 차이를 만든다. 도시에 마음을 담으면 시민들에게 반향이 일어나고, 그 반향은 도시와 사람을 동시에 변화시킨다"고 한다.

그는 이런 생각에서 시민들을 설득하고 공직사회로부터 공감을 이끌어냈다. 책을 읽는 내내 성공적인 공공건축물 사례로 꼽는 일본 이시카와(石川) 현립도서관과 21세기 미술관, 다케오(武雄) 시립도서관, 시마네(島根) 현립미술관을 떠올렸다. 세 곳 모두 공공건축물로 도시를 바꿨다. 잘 지은 미술관, 도서관으로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고 지역소멸을 막았다.

나 또한 이들 도시에서 깊은 감동을 받았다. 모든 도시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지방도시 대부분은 엇비슷하다. 매력적인 도시, 활력 있는 도시와 거리가 멀다. 무엇이든 순위 매기기를 좋아하는 일본은 매년 전국 47개 광역단체를 대상으로 매력도를 발표한다. 지난해 10월 발표한 '2024 매력도 랭킹'에서 1위는 홋카이도(北海道), 47위는 사가(佐賀) 현이었다. 그런데 꼴찌 사가 현에 한국 여행자들이 몰리고 있다. 그 이유는 다케오 시립도서관 때문이다.

다케오 시립도서관 인구 5만 명에 불과한 다케오 시에 20배가 넘는 100만명의 관광객이 몰리는 이유는 다케오 도서관을 보기 위해서다. 도서관이라는 본래 기능 외에 커피 마시며 수다를 떨고 지역 특산물을 구매하는 커뮤니티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다케오 시립도서관인구 5만 명에 불과한 다케오 시에 20배가 넘는 100만명의 관광객이 몰리는 이유는 다케오 도서관을 보기 위해서다. 도서관이라는 본래 기능 외에 커피 마시며 수다를 떨고 지역 특산물을 구매하는 커뮤니티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 임병식

인구 5만 명이 채 안 되는 다케오는 수령 3000년 녹나무가 유명하다. 여행자들이 이곳을 찾는 주된 이유는 녹나무가 아니라 도서관이다. 도시 인구의 20배가 넘는 연간 100만 명이 찾는 다케오 도서관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다케오시는 '도서관은 조용해야 한다'는 고정관념부터 깼다. 2013년 문을 열 때부터 24시간 연중 운영함으로써 지역 커뮤니티로로 자리잡았다. 시민들은 도서관에서 책 읽기는 물론이고 물건도 사고, 커피도 마시며 수다를 떤다.

1층 스타벅스 커피숍과 잡화 코너는 얼핏 도서관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시민들은 이곳에서 밀린 이야기를 나누며 지역 특산물과 전통주까지 구입한다. 주변 지형과 조화를 이룬 외관은 인상적이다.

뒷산을 배경으로 둥근 활시위를 한 도서관은 위압적인 여느 도서관과는 달리 친근하다. 처음 다케오 도서관을 방문한 때는 해질 무렵이었다. 노을에 물든 도서관은 그윽했다. 서울 코엑스 별마당 도서관은 다케오 도서관을 벤치마킹했다.

일본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으로 회자되는 이시카와 현립도서관 또한 대표적인 랜드마크다. 개관 2년 9개월 만에 내방객 300만 명을 기록했으니 놀랍다.

도서관은 짧은 기간 21세기 미술관과 함께 가나자와를 대표하는 명소로 부상했는데, 빼어난 설계 덕분이다. 지난해 일본 도서관협회 건축상을 받았다. 로마 콜로세움을 떠올리는 지붕 설계는 독특하다. 3층까지 이어지는 360도 책으로 둘러싼 중앙 홀을 따라 올라가는 통로는 압권이다.

나는 이곳에서 하루 종일 책에 파묻혔으면 했다. 이곳 역시 도서관 본래 기능뿐만 아니라 커뮤니티 기능까지 수행한다.

외진 시마네 현에 있는 시마네 현립미술관 또한 지역민들에게 자산이다. 지금까지 다녀온 미술관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생각한다. 티타늄 소재로 마감한 매끈한 우주선 모양 미술관은 멀리서도 눈에 뜨이며, 넓은 신지 호수에 접해 입지부터 남다르다. 호수와 어울려 뛰어난 풍광을 자랑한다.

시마네 현립미술관 외진 시마네 현에 위치한 현립미술관은 지역민들에게 자랑거리다. 넓은 신지호를 배경으로 은색 티타늄으로 외관을 마감한 미술관은 매끈한 우주선을 연상케 한다.
시마네 현립미술관외진 시마네 현에 위치한 현립미술관은 지역민들에게 자랑거리다. 넓은 신지호를 배경으로 은색 티타늄으로 외관을 마감한 미술관은 매끈한 우주선을 연상케 한다. ⓒ 임병식

시민들은 일부러 동트는 새벽 또는 해질 무렵 미술관을 찾아 시간을 보낸다. 여행자들이 외진 시마네 현을 버킷리스트에 담는 건 미술관 때문이다. 이곳에서 우키요에 작품을 관람하며 느꼈던 감동은 생생하다. 다녀온 지 2년여가 흘렀지만 호수를 품은 미술관은 잊히지 않는다.

<도시의 마음>에서 저자는 "공공은 성공의 기쁨과 자부심보다는 실패의 책임과 두려움을 먼저 생각한다. 여기에서 늘 마찰이 일어난다"며 "적당한 성공은 철저한 실패보다 위험하다. 적당한 성공은 앞으로 갈 수도 뒤로 갈 수도 없다. 적당한 성공으로는 누구의 마음도 흔들 수 없다"며 공직사회 한계를 꼬집었다.

공직사회가 실패의 책임과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다양한 실험을 기대할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감사원의 정책감사를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다. 지방소멸에 처한 지역에 공직사회의 창의력이 마중물이 될지 기대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임병식씨는 국립군산대학교 초빙교수입니다(전 국회 부대변인). 이 기사는 서울경제에도 일부에도 실립니다.


도시의 마음 - 도시는 어떻게 시민을 환대할 수 있는가

김승수 (지은이), 다산북스(2025)


#도시의마음#도서관정책#이시카와현립도서관#세마네현립미술관#다케오시립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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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montlim) 내방

역사, 인문, 여행, 한일 근대사, 중남미, 중동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중남미를 여러차례 다녀왔고 관련 서적도 꾸준히 읽고 있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 중심의 편향된 중동 문제에는 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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