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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6.10 13:33최종 업데이트 25.06.10 13:33

30여 년 만에 다시 본 그 나무가 말해준 것

3대 14명이 함께한 대구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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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나무가 이렇게 컸던가?"

30여 년 만에 다시 본 플라타너스 나무 앞에서 나는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어린 시절 기억 속에서 커 보였던 것들은 어른이 되어 다시 보면 의외로 작게 느껴지기 마련인데, 이 나무는 그 반대였다. 줄기와 가지는 훨씬 두꺼워졌고, 키는 몇 층 건물을 훌쩍 넘을 정도였다.

우리 집 앞 도로를 따라 줄지어 서 있던 그 가로수. 엄마 심부름을 하며 지나가던 길, 언니들과 함께 등교하던 횡단보도 옆을 묵묵히 지키고 있었다.

플라타너스 예전에 살던 동네의 나무
플라타너스예전에 살던 동네의 나무 ⓒ 심은혜

3대 14명이 함께한 대구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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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일 연휴, 우리 가족은 대구로 2박 3일 여행을 다녀왔다. 70대 후반의 부모님과 네 자매, 그리고 그 가족들까지 3대 14명이 함께한 대가족 여행이었다. 대구는 우리 네 자매가 사회생활을 시작하기 전까지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도시다.

서울과 경기도에서 아침 일찍 출발했지만 연휴 교통체증으로 도착은 오후가 되어서야 가능했다. 대구는 최근 아파트 과잉 공급으로 주목받는 도시다. 대구역 근처로 잡은 숙소 주변엔 고층 아파트 단지들이 도시 풍경을 완전히 바꿔놓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저녁 무렵 방문한 예전 동네의 그 나무가 더 눈에 들어왔다. 남겨진 것들, 지켜낸 것들이 오히려 더 귀하고 오래 시선을 끌었다. 하지만 조경을 위한 손길이 거쳤는지 가지들이 단정하게 잘려 있었다. 차에서 내려 가만히 올려다보니 마음 한구석이 아려왔다. 나무가 제 방식대로 자라려 할 때 '이 이상은 안 돼'라며 선을 그어버리는 세상의 시선이 겹쳐졌기 때문이다.

물론 도시에서는 그렇게 가지를 자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가로등이나 간판을 가리지 않게 하려는 배려, 강풍에 부러져 사고가 나는 걸 막기 위한 안전 조치도 있다. 그런 조정이 때로는 나무를 더 건강하게 만들기도 한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세상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만은 없다. 우리가 네 자매인 것도 까닭이 있다. 70대 후반의 아빠는 한국 전통 사회의 장남이셨고, 그것은 곧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이기도 했다. 딸만 넷이라는 말을 들으면 주변 사람들은 빠지지 않고 한마디씩 했다.

"아들 하나는 있어야지." 우리 부모님과 그 시대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사회 분위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딸이 많아서 좋겠다. 부럽다"라는 말을 부모님의 지인들이 먼저 건넨다. 그리고 부모님도 그 부러움을 이제는 마음껏 즐기신다.

물론 이것도 또 다른 편견일 수 있다. 가족의 의미는 성별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부모로부터 어떤 사랑을 받고 어떻게 자라왔느냐가 부모와의 관계를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서로를 아끼고 감사하는 방식으로 관계를 조금씩 키워왔다.

관절염 앓는 엄마가 담가온 김치

이번 여행은 그 누구도 힘들지 않도록 모든 식사를 외식으로 계획했다. 그런데 엄마가 담아오신 김치가 그 계획을 바꿨다. 배추김치, 파김치, 부추김치까지. 관절염을 앓는 엄마가 정성껏 담가 오신 김치는 정말 맛있었다. 그 덕에 여행 2일차 아침과 저녁을 숙소에서 해결했다.

"엄마, 병원에서 손목 쓰지 말라고 했잖아. 왜 김치를 다 담갔어?"

나는 속상한 마음에 물었다. 병원에서도 손을 쓰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엄마는 평소에도 손을 꼭 쥐는 것조차 힘들어하셨다. 그런데도 김치통 몇 개를 챙겨오신 것이다. 그날 저녁 삼겹살과 수육을 준비했는데, 돼지고기 수육의 일부는 아빠가 조용히 썰어주셨다.

그 식탁 위에서 가족은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었다. 막내 사위가 "무슨 젓갈 쓰셨어요?"라고 묻자, 엄마는 수줍게 웃으며 "요리 프로그램 보고 황석어젓 써봤어"라고 답하셨다. 그 순간 엄마는 단순히 음식을 준비한 분이 아니라 가족의 마음을 품고 식탁의 중심에 선 분이었다.

여행 마지막 날, 집에 돌아온 우리 가족은 단톡방을 확인했다. 가족 단톡방에는 아빠의 짧은 메시지가 올라와 있었다.

"우리 딸 사위 모두 수고 많았다. 잘 먹고 잘 놀다 왔다. 고마워~~~^^ 모두 수고들 많았다."
아빠 카톡
아빠카톡 ⓒ 심은혜

짧은 문장이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은 길고도 따뜻했다. 그리고 그 단톡방엔 서로를 향한 마음이 이어졌다. 여행 비용을 정산하는 시간이었다. "과일은 내가 샀어", "카페 비용은 내가 낼게", "닭똥집은 내가 부담할게" 하는 식으로. 서로 조금 더 부담하려 하고, 그것을 감사한 마음으로 기꺼이 받아들이는 방식. 우리가 14명이 넘는 이 대가족 여행을 해마다 이어갈 수 있는 이유다.

우리 자매는 모두 10년 이상 사회생활을 했다. 각자 기획력과 실행력을 고루 갖추고 있어 여러 가족이 움직이는 여행도 일사불란하게 진행된다. IMF 시절 우리 가족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함께 지나왔고, 그 시간을 통과하며 가족의 소중함을 더 깊이 배웠다.

나무처럼 자란 사랑

돌아오는 길, 나는 다시 그 가로수를 바라보았다. 신도시에서는 흔히 벚나무, 이팝나무, 은행나무 같은 관리가 쉬운 나무들이 가로수로 심긴다. 하지만 플라타너스는 최대 30m까지 자라고 성장 속도도 빠르다. 뿌리가 얕고 위로 쭉 자라는 특성 때문에 도심에선 관리가 어렵다. 그래서 점점 보기 힘든 나무가 되어가고 있다.

나무 밤에 바라본 플라타너스 나무
나무밤에 바라본 플라타너스 나무 ⓒ 심은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나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 사이 우리도 변했고 부모님도 그러하다. 하지만 나무가 나이테를 늘리며 자란 것처럼, 부모 자식 간의 사랑도 조용히 더 깊어졌다는 걸 이번 여행을 통해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언젠가 다시 그 길을 지날 때 그 나무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아래서 받았던 여름날의 시원한 그늘, 마음으로 전해졌던 따뜻한 품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가 그 나무가 되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너는 네게 있는 것으로 그늘을 늘인다"

김현승 시인의 시 〈플라타너스〉 속 한 구절처럼, 우리도 가진 것으로 누군가를 품고, 흔들려도 제자리를 지키며 그 곁을 따뜻하게 밝혀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가족여행#대구#플라타너스#나무#사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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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살 터울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마음이 닿는 순간, 글로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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