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퇴르 사분면(Pasteur's Quadrant)은 과학 연구를 분류하기 위한 개념으로 도널드 스토크스(Donald E. Stokes)가 1997년 저서에서 제안하였다. 그는 과학연구를 '지식 및 이해 추구' 여부와 '실용적 목적 추구' 여부의 두 축으로 나누어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Pasteur's Quadrant(파스퇴르 사분면) ⓒ FOSEP
예를 들어, 원자 구조와 양자역학의 개념을 제시하는 등 20세기 초 현대 물리학에 큰 영향을 미친 보어(Niels Bohr)의 연구는 자연 현상 본질에 대한 깊은 이해를 목적으로 한 순수기초연구이다. 반면, 발명가이자 기업가로 전구, 축음기 등 수많은 실용적 발명을 산업화로 이끈 에디슨(Thomas Edison)의 연구는 실용 중심 순수응용연구로 분류된다. 한편, 백신 접종의 과학적 기반을 마련한 파스퇴르(Louis Pasteur)의 연구는 이 두 요소를 모두 갖춘 사례로, 기초연구가 실용 문제 해결에도 기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1990년대 초에 시작한 mRNA 기초연구가 코로나 팬데믹 기간 mRNA 백신 개발로 이어지고, 2023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것도 실용을 고려한 기초연구의 대표적 사례로 볼 수 있다.
정부가 기초연구(R&D)를 지원하는 이유
그간 정부는 기초연구의 지식 창출과 실용성이라는 특성을 반영해 교육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중심으로 기초연구(R&D)를 지원해왔다. 교육부는 대학 연구기반 구축과 후속세대 양성 등 경력 발아 및 초기 연구자 지원에 중점을 두고 있고, 과기정통부는 창의적・도전적 연구 강화 및 우수연구자 양성을 목적으로 연구자의 성장, 안정, 성숙 단계까지 폭넓게 지원하고 있다. 특히 과기정통부의 기초연구사업은 개인 연구자를 지원하는 개인기초연구와 집단 연구를 대상으로 하는 집단기초연구로 나뉜다.
정부의 기초연구사업은 연구 기반 조성, 지식 창출, 인재 양성,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신산업 창출 및 삶의 질 향상과 같은 현실 문제 해결을 목표로 한다. 기초연구는 단기간에 성과가 나타나지 않고, 시장에만 맡겨두면 투자가 부족해지는 대표적 시장실패 영역으로, 공공재적 성격을 지닌다. 이에 정부는 과학기반 마련을 위해 장기적 관점에서 지속적으로 기초연구를 지원해왔다.

▲기초연구사업(R&D)의 역할 ⓒ 과학기술정보통신부(2023.1)
윤석열 정부의 개인기초연구 지원 방향의 문제점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그간 정부의 기초연구 지원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잘못된 정책 결정을 하였다. 윤 전 대통령의 이른바 'R&D 카르텔' 지적 이후, 2024년도 R&D 예산이 대폭 삭감되면서 연구 현장은 큰 혼란을 겪었고, 박사후연구원과 대학원생 등 젊은 연구자들의 자리가 위협받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에 따라 현장의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고, 결과적으로 2025년 과기정통부 소관 개인기초연구사업 예산은 전년 대비 증액되었다.
그러나 예산 증가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문제가 제기됐다. '공공을위한과학기술인포럼'은 2025년 1월 기사 '
2025년 개인기초연구 R&D 예산 증가에도 불구하고 연구자들은 왜 우려하는가?'를 통해, 윤석열 정부의 개인기초연구 지원 방향 전환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기초연구 예산이 늘었지만 국가 어젠다 연구나 전략기술 분야에 예산이 집중되어 특정 분야 쏠림 현상이 발생하고, 이는 중복투자와 인기 주제 위주의 연구 몰림을 초래할 수 있다. 또한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인해 과제당 연구비는 증가했지만 전체 과제 수는 줄어들어, 오히려 경력 초기 연구자들의 진입 기회를 막는 '사다리 걷어차기' 현상이 나타났다.
문제는 현재 과학기술 분야 학문후속세대가 처한 상황을 고려할 때, 향후 기초연구의 미래가 더욱 어둡다는 점이다. 이공계 대학원은 인구감소, 외국인 유학생 증가, 수도권-지역 격차, 의대 선호 등의 영향으로 질적・양적 수준 저하에 직면하고 있다. 2040년경에는 이공계 대학원생 수가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줄고, 박사 인력 양성이 가능한 대학도 약 20개로 축소될 전망이다. 또한 대학원생의 생계 안정성은 지도교수나 대학 재정, 국가 지원 여부에 따라 크게 좌우되며, 이에 따라 생활비 격차가 심화되고, 최소한의 생계비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과학기술 분야로 진학하는 우수한 인력이 적어지고, 대학-대학원-포닥을 거쳐 교수/연구원으로 이어지는 경력개발 경로가 취약해지는 상황은 한국의 기초연구 역량을 낮추고, 장기적으로는 과학기술 기반을 취약하게 만드는 요인이 될 것이다.
생애기본연구 확대와 신진 과학기술인력의 성장사다리 복원이 필요
이러한 상황에 직면하여 공공을위한과학기술인포럼(FOSEP)은 무너진 기초연구 생태계를 회복하고, 신진 과학기술인력의 성장사다리 복원을 위한 정책과제를 다음과 같이 정부에게 제안한다.
첫째, 연구자 창의성과 자율성에 기반한 장기연구 지원 마중물 역할을 하도록 개인기초연구 지원을 강화하고, 수혜자를 확대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의 개인기초연구 지원 방향은 '선택과 집중', '글로벌 협력', '목적성 강화' 등의 기조였으나, 이는 창의성과 연구 다양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와 인접한 중국과 일본에서 노벨 과학상을 받은 과학자들의 사례는, 소액이라도 다수에게 고르게 지원하고 자율적인 주제 선택을 보장하는 방식이 장기적으로 더 큰 연구 성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개인기초연구가 장기적 연구 수행을 뒷받침하는 꾸준한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생애기본연구 복원 및 확대, 신진 과학기술인력을 지원하는 과제 수 확대 등이 필요하다.
둘째, 지역 기반 기초연구자와 이공계 대학원생에 대한 지원 강화가 필요하다. 중앙정부와 마찬가지로 지자체 R&D 정책 또한 '선택과 집중' 기조를 따를 경우, 지역의 소규모 기초연구자들이 이중으로 소외될 수 있다. 이는 연구 다양성과 지속성을 약화시키고, 지역대학과 과학기술인력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공계 대학원생의 경우에도 연구 몰입을 위한 최소한의 생계 보장을 위해 2025년 도입 중인 '연구생활장려금' 제도의 실효성을 높여야 하며, 재정의 안정성과 형평성 확보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셋째, 정부 R&D 예산은 관련 법률에 따라 편성 절차를 엄격히 준수해야 한다. 지난 2024년의 일방적인 정부 R&D 예산 삭감은 연구자들의 장기계획과 연구인력 확보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고, 이런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아울러 현재 연구 현장에서는 행정 업무가 연구자에게 과도하게 전가되고 있고, 실무 인력 다수가 비정규직으로 구성되어 있어 연구 몰입을 방해하는 구조적 문제가 심각하다. 이에 따라 행정・기술・연구 직군 간 분업과 협업을 강화하고, 정규직 연구지원 인력을 체계적으로 육성하여 건강한 연구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이상과 같이, 개인기초연구의 본래 취지를 회복하여 창의성과 자율성이 보장되는 연구 환경을 복원하고, 신진 과학기술인력의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이 마련된다면, 국가 과학기술 경쟁력의 근간인 기초연구 생태계의 회복과 확장을 이끄는 단초가 될 것이다.

▲FOSEP의 기초연구 및 신진연구인력 지원 정책 제안 ⓒ FOSE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