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손상된 행성에서 더 나은 파국을 상상하기>(2024년 2월 출간)의 저자 손희정은, 책의 제목에서 인류의 현재를 '손상된 행성'이라 지칭하고, 자본의 이익과 성장만을 추구하는 체제에서 지구의 미래는 결국 '파국'으로 달려갈 수밖에 없다고 전제하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악화된 상황으로 전개되는 결과가 분명하게 예견된다면, 현재로서는 '더 나은 파국'을 통해서 그 시점을 늦춰야만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책표지 ⓒ 메멘토
'자본주의의 꿈과 인간-너머를 말하다'라는 부제 역시 자본주의의 미래를 그리 희망적이지 않으며, 그렇기에 암울한 미래를 대신하는 그 '너머'의 세계상에 대해 고민햐야 함을 진단하는 의미로 파악된다. 그동안 저자는 영화와 책을 대상으로 비평 활동을 해왔으며, 이 책의 주요 내용도 역시 그 연장선 위에서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사방이 불타고 있는데 화재의 원인이 잘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다층적인 위기의 원인이 보이지 않았다기보다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 있어도 가속을 멈추지 않는 인간 행동의 원인이 잘 보이지 않았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래서 계속 읽고 또 보았다. 그리고 나로 하여금, 혹은 우리로 하여금, 인식론적 차폐막 뒤에 머물도록 만드는 문화적 은폐에 생각의 불을 비추어보려고 노력했다. (P. 19)
이제 우리는 파국이라는 말, 위기라는 감각, 재난이라는 현실을 스크린, LED 모니터, 스마트폰 화면 등 다양한 윈도 안에 등장하는 화려하고 반짝거리는 멸종의 스펙터클로 즐기고 소비하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파국을 해결할 방법 역시 파국을 초래한 북반구 중심의 이분법적 세계관과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환상 안에서 찾게 되었다. 개발의 가속을 멈추지 않는 테크놀로지가 불사의 영웅을 탄생시키리라 믿고, 특정한 '남성적' 신체성을 지닌 자가 끝내 살아남으리라는 능력 중심적이고 젠더화된 생존주의를 내면화하며, 더 강력한 무기가 우리를 지키리라는 전투 판타지에 기대게 된다. 그래도 괜찮을까? (P. 20)

▲저자는 '사방이 불타고 있는데 화재의 원인이 잘 보이지 않았다'고 쓴다.(자료사진) ⓒ cullansmith on Unsplash
자본주의가 발흥한 이래 지난 2백여 년 동안 인류에 의해 지각의 변동을 초래할 만큼 지구의 상황에 급격한 변화가 진행되었고, 이러한 현상을 반영해서 현재를 '인류세'로 지칭해야 한다는 제안이 더 많은 이들로부터 호응을 얻어내고 있다. 실상 지난 2020년 지구를 강타했던 '코로나19' 역시 그 원인에 대해 다양한 진단에 제시되었지만, 결국 인간의 무분별한 자연 착취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고 하겠다.
요즘 전세계적으로 기상 이변이 속출하고, 이전과는 다른 자연 재해가 반복되는 현상 역시 자연을 개발과 이익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인간의 탐욕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진단 역시 깊이 성찰할 문제라고 하겠다. 이미 인간에 의해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손상된 행성'은 점점 '파국'으로 향하고 있는데도, 여전히 이익과 성장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의 속성으로 인해 그 위험성에 눈을 감고 있는 실정이라고 하겠다.
저자는 새롭게 등장하는 영화와 책들을 통해서, '손상된 행성의 파국'을 진단하여 현재 상황을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기를 염원한다. 이를 위해 인간 중심의 사고를 자연과 동반자의 관계로 전환할 필요가 있으며, '인간-너머'의 상황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또한 '의존과 돌봄'이 사회를 온전한 공동체로 만들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6월 초순임에도 벌써 한낮 기온 30도
책에는 매우 다양한 주제의 영화가 제시되고 있지만, 그것들을 일관된 관점에서 해석하여 논의를 이끌고 있는 저자의 문화적 역량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예컨대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와 <커미네이터>와 같은 작품에서 영웅으로서의 여성 형상을 등장시키고 있지만, 서사의 흐름은 결국 기존의 남성 우위라는 젠더화된 양상으로 발현되고 있음을 적시하고 있다.
저자는 '파국'을 다룬 작품들에서 '레퓨지아'라는 공간을 주요 개념으로 내세우고 있는데, 이는 파괴된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피난처라는 의미를 넘어서 공존과 돌봄 그리고 의존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생태적 개념으로 규정하고 있다.
특히 이재용 감독의 <죽이는 여자>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통해, 저자는 제도의 틀에서 감사안지 못한 존재들의 처한 현실에 대한 해석을 시도하고자 한다. 파국으로 치닫는 현실에 대한 비판에 그치지 않고, 인간 혐오와 냉소를 넘어 공동체로 살아갈 수 있는 삶의 가능성을 탐구하고자 하는 저자의 관점이 엿보인다고 하겠다. 나아가 극단적인 이윤 추구를 목표로 하는 자본주의적 방식이 만연하는 현재의 상황에서, 파국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너머'에 존재하는 새로운 선택이 가능하다는 점을 역설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아마도 금년 여름이 가장 시원할 것'이라는 우울한 보도를 이번 해에도 다시 듣게 될 것으로 기대될 정도로, 지구의 환경 위기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6월 초순임에도 벌써 한낮의 기온은 30도를 오르내리고, 습한 기후는 일상생활을 영위하는데 적지 않은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 아마도 다가오는 금년 여름에도 열대야가 지속될 것으로 예측되는데, 기후 위기를 막으려는 전 지구적인 노력이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하겠다.
결국 매년 반복되는 열대야와 같은 극심한 기후 위기는 자본의 축적과 성장만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이번 한 해에 끝나지 않고, 오히려 매년 새로운 기록을 경신하며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암울한 전망이 예견된다. 그렇다면 저자가 제시하듯이 '더 나은 파국을 상상'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현재의 상황에 대한 자각과 적절한 대안이 마련될 수 있는 노력이 전개될 수 있기를 간절하게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