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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보림이 포장한 조각품 옆에서 사운드 퍼포먼스를 펼치고 성백이 그 위에서 물을 뿌리고 있다.
백보림이 포장한 조각품 옆에서 사운드 퍼포먼스를 펼치고 성백이 그 위에서 물을 뿌리고 있다. ⓒ 이혁발

예술은 "세계의 발견이고 세계와의 새로운 만남이다." -이정우(미학)-

부산에서 열리는 무경계 프로젝트 '안과 밖' 전시를, 나는 5월 말 개막일에 직접 현장에 가서 봤다.

존재(있음) 노래하기/ 사물(타자, 세상)에 물 주기 퍼포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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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백보림은 자신의 몸을 프린트한 화선지로 몸을 칭칭 감싸고 음악을 연주한다. 사운드퍼포먼스다. 속, 안을 알 수 없는 포장된 인체가 즉흥연주를 한다. 특별한 무엇을 지칭하는 음악이 아니다. 현장의 바람, 그 당시의 느낌이 음악이 되는 것뿐이다. 기의도 기표도 없는 그저 '존재함' 그 현장의 '있음'을 노래할 뿐인 것이다.

'성백'은 백보림이 포장한 형체들 위에 물을 뿌리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예술은 잔잔한 일상, 통상적 시각을 흔들고 세상을 새롭게 보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이 물 뿌리기 행위는 하이데거가 말한 '세계-내-존재'라는 존재론과 같은 관점인 것이며, 또한 "우리 몸은 이미 주변의 온갖 사물들과 얽혀 있으면서 사물과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감각과 사물이 일치하는 상태를 존재의 근원"으로 보는 메를로퐁티의 관점과 같은 것이다.

 성백이 백보림 작품 <(ㅁ)> 중 하나에 물 뿌리는 행위를 하고 있다.
성백이 백보림 작품 <(ㅁ)> 중 하나에 물 뿌리는 행위를 하고 있다. ⓒ 이혁발

'기의' 없는 프린팅 천으로 감싼 세상... 회화는 어디까지 확장되는가

백보림의 <(ㅁ)>은 낙서를 매우 큰 글자로 확대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픽셀이 프린팅된 천으로 조각품, 우체통, 나무 등을 감싼 작품이다. 특별한 무엇을 의미하지 않는, 즉 '기의' 없는 픽셀이 무작위로 위치시켜 프린트된 천으로 사물을 감쌈으로 관람자들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다. 이 작품은 무엇이라고 명확히 재단할 수 없는 세상에 대한 풍경조각이기도 한 것이다. 껍데기로 가득 찬 세상에 대한 기록화이기도 한 것이다.

서수연 서수연이 그림에서 실을 백보림 작품까지 이어 연결하는 행위를 진행중인 장면
서수연서수연이 그림에서 실을 백보림 작품까지 이어 연결하는 행위를 진행중인 장면 ⓒ 이혁발

서수연 작 < Contact >는 캔버스라는 사각 틀을 벗어나 입체화된 회화작품이다. 벽면에 걸린 회화는 그 사각 틀을 넘어 전시 벽면으로 넓어지고, 바닥에 이르러서도 각을 틀어 뻗어 나간다.

이 회화작품의 완성엔 퍼포먼스가 가미된다. 그림에서 천으로 뒤집어씌운 백보림 작품까지 실을 연결한다. 나뭇잎 형상의 메모지를 관람객에게 주고, "떠오르는 생각들을 적어보세요"라고 제시하였다. 관람객의 글이 쓰인 나뭇잎 모양의 누런 종이들을 실에 죽 매달았다. 사람들의 생각이 회화 속 나무줄기에 함께 매달리게 된 것이다.

비치는 너의 모습이 너이더냐

 노주련
노주련 ⓒ 이혁발

노주련 작품 < Mirror Cube Purple >은 반짝이며 주변을 반사하는 재질의 사각형 풍선이다. 경계가 둥근 이 정육면체는 조형이나 세상의 기본요소인 사각 덩어리이다. 이 덩어리는 피타고라스주의자들이 말하는 만물의 기원이라 부르는 모나드(단자)를 확대해서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 모나드는 우주, 무한대를 더는 나뉘지 않을 때까지 쪼개었을 때까지 쪼개었을 때 남는 최소한의 입자 개념이다. 이 모나드는 물리적인 원자보다 더 쪼개어져 버린 입자, 추상적인 개념인 '원점'을 말하는 것이다.

바깥 풍경을 품고 있기에 밖이 큐브의 안으로 들어가 있는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시뮬라크르(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존재하는 것처럼 만들어놓은 인공물을 지칭)한 세상을 풍자하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진실을 쫓으라, 껍데기와 허상에 속지 말고'.

사물의 호흡으로 인간들의 관계를 돌아본다

 김세로 <인공호흡>
김세로 <인공호흡> ⓒ 이혁발

김세로의 <인공호흡>은 PVC 파이프와 송풍기를 재료로 만든 작품이다. 전시장 안에는 전기의 힘을 동원되어 송풍기가 돌고, 밖 계단에 놓인 5개의 송풍기 머리들은 바람에 의해 자유롭게 움직인다. 이 두 장치는 서로 다른 조건 아래 각기 다른 리듬으로 작동하여 인공과 자연, 통제와 자율, 안과 밖의 경계를 대비시킨다.

작가는 안과 밖의 각각의 속도의 회전 움직임을 하나의 호흡으로 인지하였다. 호흡은 생명체라는 것이다. 생명체든, 인격화의 비유이든 그 사물을 통한 인간의 삶을 투영하여 우리 삶을 고양하고자 하는 것이다. 예술은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를 끊임없이 질문하는 것이다.

 이재웅 작품
이재웅 작품 ⓒ 이혁발

'타자철학'을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

이재웅의 작품 < Come out. Inside you. >는 AI로 만든 2분 38초 영상작업이다. 영상 속 여러 남녀는 유리관에 갇혀 있다가 탈출한 후 싸우기도 하고, 서로 좋아하기도 하며 커플이 된 남녀는 손을 맞잡고 환한 미래로 뛰어나간다. 마지막 부분에 사람들이 다시 유리관에 갇힌다.

이 작업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타자와의 관계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하게 만드는 작품인 것 같다. '타자(타인)'를 어떻게 바라보고, 규정하며 살아가야(대처) 할지에 대한 여러 사상을 묶어놓은 책 <타자철학>(서동욱)을 다시 한번 읽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 작품이었다.

 성백, 정종훈 합작의 < Messenger_빈집 프로젝트 >
성백, 정종훈 합작의 < Messenger_빈집 프로젝트 > ⓒ 성백

우리 머리를 사유로 꽉 차게 만드는 '빈집', 그 텅 빈 충만

성백, 정종훈 합작의 < Messenger_빈집 프로젝트 >는 진정한 설치미술의 맛을 보여준다. 설치미술은 작품이 공간에 어떻게 놓이는가가 가장 중요한 요소인데, 이번 작품은 초록색이 칠해진 옥상에 완벽하게 들어 앉아있다. 하늘, 허공을 품은 집, 골조만 있는 집은 주변 건물들 사이에서도 그 존재가 빛을 발한다. 채워짐과 비움을 말하고, 욕망과 무소유를 말한다.

어느 누군가는 이 작품을 보며 '텅 빈 충만'이라는 화두를 건져가지 않을까? 또 어느 누구는 펄럭거리는 천으로 만든 서도호의 집 작업을 떠올리기도 할 것이다. 가운데 아크릴박스 안의 수경식물은 우리가 자연과 문명(인위)의 어느 지점에 서 있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손경대 〈분리(分理) Project_공간과의 대화>
손경대 〈분리(分理) Project_공간과의 대화> ⓒ 이혁발

유리병 속 빈공간은 유기체가 될 수 있는가

손경대는 〈분리(分理) Project_공간과의 대화>를 출품했다. 각기 모양이 다른 유리병 8개가 탁자 위에 놓여있고 유리병과 접촉하는 손이 있는 사진 2개, 유리병 두 개가 접촉하고 있는 사진 2개가 벽에 걸려 있다. 이 작업은 사진예술이고 설치미술, 개념예술, 참여예술이다.

미술작품이란 작가나 소유자가 갖는 게 아니라 보는 자가 갖는 것이다. 보고 생각하고 감응하는 자가 주인인 것이다. 빈 유리병 속 빈 공간을 새롭게 보게 만들고 유기적으로 연결하게 하는 작업에 동참하면 이 작업의 주체, 소유자가 되는 것이다.

 최규식 <사랑의 무게>
최규식 <사랑의 무게> ⓒ 이혁발

비물질적 개념을 입체작품화

<사랑의 무게>, <추억의 무게>, <영혼의 무게>같이 비물질적 개념을 입체화하는 작품 시리즈를 해 온 최규식 작가는 이번에 <사랑의 무게> 작품을 내놓았다. 가녀린 몸체는 불안하게 서 있지만 쓰러지지 않는다. 밝은 네온으로 빛나는 'LOVE'라는 글자는 유리 원통 안에서 반짝이고 있다. 사람으로 치면 머리 부분에 있고 글자의 크기가 작은 편이지만 그 빛은 제 키를 넘어 사방에 은은하게 사랑의 따사로움을 단절되지 않고 지속해서 발산하고 있다.

이 전위적인 실험작업들은 관람객의 감상을 통해야만 그 작업의 가치가 빛을 발하게 된다. 사색을 유도하는 이 탁월한 작품들은 부산의 복합문화예술공간 MERGE?에서 18일까지 만나볼 수 있다.

#복합문화예술공간#머지#실험예술#행위미술#전위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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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혁발 (gurqkf) 내방

회화, 행위미술, 설치미술, 사진작업을 하며 안동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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