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진숙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5월 8일 오후 서울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유성호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경찰 수사에 속도가 붙으면서, 이 위원장의 거취 문제에 관심이 모인다. 과거 한상혁 전 위원장 사례를 보면, 이 위원장이 뚜렷한 해명 없이 해당 혐의로 기소까지 될 경우, 정부 차원에서 강제 해임 절차에 착수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대전유성경찰서는 지난 9일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이 대전 MBC 사장 재직 시절, 법인카드를 사적 유용한 것으로 보이는 사용처들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이 위원장은 2015년 3월부터 2018년 1월까지 대전MBC 사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법인카드를 사적으로 사용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를 받는다. 앞서 경찰은 지난 1월 대전MBC와 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 행정사무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도 실시했다.
경찰 수사 상황으로 볼 때, 이 위원장에 대한 직접적인 소환 조사도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사실 이같은 상황은 이 위원장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크다. 지난해 7월 이 위원장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법인카드 유용 의혹은 주요 쟁점 중 하나였다. 대전MBC 사장 재직 시절 골프장과 고급 호텔은 물론, 이 위원장이 당시 다녔던 서강대 인근에서도 법인카드를 썼고, 사장 사퇴 당일에도 빵집에서 100만 원을 결제해 논란은 일파만파로 퍼졌다.
명확한 해명이 필요한 사안이었지만, 이 위원장은 "규정에 맞춰서 사용했다", "사적으로 안 썼다"고 해명하면서도 구체적인 사용 내역에 대해선 답하지 못했다. 심지어 그는 의혹 규명을 위해 빵집 포인트 제출을 약속했다가 나중에 "개인정보 문제로 어렵다"고 입장을 뒤집으면서, 의혹을 더욱 키웠다. 결국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현장 점검 이후 지난해 7월 이 위원장을 정식 고발했다.
법인카드 유용 의혹은 이 위원장의 거취와도 곧장 연결되는 문제다. 방송통신위원장은 정치적 중립 보장을 위해 법적으로 신분을 보장받지만, 법인카드 유용 혐의가 인정돼 법원에서 금고 이상의 형을 받는다면 면직 사유가 된다. 법원 판결이 나오지 않더라도, 수사 진행 상황에 따라 정부에서 면직을 시도할 수도 있다. 과거 한상혁 전 위원장은 지난 2023년 'TV 조선 심사'와 관련해 기소됐는데, 윤석열 대통령은 이를 명분으로 한 전 위원장을 면직시켰다.
한 전 위원장은 즉각 면직 집행정지 신청을 법원에 냈지만 법원은 "공무집행의 공정성과 국민 신뢰 저해" 등을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기소됐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한 전 위원장이 직무를 수행하기 적절하지 않다고 봤던 것이다. 이 위원장 역시 기소만 된다면, 정부 입장에선 면직을 추진할 명분은 충분한 셈이다.
이에 더해 이 위원장은 최근 EBS 사장 임명 등 2인 체제 의결을 연일 강행해, 민주당 의원 측과 날선 대립을 이어가고 있다. 언론계와 시민단체로부터는 '언론장악 부역자'라는 비판을 받고 있어, 이 위원장은 '사면초가'와 같은 형국에 놓여있다. 이와 관련해 이정헌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은 '스스로 거취를 결정해야 한다'고 하면서, 이 위원장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일단 현 시점에서 이 위원장이 자진 사퇴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사의를 표명하고 출근을 않고 있는 김태규 전 부위원장과 달리 이진숙 위원장은 지난 6일 이재명 대통령이 소집한 첫 국무회의에 배석하기도 했다. 이 위원장의 잔여 임기는 내년 8월까지다.
페이스북에서 정기적으로 방송통신위원회 정책을 홍보해왔던 이 위원장은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했던 지난 4일 'Tomorrow is another day'('내일은 또 다른 날이다')라는 게시글을 끝으로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이와 관련해 이 위원장의 입장을 듣고자 전화와 문자를 보냈지만,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