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네이테이(KANEITEI)란 브랜드가 있다. 보는 순간, '끝내준다'고 생각한 이 브랜드는 빈티지가 무엇인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세월, 경험, 추억이 녹아든 재료로 만들어진 가방과 지갑이 이 브랜드의 대표상품이다. 실제 미군 텐트를 매입해 업사이클링, 재활용을 넘어 '새활용'한 상품이 카네이테이의 주력이다.
지난달 18일 서울 성동구 새활용플라자(서울 성동구 용답동, 2017년 개관)를 찾아 도슨트 투어를 들었다. 이름난 미술관에서나 경험할 도슨트 투어를, 도대체 뭐 하는 공간인지 모를 새활용플라자에서 듣다니. 그런데 놀랍게도 이 경험은 올해 내가 한 최고의 선택 중 하나였다. 어째서 이제껏 이런 공간을 몰랐을까, 나고 자란 서울인데 내가 너무 몰랐구나, 탄식이 나올 정도였다. 그만큼 멋지고 알찬 프로그램이었다는 뜻이다.

▲새활용플라자 홈페이지(https://www.seoulup.or.kr/). ⓒ 새활용플라자
이은영 도슨트가 녹색 가방을 들며 '이게 뭐로 만들어졌을까요?'하고 물었을 때, 누구도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버려진 물건을 전혀 다른 용도의 쓸 만한 무엇으로 탈바꿈시키는 게 새활용, 말하자면 눈 앞에 들린 녹색 가방은 과거 버려져 쓰임 잃은 물건으로 만들어졌다는 뜻이겠다.
그러나 그 외양이 제법 멋드러져서 누구도 그게 버려진 쓸모없는 것이라고 여기진 못한 듯했다. 이은영 도슨트는 반응이 매번 그러하다는 듯, 그것이 군용 텐트라고 말했다.
나는 그것이 과연 한국 군용 텐트였을 것이라고, 조금 더 시간이 있었다면 맞출 수 있었다고 탄성을 터뜨렸다. 바로 얼마 전, 현대화된 군용텐트로 해병대를 포함해 육해공 군대 텐트가 교체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던 터다. 분대 텐트 하나에 550만원이 넘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가격은 논외로 치더라도.

▲서울새활용플라자미군 텐트로 제작한 카네이테이 제품을 들어보이는 이은영 도슨트. ⓒ 김성호
버려지는 물건에 새로운 쓰임... 한국군 텐트는 어디로 갔을까
황당한 건 이 텐트가 한국 군대 텐트로 만들어지지 않았단 거다. 이은영 도슨트는 버려진 미군 텐트를 카네이테이가 매입해 제품으로 탈바꿈시켰다고 설명했다. 한국 텐트가 틀림없이 어마어마하게 교체되었을 텐데, 그건 대체 어디가고 한국 업체가 미군 텐트로 새활용을 한다는 말인가. 그것도 60만 장병을 운용하는 징병제 국가 대한민국에서 말이다. 폐기된 군용텐트가 어디로 가느냐고, 국방부에 정보공개청구를 한 것도 그 때문이다.
서울새활용플라자는 오늘의 한국인, 특히 서울 사람이라면 반드시 찾아봐야 할 공공시설이라 생각한다. 세계에서 가장 재활용을 열심히 하는 나라임에도 새활용이 무엇인지, 재활용 아래 깔린 참담한 현실이 어떠한지를 알지 못하는 이에게 인식의 지평을 넓혀줄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세비를 들여 어른과 아이 모두 즐길 수 있는 양질의 도슨트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부터, 새활용의 가치를 몸소 느낄 수 있게끔 다양한 소품과 제품을 전시·소개하는 것까지 하나하나 그러하다.
도슨트 프로그램을 사전 신청한 스무 명 가까운 이들은 그 외양부터 제각각이었다. 나와 같이 하릴없이 친구들끼리 색다른 나들이를 찾다 방문한 이부터, 아이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하려는 이들, 데이트를 나온 커플들까지 그 이유도 다양했다. 전문성 넘치는 이은영 도슨트가 마치 일인극 주인공처럼 손짓 발짓을 동원하여 열정적으로 새활용의 면모를 설명하니 이 시대 귀하기 짝이 없는 어린이들 또한 절로 입이 터져 앞다퉈 질문에 답한다.
재활용과 새활용의 차이도 처음 알았다. 즉 재활용으로 수집한 쓰레기를 같은 용도의 제품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하여 세척하고 녹이고 다시 생성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에너지를 소비한다는 이야기, 반면 소위 업사이클링이라 불리는 새활용은 이 공정을 생략할 수 있는 창조적이며 지속가능한 자원순환 방법이라는 도슨트의 설명이 이뤄진다.

▲서울새활용플라자이은영 도슨트가 새활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김성호
서울새활용센터 로비를 장식한 샹젤리제 비스무리한 조명은 빈 술병으로 만들었고, 안내 판넬은 상자를 새활용해 만든 것이 눈에 들어온다.
설명이 지루해질 때쯤 질문을 던지는 이은영 도슨트와 손을 들고 똑부러지는 답을 내어놓는 아이들 사이에 교감이 오간다. 도대체 엄마가 누구냐를 묻는 도슨트의 칭찬에 돌아서 엄마를 자랑스럽게 쳐다보는 아이, 그 아이에게 뽀뽀를 해주는 엄마가 과연 서울새활용플라자가 아이들 교육장소로 인기가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게 만든다.
공간을 바꿔 교육은 한 층 깊이를 더한다. 서울에서 발생하는 쓰레기가 얼마나 다양하고 그 양이 많은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벽면 앞에 참석자들이 늘어선다. 이은영 도슨트가 말하기를 2020년엔 서울시 쓰레기가 40만 톤이었다는데, 그 다음해엔 45만 톤으로, 다시 그 다음해엔 50만 톤으로 소개하라고 지침이 내려왔단다. 해마다 늘고 있단 이야기다.
쓰레기는 폭발적으로 늘어나는데, 서울은 그를 매립할 땅이 없어 저 멀리 인천 땅까지 빌려다가 묻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민망하다. 매일 쓰레기를 배출하는 서울시민들이 자기들이 버리는 것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은 어느모로 보아도 창피한 일 아닐까.

▲서울새활용플라자서울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를 종류별로 모아둔 벽면. ⓒ 김성호
새활용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
벽면에 나붙은 수많은 종류의 쓰레기 가운데서 이은영 도슨트가 특별히 언급하는 쓰레기는 마지막 부류다. 아이들에게 손으로 만지지 말라고 주의까지 주는 그것은 겉보기엔 꼭 돌덩이 같다. 이은영 도슨트는 그것이 건설 폐기물이라고 말한다.
일례로 건설폐기물은 버릴 때 돈을 내고 버려야 하는데, 그 비용을 물기 아까워 업체들이 야산 곳곳에 불법으로 투기하는 관행이 있다고 한다. 비가 내리면 폐기물에서 나온 나쁜 물질이 토양에 스며들어 오염을 시키고, 강과 바다로 흘러들어 더 큰 오염을 불러오기도 한다고.
말하자면 건물을 짓고 부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건설폐기물을 서울은 감당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긴데, 그럼에도 재건축 논의가 활발하고 그 와중에 폐기물이며 재활용과 새활용 이야기가 쏙 빠져 있는 것이 참담할 뿐이다. 재개발이 되면 집값이 오르리란 기대 아래 최소한 그것이 환경 파괴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행위란 걸 알도록 해야 하지 않느냐는 물음이 오간다. 과연 그러하다.
서울새활용플라자 안엔 우리가 버리는 쓰레기의 종류와 양, 그것이 처리되는 방식, 재활용과 새활용의 가능성까지를 내다볼 수 있는 일련의 체험적 교육자료가 전시돼 있다.
일상 가운데 분리수거만이 시민의 책임인 건 아니다. 우리가 버리는 쓰레기가 어디로 가는지, 그에 내포된 문제를 해소하고 상황을 나아지도록 하는 방편을 고민하는 것 또한 시민의 의무일 것이다. 서울새활용플라자를 더욱 많은 이들이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폐기된 군 텐트는 다 어디로 갔을까

▲일상 가운데 분리수거만이 시민의 책임인 건 아닐 것이다. 페트병들(자료사진). ⓒ exportersindia on Unsplash
도입에서 적은 군용텐트 이야기로 글을 마무리할까 한다. 정보공개청구로 받은 답변은 민망하고 초라하다. 국방부는 군용텐트 폐기와 관련한 정보를 묻는 질문에, 그 구체적 자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군용 폐기물은 '군 폐기물 관리 훈령'에 따라 폐기 처리되는데, 폐 군수품을 통합해 전문기관에 위탁해 처리한다는 이야기다. 부대별로 폐기업체를 지정해 폐기물을 일괄 처리하는 방식으로, 텐트와 같이 새활용할 여지가 있는 제품이라고 따로 취급되지도, 구분해 기록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군 생활을 돌아보니 과연 그렇겠구나 싶다.
흥미로운 건 국방부가 직접 언급한 훈령 안에 '폐기물 재활용 촉진' 규정을 따로 두어 그 책임을 정한 대목이 있다는 사실이다. 기관장은 폐기물 발생량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재활용 가능품의 분리수거를 적극 실시해야 하며, 재활용 가능품은 재활용 업체에 공급하도록 하고 있다.
다만 여기에 인센티브나 처벌조항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말하자면 명목상의 노력일 뿐이다. 그 결과로 한국 새활용 업체는 미군 텐트를 매입해 사용하고, 한국 텐트는 다른 폐기물과 묶여 처리될 뿐 그 폐기방법을 확실히 알 수 없는 것이다.
관련해 한 군 관계자가 내게 말하기를 "너도 군대에 다녀오지 않았느냐"고 했다. 나는 그 말로 상황을 다 납득하게 됐다.
*프로그램 정보
'도슨트와 함께 하는 새활용 투어(약 50분)'는 매주 월-수-금마다 1일 2회(오전 10시, 오후 2시) 무료로 진행된다('자원순환 이야기'는 화-목 진행). 온라인 예약은 이 링크(바로가기)에서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