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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11,172자로 이루어진 <자연을 들어 이치를 밝힌 소리 훈민정음>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는 김동연 이사장
한글 11,172자로 이루어진 <자연을 들어 이치를 밝힌 소리 훈민정음>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는 김동연 이사장 ⓒ 김슬옹

서울시 광화문 광장에는 세종대왕 동상이 우뚝 서있다. 동상 뒤쪽으로 한 층 내려가면 마치 지하 도시인 듯한 '세종이야기'라는 특별 공간이 펼쳐진다. 이곳에는 '한글 갤러리'라는 상설 전시장이 있는데 공모에 뽑힌 특별 전시가 이어지고 있다.

필자가 근무하는 세종국어문화원이 바로 이 근처에 있어 자주 들르곤 한다. 마침 5월 20일부터 6월 15일까지 필자의 전공인 훈민정음 관련 서예, 서각 작품이 전시되고 있어 한 차례 본 뒤 5월 27일 이 전시를 이끌고 있는 운곡 김동연 이사장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눠 보았다.

세종대왕 탄신 기념일(5.15)에 맞춰 열리는 이번 전시는 세계문자서예협회 김동연 이사장이 직접 쓴 훈민정음(한글) 1만1172자 원본과 42명의 서예가들이 쓴 훈민정음 서문 서예작품, 그리고 훈민정음 1만1172자를 돌에 새긴 7개의 석각 작품이 함께 전시되고 있다.

운곡(雲谷) 김동연 이사장은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작가이자, 한글 세계화의 선봉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가 걸어온 길과 앞으로의 꿈에 대해 들어보았다.

1만1172자 서예 작업의 역사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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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 1만1172자를 모두 직접 써서 전시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한글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싶었습니다. 한글은 과학성, 철학성, 실용성, 애민성을 갖춘 유일한 세계적 문자이지만, 한글의 조형성과 예술적 가치 또한 높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저는 우리글 1만1172자 중 6년 전 실제 쓰이는 2350자 홑글자를 궁체정자, 궁체흘림, 고체, 서간체로 이루어진 한글서체 자전 형태로 국내 최초 서예작품으로 발간한 바 있습니다.

그 후 2022년에는 현대 한글 24자 자모음으로 조합되는 1만1172자를 훈민정음 고체 서예작품으로 완성하여 서첩 형태로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전시는 1만1172자 원본 서예작품과 조성옥 석각 명인이 오석 7판으로 축소 석각한 것, 그리고 레이저 기법으로 자작나무 목판에 양각화하여 인출한 작품들도 족자로 전시되었습니다."

1만1172자는 실제 쓰이는 현대 한글 초성자 19자 중성자 21자 종성자(받침) 27자를 좀 더 드러내기 위해 받침 없는 글자 399자에 종성자 27자를 하나하나 붙이면 19×21×27=10,773자가 되고 여기에 받침 없는 글자 399자를 합치면 1만1172자가 나온다.

김동연 이사장의 1만1172자 모두 쓰기 작업은 한글사에서 매우 의미 있는 시도다.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제시한 한글 조합 원리를 현대 한글에 완전히 구현한 것으로, 이는 세종대왕이 의도한 한글의 체계성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단순히 글자를 나열한 것이 아니라 서예 작품으로 승화시켰다는 것이다. 한글의 조형미와 예술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이러한 작업은 세계 문자사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독창적인 시도다.

지역 문화 발전과 탈중앙화 철학

- 충북 최초로 서예학원을 설립하시고 해동연서회도 창립하셨는데, 지역 서예 발전에 대한 선생님의 철학은 무엇인가요?

"우리 사회는 문화만 보더라도 중앙집권화되어 왔습니다. 서예인인 저로서도 이를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우리 지역의 훌륭한 문화유산 자원인 직지와 훈민정음 산실인 청주시 초정을 세계에 알리고 지키는데 사명감을 갖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서예를 좋아해 대학 때 서예동아리를 창립하고 해동연서회를 설립했습니다. 문자예술의 꿈을 청주에서 피우기 위해 세계문자서예협회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김동연 이사장이 언급한 '초정'에 대한 강조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청주 초정은 세종대왕이 온천 요양을 위해 머물렀던 곳으로, 실제로 훈민정음 창제 마무리 또는 훈민정음 보급과 관련된 중요한 사유의 공간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기존 서울 중심의 한글 문화 담론에서 벗어나 충청권의 역사적 정통성을 부각시키려는 그의 노력은 한글 문화의 지역적 확산과 다양성 확보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 다만 초정과 훈민정음 창제의 직접적 연관성에 대해서는 더 많은 사료 발굴과 연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세계 문자 보존 프로젝트의 현재와 미래

- 22년째 세계문자서예대전을 개최하고 계시는데, 이 사업의 목표와 성과는 어떤가요?

"직지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해를 시작으로 사라져가는 문자들을 계승 발전시키고, 세계 문자기록의 저장고를 청주에 두고자 시작했습니다. 현재 세계 15개 문자 작품 1500여 점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직지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2001년을 기점으로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매우 선견지명이 있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많은 문자들이 디지털화와 언어 소멸로 인해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서, 물리적 서예 작품으로 보존하려는 시도는 독특하면서도 의미 있는 접근이다.

다만 15개 문자 1500여 점이라는 규모가 세계 문자의 다양성을 충분히 반영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현재 세계에는 7000여 개의 언어와 수십 개의 문자 체계가 존재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더욱 체계적이고 학술적인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한글 문화 벨트 구상과 지역 정체성

- 세종시와 청주를 중심으로 한 한글 문화 벨트 구상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세종의 숨결이 청주와 세종, 충청도 곳곳에 숨겨져 있습니다. 초정행궁, 속리산 복천암 세종전, 초수리 등 문화유적지를 그 지역 정체성과 연결하고, 문자·한글 산업과 연계하여 한글 문자축제, 엑스포 등으로 관광자원화 했으면 합니다."

세종시-청주 중심의 한글 문화 벨트 구상은 매우 현실적이고 전략적인 접근이다. 세종시가 한글문화도시로 거듭나고 있는 상황에서, 역사적 정통성을 가진 청주와의 연계는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특히 청주시 초정 행궁과 보은군 복천암 등 세종대왕의 행적이 남아 있는 유적지들을 체계적으로 연결하여 '세종길'를 만드는 것은 문화관광 측면에서도 매우 유효한 전략이다. 다만 이러한 구상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충청북도와 세종시, 중앙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협력이 필수적이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말에 김동연 이사장은, "한글 서예를 세계에 널리 알리고, 세계문자공원 조성과 세계문자전시관을 마련하여 인류 문자를 저장하고 보존하고 싶습니다. 문자강국의 위상을 높여 한글과 세종의 위업을 높이는데 힘쓰고 싶습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김동연 이사장의 한글 꿈은 한글을 단순히 우리나라의 문자가 아닌 인류 문명사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거시적 안목을 보여준다. '세계문자공원'과 '세계문자전시관' 구상은 청주를 세계 문자학의 중심지로 만들려는 야심찬 계획이다.

김동연 이사장이 추진하고 있는 한글 세계화 프로젝트는 한글의 무한한 가능성을 시각적으로 구현하고, 이를 통해 한글의 과학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보여주려는 시도로 매우 의미가 있다. 다만 이러한 노력이 더욱 큰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학술적 노력과 국제적 협력, 그리고 체계적인 추진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한글 세계화라는 거대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열정을 넘어서는 사회적 차원의 지원과 협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글#훈민정음#한글서예#한글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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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학과 세종학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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