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덕도신공항건설을 전면 재검토해 주세요! 세계 환경의 날 기념 가덕도 반딧불이 기행에 참여한 시민들이 '낙동강하구 난개발을 중단하라'는 대형 펼침막을 하늘 높이 들고 있다. ⓒ (사)습지와 새들의 친구
'솔로몬의 재판'을 떠올려 보자. 한 아기를 놓고 두 여인이 서로 자기가 엄마라고 주장하자 솔로몬 왕은 말한다. '칼로 아기를 둘로 갈라 반씩 가져가라.' 그렇게라도 하자는 여인과 그건 결코 안 된다, 그럴 바에는 내가 아기를 포기하겠다는 여인 중에서 진짜 엄마를 가려내는 판결이야 솔로몬이 아닌 우리도 못할 것 같진 않다.
솔로몬의 재판에서 먼저 빛났던 대목은 따로 있다. 왕이 대뜸 '칼을 가져 오라'고 명한 순간이 그것이다. 이는 생명에 관한 솔로몬의 상상력이 낳은 촌철의 지혜였기 때문이다. 내 것 네 것을 떠나 아기의 생명이 절대적으로 소중한 여인이 진짜 엄마라는 당연한 진실도 바로 여기에서 나왔으니까.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둘러싼 찬반 논란을 보면서도 나는 솔로몬 앞에 선 두 여인을 한 번씩 떠올렸다. 가덕도라는 '아기'를 놓고 누가 진짜 '엄마'인가를 다투는 것만 같아서다. 하지만 이 시대는 솔로몬의 칼이나 지혜가 통하는 시대가 아니다. 돈, 이익, 편리함, 욕심 앞에서 생태계 보전이나 자연과의 공생 같은 주장과 호소는 조롱거리는 아닐지라도 그저 한가한 사람들의 한가한 이야기로 치부되기 일쑤 아닌가.
지난 5일 '세계 환경의 날 기념 가덕도 반딧불이 기행'(주관: 환경과 생명을 지키는 부산교사모임, (사)습지와 새들의 친구)에 다녀왔다. '가덕도를 사랑하는 시민 모임'과 '가덕도신공항반대시민행동' 회원들도 함께 한 이날 행사에는 초등학생에서 칠순 노인에 이르기까지 100여 명의 시민이 참여했다.
이들이 늦은 오후에 가덕도에 모인 것은 희귀한 생물이 된 반딧불이를 보고 싶은 단순한 호기심 때문만이 아니란 건 물론이다. 이들 중 상당수가 이날 오전 11시, '가덕도신공항건설 등 대규모 토목공공사업 재검토를 촉구'하는 대 정부 기자회견(주관: 낙동강하구지키기전국시민행동, 가덕도신공항반대시민행동)에 발품을 보탠 것만 봐도 그렇다.

▲"새 정부에 바란다!"6월 5일 오전 11시 부산광역시의회 브리핑룸. 낙동강하구지키기전국시민행동 등은 세계환경의날을 맞아 새 정부를 향해 대저대교 건설, 가덕도신공항 건설 등 낙동강하구의 대규모 토목공공사업의 전면 재검토를 촉구했다. ⓒ 습지와새들의친구
가덕도 신공항 건설 전면 재검토? 그러나 사정은
2005년 노무현 정부가 동남권 신공항 건설 문제를 검토키로 한 이래 가덕도는 밀양과의 경쟁을 통해 그 부지로 확정되었고, 2021년에는 예비타당성조사조차 면제되는 '가덕도신공항건설특별법'이 통과되었으며, 2025년 민주당의 이재명 대선 후보도 '책임 있게 추진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그는 이제 대한민국 대통령이다.
어쩌란 말인가.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나? 상상력을 발휘해 가덕도라는 천혜의 자연 환경을 '아기'에 빗대고 그 아기에게 진정한 '엄마'는 누구인가고 물어도 보는 것이지만 이런 목소리는 점점 더 외로운 처지가 되고 있다. '이미 돌이킬 수가 없게 된 현실의 냉엄함', '정치적 이해득실', '포기할 수 없는 사적 욕심과 자기 권리', '가치관의 충돌', '절벽 같은 사회적 무관심' 등등 앞에서는 너무나 무력해 보이는 것이다.
이날 모인 시민들과 같은 이들에게 가덕도는 '생태적 가치와 유서 깊은 역사가 공존하는 보물섬', '세계 철새 이동 경로 한가운데에 있는 생명의 섬', '우리가 후대에 물려줘야 할 최고의 유산'이다. 반면에 정부 당국자를 비롯한 다른 많은 이들에게는 비록 그게 옳다 하더라도, 그 마음과 말이 아름다운 만큼이나 그저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날 100여 명의 사람들이 생태계 보전의 한 상징인 가덕도 반딧불이를 만나러 온 것은 왜였을까?
다른 무엇보다도 이들은 비행기 옆에 반딧불이를, 거대한 공항 옆에 두루미, 황새를 나란히 놓고서 가덕도라는 '아기'의 생명을, '엄마'의 사랑을, 자연과 인간의 공생을, 그러한 지구의 아름다운 미래를 상상할 줄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같은 상상력을 지닌 사람들이 다 사라진 세상, 생각하면 무서워진다.

▲생태계 보전의 한 상징, 반딧불이를 만나러 가는 길해가 완전히 지면 나타날 반딧불이를 만나러 100여 명의 시민들이 산 봉우리를 오르고 있다. ⓒ (사)습지와 새들의 친구
어둠이 내리기 전, 그러니까 반딧불이를 만나러 산을 오르기 전, 섬 전체를 두루 볼 수 있는 언덕에서 (사)습지와 새들의 친구 박중록 운영위원장은 거기 모인 '반딧불이의 친구'들에게 말했다.
"저기 보이는 국수봉, 남산, 성토봉은 공항공사가 본격 개시되면 다 폭파되어 바다로 사라집니다. 산을 무너뜨려 바다를 메우고 그 위에다 활주로와 터미널을 건설한다는 겁니다."
미친 짓이로구나. 토목이고 공학이고 경제적 타당성이고 뭐고 제대로 아는 거 하나 없는 내 입에서 절로 터져 나온 말이다. 그래서? 잘 모르면 가만히나 있으라고? 글쎄다. 상식은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큰 길이고 이른 바 전문성이란 건 좁은 길인데? 딴 뜻이 아니다. 성장의 한계, 개발의 폐해, 기후변화, 암울한 지구의 미래가 인류 보편의 상식이라면 어떤 전문적 지식은 오히려 반인간, 반지성에 복무하곤 하지 않았느냐고 나는 반문하고 싶은 것이다.
따져 보면 이 땅의 많은 '반딧불이의 친구들' 은 세상을 향해 현실과 동떨어진 주장이나 순진한 소망만 외친 게 아니다. 이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소리 높여 묻고 또 말했다.
'해저의 연약지반을 무시하고 활주로와 터미널을 만드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안전하지 않다고 국토교통부도 자인했다.'
'지난해 무안공항에서 대형사고가 난 것도 비행기와 조류 충돌의 영향이 있었다. 가덕도 상공은 조류와의 충돌 위험성이 무안보다 최대 353배라고 한다.'
'그 같은 대규모 토목 공사를 예비타당성조사도 하지 않고 한다는 게 있을 수나 있는 일인가?'
'잇단 유찰 과정과 공사 기간 연장 문제 등은 사업의 불확실성을 키워왔고 이는 막대한 혈세 낭비를 예고하고 있다.' ...
이들의 가덕도 반딧불이 사랑은 단순히, 사라져가는 소중한 것들에 대한 개인적이고 낭만적인 어떤 친화력 때문은 아닌 것이다.
"그야 환경오염 때문이죠."
같이 산을 오르는 길. '반딧불이는 왜 사라져 가는 걸까?' 슬쩍 던져본 내 질문에 부모를 따라 온 두 어린 형제 중 형인 윤재는 뻔한 걸 왜 묻느냐는 듯이 대답을 했었다. '나중에 반딧불이가 우리를 보게 된다면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할까?' 이렇게라도 물었다면 우리의 짧은 대화도 서로 조금은 재미가 있었을 지도 모르지만 뭐, 그렇게 되고 말았다.
캄캄한 좁은 산길에 길게 줄을 지어 숨 죽이고 멈춰 서서, 혹은 쪼그리고 앉아 거짓말처럼 등장할 반딧불이를 기다리던 사람들을 생각한다. 어둠 속에서 반짝반짝 빛을 내며 잠깐 나타났다가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지곤 한 반딧불이를 두 눈으로 좇는 동안 '반딧불이의 친구'들은 무슨 생각들을 했을까?
나는 SOS, 긴급 조난 신호, 구조 요청 신호를 상상했다. 조난 당한 쪽은 어느 쪽인가. 구조 신호를 보내는 쪽은? 반딧불인가, 반딧불이를 가덕도에서 지구에서 추방함으로써 스스로 추방될 처지에 놓였다는 사실조차 망각하고 있다가 어느 날 문득 미망에서 깨어난 인간들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