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여성과 결혼해 영국에 정착한 지도 어느덧 35년이 지났다. 자녀를 낳고 길러 초·중·고·대학까지 다 보냈고, 지금은 다행히 모두 독립해서 행복하게 살아간다. 그만큼 영국이라는 나라, 그 문화, 사람들, 풍경과 날씨에 익숙해졌고, 어떤 면에선 편안함마저 느낀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다. 영국에 오래 살았지만, 여전히 한국이 그립다. 김치 냄새, 골목의 소음, 주말 아침의 시장 풍경, 전철 안에서 들려오는 한국어의 빠르기까지도 아득히 그립다. 그러다 가족과 함께 한국에 가게 되면, 며칠 지나지 않아 또 영국이 그리워진다. 묘한 날씨, 느긋한 사람들, 질서와 무질서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일상까지도.
어쩌면 나는 '이중국적자'는 아니지만 '이중감정자'는 확실한 모양이다. 양쪽 다 그립고, 둘 다 내 삶의 일부이니 말이다.
그런 나에게, 영국이라는 나라에서의 삶은 매일이 작고 큰 문화 충돌이자 수많은 깨달음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이 나라에서 살아온 시간 속에서, 내게 가장 강렬하게 각인된 이름 중 하나가 있다. 바로 이점바드 킹덤 브루넬(Isambard Kingdom Brunel, 1806-1859)이다.

▲브루넬 ⓒ 위키피디아
협궤와 광궤 사이에서
철도를 타고 런던에서 브리스톨까지 이동하다 보면, 역 이름 어딘가에서 브루넬이라는 이름을 보게 된다. 처음엔 그저 역사 속 엔지니어인가 보다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흔적이 도시 곳곳에 남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니, 영국의 근대 인프라 절반이 그의 손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브루넬은 단순한 엔지니어가 아니었다. 그는 협궤(표준 궤간) 철도 시대에 "광궤야말로 미래"라고 외친 괴짜 천재였다. 더 넓은 선로는 더 빠르고 안정적인 주행을 가능하게 한다는 그의 주장은 기술적으로 정당했지만, 이미 전국이 협궤로 깔려있던 시대에 광궤는 현실성 없는 고집으로 보였다.
실제로 그는 수많은 조롱을 받았다. "그 넓은 선로에 코끼리라도 태울 셈인가?" 심지어 증기기관차의 아버지로 불리는 조지 스티븐슨조차 "자원낭비"라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브루넬은 꿋꿋이 광궤 노선을 깔았고, 그 열차는 협궤 열차보다 훨씬 부드럽고 빠르게 달렸다.
그는 졌지만, 결국 이겼다. 광궤는 철회되었지만, 브루넬의 발상은 훗날 고속철도의 표준과 방향을 제시했다. 실패처럼 보였던 그의 시도가, 미래 기술의 밑거름이 된 것이다.
그는 단지 '기술자'가 아니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클리프턴 현수교는, 오늘날에도 브리스톨을 찾는 관광객들의 발길을 끈다. ⓒ 위키피디아
브루넬의 진가는 철도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는 세 척의 증기선을 설계했고,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던 대서양 횡단 항로를 열었다. 철제로 만든 배가 어떻게 물에 뜨냐는 비웃음도, "그럼 더 크게 만들면 된다"는 그의 철학 아래 현실이 되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클리프턴 현수교는, 오늘날에도 브리스톨을 찾는 관광객들의 발길을 끈다. 심사위원들에게 "너무 위험하다"며 설계안을 거절당하자, 그는 특유의 영국식 유머로 "그럼 선생님 안대로 지으시지요"라며 반박했고, 결국 자신의 설계안이 채택됐다.
한마디로 브루넬은, 비현실적이지만 실현된 꿈, 실패로 포장된 성공, 조롱 속에서 태어난 혁신 그 자체였다.
브루넬은 내 삶의 은유다
나는 처음에 유학생 그 다음에 이민자로서 영국에서 살아왔다. 낯선 나라, 낯선 언어, 낯선 시선 속에서 조금 더 넓게 생각하고, 더디더라도 내 방식대로 살아야만 했다. 때로는 "이런 식으로 살아도 되나?" 스스로 자문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나만의 광궤 같은 길이 만들어졌고, 그 위를 가족들과 함께 달려왔다.
아이들이 영국에서 자라면서 받은 교육 속에서도, 나는 브루넬의 흔적을 느낀다. "생각을 박스 바깥으로(Think outside the box)", "틀에 갇히지 말고 질문하라"는 교육 방식은 그가 남긴 정신과 닮아 있다.
그런 점에서 브루넬은, 단순히 산업혁명기의 기술자가 아니라 영국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새로운 길을 열고, 그 길 위에 사람들을 올려보냈는지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당신은 어떤 '광궤'를 꿈꾸는가
요즘 한국과 영국을 오가며 느끼는 것은, 결국 삶이란 익숙한 협궤와 낯선 광궤 사이를 오가는 여정이라는 것이다. 때로는 돌아가고, 비효율적이고, 많은 반대를 감수해야 하지만, 그 길 끝엔 다른 풍경이 있다.
브루넬은 남들과는 다른 궤도를 그렸고, 나는 그 궤도 위에서 35년을 걸어왔다. 한국이 그립고, 영국도 그립지만, 이중감정 속에서 나는 오늘도 내가 설계한 인생이라는 선로를 조심스럽게, 그러나 확실히 깔아간다.
그대는 지금 어떤 선로 위에 서 있는가? 그 길이 조금 낯설고 넓더라도, 가보라. 언젠가 그 길이 표준이 될지도 모른다.
브루넬의 강철 다리처럼, 우리 삶도 튼튼하게 연결되길 바라며. 독자 여러분은 살면서 어떤 '광궤'를 꿈꾸고 계신가요?
* 덧붙임: 브루넬의 아버지도 엔지니어였고, 나 역시 자녀들에게 세상의 '불가능'을 질문할 수 있는 용기를 물려주고 싶다. 다만, 브루넬처럼 시가까지는 물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