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진보 성향의 매체 <민플러스>에 한 칼럼이 실렸다. 제목은 "실패가 예고된 이재명 정부의 대북정책"(이정훈, 반도평론 대표). 글쓴이는 이재명 정부의 평화·통일 정책이 시대착오적이며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강하게 비판한다.
글은 길었지만, 핵심 논지는 단순하고 명확했다. 북한은 이미 통일노선을 폐기했으며, 남북은 더 이상 하나의 민족이 아닌 적대적 국가일 뿐이고, 한국 정부는 그 현실을 인식하지 못한 채 여전히 '6.15 복원주의'에 매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그는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도 실패였고, 이재명 정부는 그 뒤를 그대로 밟고 있다며, 남북 간 교류, 군사합의 복원, 심지어 외교관계 정상화조차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 결론은 명확하다. 이재명 정부의 대북정책은 시작도 전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이 글을 읽고 나는 깊은 불편함을 느꼈다. 글쓴이의 분석 자체가 틀렸다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 북한의 전략 변화는 분명 의미심장하다. 조선노동당 전원회의에서의 통일노선 폐기 시사, 핵무력의 불가역화 선언 등은 남북관계의 전환점을 보여주는 신호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변화를 해석하는 정치적 결론이 '단념'과 '포기'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칼럼은 이재명 정부를 문재인 정부의 실패작처럼 묘사하며, '대미종속'이라는 낡은 프레임에 가둔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4.27 판문점 선언과 9.19 군사합의, 평양 공동선언은 분명 당시 북한의 호응과 국제적 관심 속에서 이루어진 소중한 외교적 성과였다. 그것이 무산된 이유는 북한의 전략적 변화, 트럼프·바이든 행정부의 애매한 태도, 국제 정세의 복합적 작용 등 다양한 원인이 뒤섞여 있다. 그런 복잡한 상황을 단순히 '한국 정부의 무능'으로 몰아가는 건, 정당한 비판이 아니라 정치적 책임을 단순화시키는 일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제 막 정부 출범 일주일도 안 된 이재명 정부의 대북정책 밑그림조차 완성되기 전에 '실패'라는 낙인을 찍어버린다는 데 있다. 이런 식의 이른 결론은 정책의 방향을 논의하고 수정할 기회를 빼앗는다. 정작 이재명 정부가 어떤 방식으로 평화를 모색할지, 어떤 외교 전략을 펼칠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지금은 실패를 선언할 시기가 아니다. 다양한 가능성을 검토하고, 다층적인 논의가 필요한 시기다.
그간의 남북관계는 늘 물처럼 흘렀다. 얼었다가도 녹고, 끊긴 듯 보이다 다시 이어지기도 했다. 외교란 그런 파도의 리듬을 감각적으로 타는 예술이다. 지금 모든 것이 끊어지고 막혀 보인다 해도, 누군가는 다시 길을 내야 한다. 물론 북한이 '연방제 통일' 기조를 접고 새로운 길을 택했다면, 남측도 새로운 접근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그러나 그 판단 역시 우리가 주체적으로 내려야 할 몫이다. 북한의 선언 한 마디에 따라 우리 외교정책 전체가 봉쇄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지금 필요한 질문은 다음과 같은 것이 아닐까?
"북한이 통일 노선을 유보한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교류의 조건이 사라졌을 때, 평화를 위한 여지는 어디에 있는가?"
"과거의 틀을 넘어서기 위해 어떤 새로운 방식의 접근이 필요한가?"
나는 통일을 단지 체제 통합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 그것은 공동체의 기억을 복원하고, 분단의 상처를 끌어안는 윤리적인 과제다. 통일은 정치인이 주도한 일이 아니었다. 언제나 민중과 시민사회가 꿈꾸고 견인해온 일이었다. 그래서 누군가는 계속해서 가능성을 말해야 한다.
문이 닫혔을 때 열쇠를 찾는 사람, 물이 마르면 샘을 파는 사람, 길이 끊기면 새로 길을 내는 사람이 지금 이 정부와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사람이다.
평화통일이 가능할까? 물론, 불가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말하고 주장해야 한다. 그 희박한 가능성을 놓지 않을 때, 남북의 평화공존이 비로소 실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세는 유동적이고, 평화는 의지의 문제다.
지금 필요한 건, 예언자의 절망이 아니라 길을 여는 사람들의 인내와 예언자적인 상상력이다. 이재명 정부가 실패할 것인지, 아니면 다시 남북의 물꼬를 틀 것인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지금은 실패를 기정사실화할 때가 아니라, 지켜보고 힘을 실어주어야 할 때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