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를 이야기하면 그래도 들어주는 세상이라고 아직 믿고 있다. 사람들은 내게 순진하다고들 하지만, 순진한 사람들이 잘 사는 사회야말로 정의로운 사회가 아닐까? 법은 기득권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겉으로는 약자를 위한다고 표방하는 것이 또한 법이기에 부조리한 세상을 포기하지 않고 법으로써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간다. 그 과정에서 마주한 세상의 모습을 이곳에 전한다.
드디어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됐다. 지난해 12월 3일 이후부터 이어져 온 지난한 혼란의 국면이 이제는 조금 정리될 수 있을까? 기대와 함께, 혐오와 분열이 들끓는 이 사회를 과연 어떻게 잘 이끌어 나갈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이런 기대와 걱정 속에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4일 취임 선서와 함께 통합과 실용 중심의 국정기조를 밝혔다. 모든 국민을 아우르고 섬기는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했고, '모두 함께 잘 사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비록 이재명 대통령 말씀 전문에 '동물'이라는 단어는 등장하지 않지만 '모두의 대통령' '모두 함께 잘 사는 나라'라는 표현에서, 사람뿐 아니라 사람과 함께 이 땅 위에 함께 숨 쉬며 살아가는 생명체들도 모두 함께 잘 사는 나라를 만들어주기를 기대하면 무리일까?
이 대통령의 과거, 그리고 대선 공약

▲2016년 12월 13일 '모란시장 환경정비 업무협약' 및 기자회견에서 당시 이재명 성남시장이 발언하고 있다. ⓒ 성남시
실제 이재명 대통령은 성남시장, 경기도지사 재임 시절 동물과 관련한 성과를 낸 바가 있기도 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개고기 유통으로 유명했던 모란시장의 개 도축 시설을 모두 철거시킨 것이다. 성남시장 시절 이 대통령은 '개고기 문제 해결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고, 4개월 만에 상인들과의 합의를 통해 이 같은 성과를 만들어냈다. 이 대통령의 추진력이 동물 정책에서도 빛을 발했던 순간이다.
경기도지사 시절에는 동물권 운동 단체인 '동물권행동 카라'와 함께 경기도 전역의 개농장을 전수조사한 뒤 이를 바탕으로 보고서를 발간했고, 같은 해 '개 식용 및 반려동물 매매 제도개선 국회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처럼 이 대통령은 '개식용종식법'이 제정되기 전부터 산업화된 국내 개식용 문제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가져온 사람이기도 하다.

▲2021년 6월 22일 당시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 이룸홀에서 열린 '개식용 및 반려동물 매매 제도개선 국회토론회'에 참석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안민석·이규민·박홍근·심상정·김홍걸·소병훈·이동주·양정숙·이학영 국회의원 등을 비롯해 이항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 전진경 (사)동물권행동카라 대표, 서국화 동물권연구변호사단체(PNR) 대표 등이 참석했다. ⓒ 경기도
이 대통령은 이번 대선 과정에서 동물정책 공약을 발표하기도 했다. ▲분산된 동물 관련 업무를 통합하기 위한 '동물복지기본법' 제정과 '동물복지진흥원' 설립 ▲ 반려동물 양육비 부담 절감을 위한 동물병원 표준수가제 도입, ▲ 동물 학대자에 대한 '동물 소유 및 사육금지제도'와 동물 양육 전 교육이수제 도입 ▲ 불법 번식장과 유사 보호시설 규제, 동물보호센터 확충 및 기능 강화, 동물복지 인증 농장 지원 확대 ▲ 동물원과 수족관 환경 개선 ▲ '동물대체시험활성화법' 제정 ▲ 119구조견과 같은 봉사동물의 복지 증진 ▲ 퇴역 경주마 복지 체계 마련 등의 공약이다.
산재한 동물 관련 업무 체계를 일원화하여 통합적인 관리대응체계를 갖추겠다는 것, 동물학대자에 대한 동물 소유 금지나 보호소로 가장한 펫샵인 이른바 '신종펫샵' 규제처럼 오랫동안 문제로 지적된 사항들에 대한 개선책을 공약화한 것은 반가운 내용이었다.
'동물의 비물건화', 이젠 꼭 필요하다

▲지난 5월 11일 당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전남 강진군 강진읍 강진오감통시장을 찾아 한 지지자의 반려견을 품에 안고 인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다만 전체적으로 정책의 중심이 다소 '반려동물'에 치우쳐 있다는 비판이 있었다. 우리 사회의 동물에 대한 관심이 아직은 '반려동물'로 분류되는 동물들에 편중되어 있는 데서 비롯한 것이겠지만, 조금 더 근본적 차원의 정책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긴 한다.
대표적으로 동물계에서 오랫동안 요구해 온 동물의 비물건화 약속이 빠져 있다. '동물은 물건은 아니다'는 너무나 당연하고 상식적인 내용의 민법 개정안은 이미 지난 국회에서 정부 발의로 국회에 발의된 바 있다. 법원 등의 이견으로 결국 폐기되고 말았으나, 현재 국회에도 동일한 내용의 법안이 발의되어 계류중에 있다.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것은 이미 사회 일반에서는 상식으로 통용되고 있어 사회적 수용도는 이미 충분히 높은 상황이다. 법이 이를 따라오지 못해 여전히 동물을 물건으로 다룸에 따라 압류 대상이 될 수도 있는 등 여러 모순들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생명임에도 제도 안에서 생명으로 대우받지 못하는 것 자체가 문제이다.
동물을 위한 정책을 펼치려 해도 동물이 물건인 현실 앞에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법원은 동물의 비물건화가 법체계에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며 신중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으나, 이미 다수의 유럽 국가들은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는 내용의 법 규정을 둔 지 오래됐다는 점에서(정부가 발의했던 법안 역시 오스트리아 법률을 참고한 것이다), 법원의 우려가 크게 와닿지 않는다.
인류의 현안인 기후위기 앞에서 더 이상 동물들을 비롯한 인간 아닌 존재들을 고려하지 않은 채 우리 삶의 개선을 바랄 수 없다. 독일 등 일부 국가들은 헌법에 국가의 동물보호 의무를 명시하고 있기도 한 바, 이후 우리 개헌 논의에서도 위와 같은 내용을 넣는 등 이른바 '생태헌법' 논의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성남시장 시절 모란시장 상인회와의 개 도살 시설 철거 관련 협약식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 나라의 위대함과 도덕적 진보는 그 나라에서 동물이 받는 대우로 가늠할 수 있다'는 마하트마 간디의 말을 인용한 바 있다. 모란시장 개고기 시장을 없앴던 것처럼 이 대통령 특유의 선구안과 추진력으로 동물 정책에서도 획기적인 변화를 이끌어주기를, 이로써 진정 '모두의 대통령'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