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화가 사이 공원, '선구자' 나혜석 거리... 즐길거리 넘치는 곳

경기 수원시청역 근처. 번화가를 지나며 "여기에 공원이 있긴 한 걸까?" 싶었지만, 어느새 큰 나무들과 부드러운 산책길이 눈앞에 펼쳐졌다. 공원 이름은 '효원공원(孝園公園)'. 효, 즉 부모에 대한 공경을 뜻하는 그 한자가 인상적이다. 수원은 정조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를 향한 효심으로 화성을 축성한 도시다. 그런 배경을 알고 나니, 이 공원이 단순한 산책 공간 이상으로 느껴진다.

지난 5월 29일 오후, 화성 답사에 이어 이날의 마지막 탐방지로 효원공원을 찾았다. 효원공원은 이름 그대로 '효(孝)'를 주제로 조성된 공원으로, 곳곳에 설치된 다양한 조각상과 기념물이 어린이들에게 효의 가치를 자연스럽게 느끼게 해주는 공간이다.

공원 안에는 제주 풍경을 옮겨 놓은 제주거리, 중국 광둥성 전통양식을 따온 정원인 월화원, 그리고 배드민턴장, 족구장, 농구장 등 시민들을 위한 생활 체육 시설도 함께 갖추고 있어 휴식과 교육, 여가가 공존하는 복합 공원의 면모를 보여준다.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면
자기 자식도 역시 자기에게
효도하나니
[...]

효(孝)는 자식이 부모를 공경하고 섬기는 인간관계의 기본 덕목이라 할 수 있다. 가정의 사랑에서 출발해 사회적 책임과 공동체 의식으로 확장되며, 오늘날에도 세대 간 소통과 배려를 바탕으로 한 보편적 가치로 여겨진다.

물론 요즘처럼 개인주의가 깊이 자리 잡은 시대에 '효'를 이야기하는 게 마치 울림 없는 메아리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면,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어른들과 함께한 시간은 단순한 의무가 아닌 즐거움이었다. 보람이었고, 따뜻한 행복이었다.

효는 그런 따뜻한 기억을 되새기게 해주는, 시대를 넘어 여전히 우리 마음속에 살아 있는 가치다. 팔달산 정상에 세워진 '효의 종각'이나, 이곳 효원공원을 거닐다 보면 자연스레 삶의 가치를 다시 떠올리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수원은 단순한 역사 도시를 넘어, '효의 도시'라 부를 만하다.

발길을 옮겨 월하원으로 향한다. 월화원은 중국의 전통정원으로, 광둥식 정원을 재현한 공간이다. 한국 정원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소박하고 절제된 미를 추구하는 반면, 중국 정원은 자연을 이상화해 인공적으로 구성하며 화려하고 장식적인 미를 강조한다. 두 정원 모두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하지만, 표현 방식과 분위기에서 차이를 보인다.

월화원 정문을 지나 석교를 건너면 연못과 작은 폭포가 시선을 끈다. 부용사와 월방, 분재원까지 이어지는 길은 짧지만 밀도 있게 구성돼 있다. 땅을 파서 연못을 만들고 파낸 흙으로 산을 만들었다. 산 정상에 중연정을 지었다.

눈에 띈 건 건축물의 지붕이다. 우리 한옥처럼 부드럽게 내려앉지 않고, 추녀 끝이 위로 날카롭게 치켜 올라간 모습이다. 같은 나무 기와지붕이라도 형태가 주는 인상은 전혀 다르다. 정자에 앉아 있자니 , 분재원의 고요한 공기 속에선 시간도 잠시 느려지는 듯했다.

효원공원에서 '효(孝)'의 의미를 되새기며 월화원의 이국적인 정원 풍경을 둘러본 뒤, 숙소가 있는 나혜석의 거리로 향한다.

수원 태생이자 최초의 한국 여성 서양화가였던 나혜석은 독립적인 삶을 추구했던 선구적 인물이다. 그 이름을 딴 이 거리는 젊은 감각의 카페와 상점, 예술적 감성이 어우러져 활기가 넘치는 문화 거리로 자리 잡고 있다.

나혜석은 근대 여성의 자아와 자유를 외치며 예술과 문학, 사상 활동을 통해 시대의 한계를 돌파하려 했던 인물이다. '이혼고백서'를 당대에 발표하는 등 그녀의 삶은 시대보다 앞서 있었고, 그만큼 많은 비난과 외로움을 감당해야 했지만. 오늘날에는 여성 인권과 예술사의 흐름에서 기념비적 존재로 평가받고 있다.

젊은이들의 활기가 넘치는 나혜석의 거리를 끝으로 이날의 여정을 마쳤다. 전통과 현대, 사색과 영감이 어우러진 하루였다. 과거의 의미를 되새기고, 현재의 생동감을 느낄 수 있었던 이 여정은 짧지만 깊은 울림을 남겼다.